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4일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후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4일 국회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후 입장을 밝히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었다.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져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 헌재가 내놓은 결정적 파면 이유다. ‘대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법대를 나와 평생 검사였던 법조 대통령. 너무나 명백한 민주주의 원리를 간단히 깔아뭉갰다. 그것도 이른바 ‘보수 대통령’이 말이다. ‘헌법 수호 책무’는 보수가 지켜야 할 최고 가치다. 이를 짓밟은 대통령을 앞장서 끌어내려야 할 세력은 누군가. 다름 아닌 국민의힘이다. 그들 주장대로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 맞다면. 하지만 탄핵 국면에서 애써 외면했다. 그래도 처음엔 침묵 모드였다. 시나브로 ‘내란 수괴’ 윤석열 옹호로 돌아섰다. 강성 지지층의 무조건 탄핵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였다. 급기야 초선, 중진 가리지 않고 장외 무대에 올랐다. “공수처, 선관위, 헌법재판소, 모두 쳐부수자.”(서천호) 국가 기관에 대한 폭력 선동도 서슴지 않았다. 지도부는 “비판적 표현일 뿐”이라며 눈감았다. 그래서였을까.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겸허히 수용한다.” 헌재 선고 직후 비대위원장 권영세의 말이다. 새삼스레 들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진정한 자성의 목소리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졸지에 여당 지위를 상실한 후 처음 열린 의원총회. “찬탄파(탄핵 찬성 의원)와 함께 당을 할 수 없다.” 이런 성토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그동안 헌재 공격 선봉에 나섰던 윤상현은 한 발 더 나갔다. “비록 대통령이 검은 카르텔 세력에 의해 희생됐지만 우리 싸움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5일 전광훈 집회에서 불복을 공개 선언했다. 

더 큰 문제는 무너진 보수 가치 재건을 위한 의지의 실종이다. 당장 지도부가 초점을 맞춘 건 조기 대선 승리다. 60일 만에 ‘후딱’ 치러야 하는 탓에 그야말로 ‘발등의 불’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당 존재는 정권 쟁취.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고 져선 안 되는 선거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험천만한 이재명 세력에게 맡길 수 없다.” 원내대표 권성동이 의총에서 한 말이다. 백번 양보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이 공천하고 앞장서 당선시킨 대통령.

그가 다른 잘못도 아니고, 헌법을 깔아뭉개 쫓겨났다. 그렇다면 첫 마디는 무너진 당 정체성 되찾기여야 한다. “두 번 다시 보수 가치를 짓밟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 이런 다짐부터 하는 게 순리이다. 아울러 참 보수정당 재건을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물론 “굳센 의지와 결기로 재무장”이라고 표현하긴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오로지 ‘이재명 때려잡기’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는 절대 바보가 아니다. 지난해 총선 때 이른바 ‘이‧조(이재명과 조국) 심판론’. ‘남 눈의 티끌’만 문제 삼다 동티가 났다. 김건희 명품백, ‘런종섭(이종섭 호주대사 빼돌리기)’, 의료 대란 등 ‘자기 눈의 들보’를 무시했다. 결국 역대급 여당 참패로 끝났다. 보수 대통령의 첫 파면이었던 박근혜 때도 마찬가지. 당시도 오직 ‘반(反)문재인’ 전선 구축에만 열을 올렸다. 유엔 사무총장을 마치고 갓 귀국한 반기문에 매달렸던 것. 결국 보수 혁신의 ‘골든타임’을 날려 버리고 허무하게 졌다. 그 뒤 21대 총선에선 그나마 ‘반문연대’는 만들었다. 그래도 무용지물, 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때도 말로만 ‘탄핵의 강’을 건넜을 뿐 보수 개혁 시늉에 그쳤다. 

여전히 국민의힘 일각에선 희망 회로가 작동하고 있다.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것이다. 근거는 이른바 ‘경선 흥행’이다. 현재 거론되는 잠룡들만 10여 명이 훌쩍 넘는다. 김문수 안철수 오세훈 유승민 한동훈 홍준표(가나다순) 외에도 몇몇 광역단체장들이 거명된다. 반면 민주당은 ‘일극체제’ 답게 사실상 이재명 뿐이다. 당연히 경선 과정에서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한편의 정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연 그럴까. 대통령의 정상적 임기 마무리에 따른 후속 대선이라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지금은 거칠게 비유하자면 딱 이런 꼴 아닐까. 초상 난 집안에서 서로 결혼식 올리겠다고 싸우는 모습. 블랙코미디다. 탄핵 국면에서 누구도 내란 수괴 대통령과의 손절을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했다. 유승민 단 한 명 빼고 말이다. 오히려 계엄 불가피성을 펴며 ‘반탄 세력’ 구애에 급급했다. 앞으로 경선 모양새가 어떨지 충분히 미뤄 짐작된다. 헌법 가치보다 “헌재 청산”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다. 민주당을 대화와 타협이 아닌 종북세력 척결 대상으로 삼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양상이라면 ‘패주’ 윤석열 목소리가 다시 커질 것이다. 파면당하는 그날까지, 끝내 ‘12.3 계엄’ 사과를 외면했다. 헌재 선고에 대한 승복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직 “지지하고 응원해준” 국민께만 감사를 표했다. 어쩌면 향후 경선판에서의 영향력 담보를 위해 나름 준비한 메시지였는지 모른다. 만약 경선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본선은 “해 보나 마나”이다. 보수 괴멸은 시간문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진보 진영 태두 리영희 선생의 책 제목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윤석열은 집권 한 해 뒤 이렇게 논박한 적 있다. “날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힘을 합쳐서 그 방향으로 날 수 있는 것이지 (중략) 오른쪽 날개는 앞으로 가려고 하고 왼쪽 날개는 뒤로 가려 한다면 그 새는 날 수 없고 떨어지게 돼 있다.” 당시 그의 말 전체 맥락을 따져보면 속내는 분명하다.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해야 국정 동반자로 인정하겠다는 의미였다. 종북세력으로 점찍은 야당은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는 선 긋기였다. 전형적 뺄셈의 정치였다.

정작 헌재는 윤석열이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 가치를 어겼다고 파면했다. 방향성을 핑계로 아예 왼쪽 날개 꺾기에 나섰던 윤석열. 그의 무도함에 대한 통렬한 심판이다. 어쨌든 이로써 오른쪽 날개는 확실히 꺾여버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시 날아올라야 한다. 왼쪽 날개 하나로만 어렵다. 밀려오는 국내외 태풍을 보면 망설일 시간이 없다. 보수 혁신을 확실히, 그것도 서둘려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보수가 살고, 한국도 살 수 있다. 하기 여하에 따라 보수가 방향키를 다시 쥘 수도 있다. 처절한 자기 혁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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