김진표 의장 "양곡관리법, 여야 한 발씩 양보, 솔로몬 지혜 발휘해달라"
민주 "반드시 가결" 강경 방침서 입장 선회
이재명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 발생도 영향 미친 듯

김진표 국회의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3월 첫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내용을 의결하고 있다. 2023.2.27 [사진=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3월 첫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내용을 의결하고 있다. 2023.2.27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서정순 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27일 보류됐다. 

당초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 측은 강행처리 의사를 밝혔다. 국회 의석수를 169석 점하고 있는 민주당 단독으로 개정안 의결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기정사실화된 데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최 직전 입장문을 내고 "3월 첫 본회의에서 처리하자"며 여야 합의를 촉구하자 한 발짝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온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일대오가 흐트러진 야당이 거부권이 예정된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기 보다 호흡조절을 선택한 것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확기에 초과 생산량이 예상치를 넘기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하락하는 경우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구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당초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 된 상태였다.

김진표 "법안 강행 처리하거나 거부권 행사 시 '강대강' 정치적 파국 초래"

김진표 국회의장은 27일 오후 본회의에서 여야 교섭단체대표장과 의견을 나눈 후 "국회의장으로서 교섭단체 간 논의를 통해 법안을 합의 처리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며 "오늘제출된 의사일정 변경 동의에 대해서는 표결을 좀 미루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보인 것이다.

김 의장은 "만약 일방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농민 생활 안정과 식량안보 강화라는 당초 취지는 퇴색하고, '강대강' 정치적 파국만 초래하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여야가 한 발씩 양보해 진정으로 농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했다.

또 "국회에서 거부권이 전제되는 입법을 하는 것보다는 국회에서 의결하고 그리고 그것을 정부에 이송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니겠냐"며 "그게 진정한 농민을 위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많은 양보를 해서 의장의 조정안을 받아들인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국민의힘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협의안을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한 번 더 기회를 가지고 협상을 해 달라"며 "민주당은 책임 있는 원내 다수당으로서 법안의 합의 처리 능력을 마지막까지 기울여주고, 국민의힘도 협상에 적극 임해서 합의안을 도출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김 의장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관리법(쌀 초과 생산량 3% 이상, 전년 대비 5% 이상 쌀값 하락 시 의무 매입)을 정부·여당이 반대하자 여야에 중재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중재안을 수용, 의무 매입 조건을 '초과 생산량 3~5%, 가격 하락폭 5~8%'로 조정해 정부의 재량권을 넓히는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매입 기준을 완화한 것이지만 국민의힘은 의무 매입이라는 법안의 근본적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2.27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2.27 [사진=연합뉴스]

민주 "법안 처리 더 미룰 수 없어"...본회의 가결 외쳤지만 보류키로

민주당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양곡관리법 개정안 가격을 외쳤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27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수정안을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반드시 가결시키겠다"며 "올해 쌀 면적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라도 법안 처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박 원내대표는 "우리 당은 그간 양곡관리법을 놓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정부·여당, 국회의장까지 모든 의견을 수렴했다. 이번 개정안 수정안은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각자 조금씩 양보 거듭해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진일보한 민생입법"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법안 심사과정에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안 된다고만 반복하며 대안없이 반대했다. 손놓고 있는 정부·여당을 대신해 민주당이 여러 입장을 중재해 최종안을 만들었으면 고마워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며 "정부는 거부권을 내세워 야당을 겁박하고 여당은 국회 문 닫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너무나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또 "쌀값을 안정시키고 농가소득을 보전하는 해법을 마련하자는데 '대통령 거부권'부터 들이미는 정부여당, 아무리 민생경제가 뒷전이라도 이럴 수는 없다"며 "양곡관리법 처리를 양보하거나 지연시키지 않고 오늘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했다.

지난 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부의의 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채 퇴장, 의석이 비어 있다. 2023.1.30 [사진=연합뉴스]
지난 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부의의 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채 퇴장, 의석이 비어 있다. 2023.1.30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민생 포장 선거용 악법, 미래 좀먹는 포퓰리즘 입법 절대 안 돼"

국민의힘은 양곡법 처리에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7 오전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본인들이 여당일 때는 신경도 쓰지 않던 법안들을 야당이 된 지금은 법을 어기면서까지 입법 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무늬만 민생 입법을 강행하는 민주당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냐"고 했다.

이어 "'20년 집권' 호언장담하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건 민생을 외면한 채 본인들의 정권 연장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그 잘못을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의 억지와 폭주에 국민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다. 본인들 표를 얻기 위한 건지, 국가의 장래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다 알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27일 논평에서 "민생으로 포장된 선거용 악법의 시행만큼은 막아야 한다. 양곡관리법 강행 처리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라의 미래를 좀먹는 포퓰리즘 입법은 절대 안 된다"며 "시장 격리 요건을 조금 강화한다고 법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고, 우리 농업경쟁력을 갉아먹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끝내 일을 저지르면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BBS 라디오에서 "오늘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부작용이나 파급효과를 줄이기 위해 양곡관리법을 올려놓은 거 아닌가 생각된다"며 "국회 절대 다수당의 의회 폭거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일방 통과시 尹 거부권 행사 수순..."시장 질서 왜곡"

국민의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약 양곡관리법이 보류 없이 민주당의 강행으로 통과됐을 경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거부권을 행사한 적은 없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이 내세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 질서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이전부터 반대 뜻을 밝혀 왔다. 여야 합의에 따르지 않는 법안 처리는 국회 정신에 어긋난 점도 지적했다. 윤 대통령도 올해 초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주는 양곡관리법은 농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법안에 부정적 입장을 표한 바 있다.

이날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후 브리핑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뜻을 밝히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달 7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느냐'는 질문에 "(통과 이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는데 국회에서 15일의 여유를 주기 때문에 7일이 될지 다른 날이 될지는 한번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법안에 대해선 우리 국민들이 많은 우려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도 지난 20일 국회에서 거부권 건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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