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림대교 공격에 반발.. 우크라 곡물 수출길 막혀
마크롱 "끔찍한 실수" 비난.. 젤렌스키 "곡물 수출 위해 더 많은 지원 필요"
식량안보 중요성 부각.. 식량 공급망 다변화 및 자급률 향상 노력해야
![식량안보 중요성 부각.. 식량 공급망 다변화 및 자급률 향상 노력해야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307/615070_416030_1453.jpg)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러시아가 크림대교 피격 후 연일 우크라이나 남부의 오데사 항 등 중요 항만 시설을 보복 공격하고 있다. 앞서 17일에는 식량난으로 기아 위기에 몰린 취약국가들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허락하기로 했던 흑해곡물협정도 중단을 선언했다. 서방과 아프리카 등 우크라이나의 곡물 소비국들이 식량 위기에 직면하면서 세계 곡물파동 , 식량위기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일 밤(현지시간) 러시아가 무인기와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남부의 오데사 항 등 중요 항만 시설을 공격하면서 이곳의 곡물 및 유류 터미널이 파괴되고 최소 1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번 폭격으로 오데사 항의 수출용 항만시설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인근의 코로노모르스크의 시설도 파괴되어 무려 6만톤의 곡물이 소실되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전쟁 중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곡물을 수출할 수 있도록 한 흑해곡물협정의 사실상 종료를 발표했다.
17일(현지시간) 타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전화회의에서 흑해곡물협정과 관련해 "러시아 관련 사항이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정이 효력을 잃었다"며 "오늘부터 협정은 무효"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당분간 협정이 중단된다"면서 "사실상 협정이 종료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7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허용하고 러시아산 식량 및 비료 수출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흑해곡물협정을 맺었다.
체결 당시 120일 기한이었던 협정은 지난해 11월 120일, 올해 3월과 5월 각각 60일씩 연장됐으나 이번에는 러시아가 추가 연장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협정은 지난 17일 만료됐다.
이로써 흑해 항로를 이용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은 중단된 상태다.
■ 러, 크림대교 피격⋅나토 군사지원에 반발.. 우크라 곡물 수출길 막혀
이처럼 러시아가 식량을 무기화 하는 것은 최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강화하기로 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2일 나토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전차 등 수조원 대의 무기지원을 약속했다. 이보다 앞서 미국은 집속탄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우크라이나가 수중드론을 이용해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를 공격하며 러시아를 자극한 것도 작용을 했다는 분석이다. 크림대교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군의 핵심 보급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번 러시아의 오데사 폭격과 흑해곡물협정 중단 조치로 식량 위기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통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곡물은 전 세계 4억 명을 먹여 살리고 있는 최대 곡물 수출국이다.
우크라이나 곡물의 95%는 오데사 등 흑해 항구와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수출하고 있는데 수출길이 봉쇄되면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허덕이고 있는 서방에게는 악몽같은 일이다.
■ 마크롱 "끔찍한 실수" 비난.. 젤렌스키 "곡물 수출 위해 더 많은 지원 필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흑해 곡물수출협정을 연장하지 않은 푸틴을 향해 거대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18일(현지시간) 프랑스24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제3차 유럽연합(EU)-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 정상회담 뒤 "푸틴 대통령이 흑해 곡물수출을 보호하기 위한 협정에서 탈퇴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며, "그(푸틴 대통령)는 식량을 무기화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러시아의 일방적인 결정이 흑해 곡물수출협정에 크게 의존하는 아시아, 서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흑해 곡물 협정 탈퇴가 세계 식량 안보 전망을 악화시키고 특히 저소득 국가들의 식량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고 가디언이 로이터 통신을 인용,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곡물 거래에서 손을 떼면 세계 곡물 위기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19일(현지시간) 미국 CNN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의 수출이 없다면 불행히도 세계 시장에서 부족분이 매우 많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이를 막기 위해 동반자 없이 일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식량 안보의 보증인으로서 우크라이나의 세계적 역할, 세계 시장을 향한 우리의 해상 접근, 항구와 농업에서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일자리 보존을 위해 행동과 합의를 위한 선택지를 개발하고 있다"며 "세계 안보와 우크라이나 농부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지원을 요청했다.
■ 푸틴 "최빈국 지원 물량 3% 불과.. 서방이 협정 안지켜"
반면, 푸틴 대통령은 흑해 곡물협정을 정치적으로 왜곡한 건 서방이라고 주장하며 협정 만료에 대한 책임을 떠넘겼다. 동시에 러시아가 요구한 조건을 서방이 이행할 경우 협정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로이터·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주재한 화상 국무회의에서 "애초에 협정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채결됐다"며 "서방은 협정의 본질을 왜곡했으며 실제 도움이 필요한 국가들을 돕는 대신 정치적 협박에 사용하고 세계 곡물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과 투기꾼들의 배를 불리는 데 활용했다"고 비난했다.
푸틴은 협정이 발효된 지난 1년간 3280만톤(t)의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흑해 항로를 통해 수출됐지만 이중 최빈국에 지원된 물량은 3% 미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러시아는 최빈국 비료 지원을 위해 26만2000톤을 수출했지만 대러 제재로 대부분이 유럽 항구에 발이 묶였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농업은행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재가입 △농기계 및 예비부품의 대러 수출 재개 △러시아 선박·화물의 보험 가입 및 항만 접안 제한 조치 해제 △비료 수출용 암모니아 수송관의 우크라이나 구간 복원 △러시아 비료회사의 계좌 동결 철회 등 5가지 핵심 요구사항을 서방이 이행한다면 즉시 거래에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나아가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공급망 다변화와 곡물 자급률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식량안보 중요성 부각.. 식량 공급망 다변화 및 자급률 향상 노력해야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44.4%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7년까지 55.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지만 주요 곡물 수출국들의 '식량 무기화'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특히, 주요 농작물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관계도 변수다. 현재 우리나라는 배추김치만 예를 들어도 배추뿐 아니라 고추, 마늘, 생강, 무, 당근 등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말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제한하자 한바탕 난리가 난 것을 감안하면, 중국이 주요 농작물 수출을 중단할 경우 우리나라 식탁 물가는 더 큰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은 올해 초 ‘농업전망 2023(농업전망)’에서 ‘안정적 공급망의 확보 필요성’을 거론하며 “농업 공급망의 주요 지위를 차지하는 국가들의 취약성을 확인하게 된 상황에서 대체 수입처·공급처 확보가 중요하다”며 ‘포괄적 식량안보’ 관점에서 “프랜들리 네이션(우호적인 국가)과의 식량수급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량 패권 시대 한국의 생존 전략’ 좌담회에서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한국은 콩의 70%, 밀의 76%를 각각 3개 국가에서 수입한다”며 “수입 편중이 심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서라도 흉작이 나거나 식량 무기화에 나서면 타격을 받는 취약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해외 농업 개발을 통해 자급 역량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서도 식량안보를 위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식량안보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제정안은 정부가 5년 단위 ‘식량안보 강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식량안보 컨트롤타워인 식량안보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했다. 정부가 식량 증산 시책을 펼치고, 국민이 6개월 이상 먹을 곡물을 비축할 책무도 부여했다. 정부가 양곡을 차상위계층에 무상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담았다.
윤준병 의원은 “전체 식량 수요의 20%밖에 기여하지 못하는 쌀이 공급 초과라는 이유만으로 쌀 생산 억제 정책에만 몰두하는 작금의 식량⋅농업정책으로는 식량위기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며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공급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식량위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