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치러진 국민의힘 전당원투표에서 한덕수 후보 교체 안건이 부결됐다. 이로써 김문수 후보가 다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격을 회복했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5/693215_503626_4256.jpg)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현명한 당원들이 나락의 위기로 내몰린 국민의힘을 일단 지켜냈다. 대통령 후보 선거 등록이 시작된 지난 10일. 하루 종일 국힘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이날 새벽 당 지도부는 전격적으로 후보 교체를 단행했다. 단일화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김문수의 후보직을 박탈한 것. 이어 새 후보 선출 과정을 진행했다. 당일 오전 3시부터 1시간 동안 후보 등록을 받았다. 바로 한덕수가 등록과 함께 입당했다. 단독 입후보. 김문수를 비롯해 경선에 나섰던 이들은 전혀 몰랐다. 사실상 한덕수 추대를 위한 ‘짜고 친 고스톱’. 이를 뒤늦게 안 김문수. 법원에 대선 후보 선출 취소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았다. 밤늦게 또 다른 반전이 일어났다. 이날 하루 동안 진행된 전 당원 투표에서 ‘한덕수로 후보 변경’ 안이 부결됐다. 김문수는 즉각 후보직을 되찾았다. 후보 교체를 밀어붙였던 비대위원장 권영세가 바로 물러났다.
지난 8일부터 이틀간 당의 선호도 조사에서 한덕수를 지지했던 당원들. 왜 이들은 태도를 돌변했을까. ‘그래도 우리가 공당인데 민주적 원칙과 절차는 지켜야지.’ 이렇게 생각했을 법하다. 한덕수 경쟁력이 낫다고 하더라도 10일 새벽의 소동은 명백한 지도부의 ‘친위쿠데타’. 언론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비판이 비등했다. 폴리뉴스가 당일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긴급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판 민심이 확인된다. “후보 교체 잘못”이라는 응답이 73.1%에 달했다. 아울러 국힘 후보로 한덕수(23.3%)보다 김문수(50.6%)를 미는 답변이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 교체 파동으로 두 사람의 지지도가 졸지에 역전된 것이다. 이런 전체 민심이 당심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설사 대선에서 지더라도 ‘원칙 있는 패배’가 옳다고 판단했던 건 아닐까. 당원들의 집단지성이 이렇게 발현됐다면 국힘에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 있다. 관건은 이번 사태를 초래한 당사자들의 환골탈태다. 이들의 면면은 당 지도부와 김문수, 한덕수다. 모두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선당후사의 자세로 대선에 임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먼저 비대위원장 권영세와 원내대표 권성동. 이른바 ‘쌍권’ 지도부와 이를 떠받든 주류 친윤의 “내 탓이요”가 선행돼야 한다. 사실 이번 사태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정치적 꼼수에서 비롯됐다.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탄핵, 그리고 파면. 그래도 위축되긴커녕 조기 대선 국면을 정치적 반전 기회로 삼았다. 문제는 후보로 내세울 대표 선수가 없었다는 점. 갑작스레 경선에 뛰어든 나경원이 친윤 후보로 잠깐 거론됐던 이유였다. 진작부터 그들의 복안은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탄핵 직후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 임명을 거부했던 한덕수. 그 때문에 탄핵당했고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으로 살아 돌아왔다. 특히 윤석열 파면 뒤에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을 전격 지명했다. 친윤계로선 한덕수의 의리와 ‘깡다구’를 높이 샀을 법하다.
하지만 정치 경험 없는 한덕수의 경선 출전은 무리수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의 밥이 될 게 빤한 상황. 그래서 나온 게 장외 유망주로 키워 부전승으로 결승전에 진출시키는 방안. 실제 경선 시작도 전에 당 안팎에선 ‘한덕수 특례 조항’이 나돌았다. 권한대행직의 엄중함과 미국과의 통상협상 등이 핑계로 들먹여졌다. 그래도 설마설마했다. 당 밖에서 당내 경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선출된 후보와 번외 결승전을 벌인다. 그렇게 이긴 뒤 입당해 최종 당 후보가 된다. 분명히 정당 민주주의 원칙에서 벗어난다. 이번에 김문수가 당초 약속을 뒤엎고 버틴 가장 큰 명분이기도 했다.
쌍권과 친윤도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내놓은 게 ‘반(反)이재명 빅텐트’. 한덕수뿐 아니라 개혁신당 이준석과 민주당 이탈파 이낙연까지 아우르면 이긴다는 필승론이었다. 그런데 이건 본선 무대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 이런 선전과는 달리 쌍권과 친윤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자당 후보를 불쏘시개로 한 ‘한덕수 꽃가마’론이었다. 어떻게든 한덕수를 국힘의 최종 대선 후보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이유는 빤하다. 대선 뒤 당권 싸움을 겨냥한 고지 선점이다. 대선에서 한덕수가 이기면 좋지만 쉽지 않다고 봤을 것이다. 그래도 한덕수로 대선을 치르면 당 장악력을 더 키울 수 있다. 평생 관료 한덕수는 대선 패배 뒤 자연스레 귀가행. 한덕수 카드가 쌍권과 친윤의 꽃놀이 패였던 셈이었다. 이젠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한 걸음 더 나가 “폐족”을 선언하라. 이를 위한 첫 번째 실천 계획은 윤석열과의 손절이다. 내란 특검과 김건희 특검을 받겠다고 천명하라. 죽어야 사는 법이다.
사실 ‘탄핵의 강’을 건너는 건, 최종 후보 김문수부터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꼿꼿 문수”라는 별명처럼 탄핵 반대 입장은 꼿꼿하기만 하다. 한번 초심을 돌아보라. 왜 자신이 꼿꼿 문수로 불리게 됐는지. 노동운동 시절 혹독한 탄압에도 원칙을 절대 굽히지 않던 민주인사 김문수. 그라면 정말 윤석열이 용서가 될까. 좀 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한덕수 단일화 거짓말 논란도 마찬가지. 어쨌든 단일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나름의 변명이 있을 수 있다. 한덕수 카드에 담긴 쌍권과 친윤의 욕망을 적극 역이용했다고 말이다. 그래도 “김덕수” 캠페인에 솔깃해 표를 줬던 당원 배신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한덕수는 아웃되고 없지만 본선에서 원샷 경선을 통한 단일화 약속엔 적극 앞장서야 한다. 개혁신당 후보 이준석과 보수혁신을 매개로 경쟁하고 힘을 합쳐라. 이를 위해서라도 윤석열을 과감히 버려라. 이에 미련 갖고 원샷 경선마저 머뭇거리지 말라. 당원들이 더 이상 봐주지 않는다.
이번 사태로 가장 우습게 된 당사자는 한덕수다. 스스로는 결단으로 포장해 출사표를 던졌다. 누가 봐도 기회주의 전형이었다. 정말 자신을 던져 보수를 살리고 나라를 구하려 했다고? 그러면 국힘 경선부터 참여하는 게 맞았다. 그는 이렇게 반문한 적이 있다. 미국과의 통상협상 등에 비하면 경선 절차는 “부차적 문제”라고 말이다.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면 권한대행직을 끝까지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국익이 달린 문제 못지않게 공당의 민주적 절차도 중요하다. 이번 전 당원 투표가 한덕수에게 전한 핵심 메시지다. 앞으로 계속 정치를 할지는 그의 선택이다. 그러나 정치에 뛰어들며 다짐했던 이 말만은 꼭 노력해달라. “국민통합과 약자동행이 이루어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한국 정치를 잠시 ‘블랙 코미디’로 만들었던 쌍권과 친윤, 김문수와 한덕수. 이번에 당원들이 보여준 질책과 기회를 잘 선용하라. 당장 대선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보수 재건의 소중한 싹은 틔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