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복귀 연설서 다자주의 불신 드러내
"내가 7개 전쟁 끝냈다…유엔은 공허한 말뿐"
反이민 정책 옹호…"기후변화는 사기극" UN 어젠다 비판
"러시아, 종전 안하면 강력 관세…유럽도 동참하라"
세계 정상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침묵하며 연설 지켜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9/708433_521192_3554.jpg)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56분 동안 유엔을 "무능하다"고 비판했다. 기후변화 대응과 이민 정책 등 국제 사회 핵심 의제에 대해선 '사기극',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다자주의에 대한 불신과 미국 우선주의를 드러냈다. 이에 각국 대표들이 참석한 총회장은 침묵에 잠겼으며 정상들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봤다.
유엔 총회 연설은 통상적으로 전 세계 지도자들을 상대로 글로벌 어젠다에 대한 해결 의지를 드러내며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자리다. 하지만 트럼프는 유엔을 향해 "글로벌 분쟁 해결 능력이 없는 무능한 기관", "여러분들의 나라를 지옥으로 몰고 있다", "내가 유엔을 대신해 분쟁을 종식했다"며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유엔총회장서 연설문 펼친 트럼프 대통령. [뉴욕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9/708433_521193_3749.jpg)
"내가 7개 전쟁 끝냈다…유엔은 공허한 말뿐"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시작부터 유엔의 존재 이유를 문제 삼았다. 그는 "자신이 7개 분쟁을 종식했다"고 주장하며 "유엔은 그 자리에 없었다"고 말했다. 가장 큰 규모의 국가 간 연합체인 유엔이 분쟁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 "유엔의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은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이 하는 일이라고는 글로만 강하게 비판하고, 후속 조치에 대해선 나몰라라 하는 것 뿐이다. 공허한 말은 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자답했다.
개인적인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연설 도중 행사장 프롬프터와 건물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났다며 "유엔에서 내가 얻은 두 가지는 나쁜 에스컬레이터와 나쁜 프롬프터"라고 비꼬았다.
그는 과거 부동산 개발업자 시절 유엔 본부 건물 리모델링 사업에 입찰했다 떨어진 경험까지 소환하며 "내가 대리석 바닥을 깔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들은 결국 값싸고 질 낮은 자재를 썼다. 수십억 달러를 쓰고도 아직 공사를 끝내지 못한 것 같다"고 비난했다.
反이민 정책 옹호…"기후변화는 사기극" UN 어젠다 비판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사회 최대 현안에 해당하는 기후변화와 이민 문제도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세계에서 가장 큰 사기극(the greatest con job ever perpetrated on the world)"이라고 했으며 풍력 발전기는 "한심하다"고 주장했다.
탄소 발자국 개념에 대해서도 "헛소리"라고 일축한 뒤 각국 정상을 향해 "이 '녹색 사기(green energy scam)'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당신들 나라는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민 문제에 대해선 유럽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와 이민이라는 두 꼬리 괴물이 유럽을 파괴하고 있다. 당신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어서 당신들 유산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당신들 나라는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9/708433_521194_3837.jpg)
"러시아, 종전 안하면 강력 관세…유럽도 동참하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2기 정부에서 지난 8개월 동안 전 세계에서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며 치적을 부각하는 한편 러시아와 중국 등을 견제하는 목소리도 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가 전쟁 종식 합의에 응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강력한 관세를 단행할 준비가 돼 있다. 유럽도 동일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중국과 인도, 일부 유럽 국가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쟁 자금을 지원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하며 러시아 원유를 구입하는 중국 등을 향해 불편함을 내비치며 "심지어 나토 동맹국조차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크게 줄이지 않았다. 러시아와 싸우면서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를 사들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들이 러시아로부터 모든 에너지 구매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저는 이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 오늘 여기 모인 유럽 국가들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시간 가깝게 이어진 연설에서 한국을 성공적인 무역 협상국 사례로 짤막하게 거론했다. 그는 "내 행정부가 영국, 유럽연합, 일본,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수많은 국가와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잇달아 성사시켰다"며 관세 협상 대상국 사례로 짧게 언급했으며 북한 비핵화 문제와 한반도 정세에 대한 언급을 없었다.
![23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9/708433_521195_4012.jpg)
세계 정상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침묵하며 연설 지켜봐
6년 전 그의 연설에 웃음을 터뜨렸던 각국 정상들은 이번엔 굳은 표정으로 침묵하며 조용히 연설을 지켜봤다. 트럼프 정부 1기 때의 연설과 비교할 때 각국 청중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6년 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때때로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더라도 청중들은 웃음으로 화답했지만 이번 연설에서 유엔회원국 대표들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대체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엔과 동맹국들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대목에서도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번 연설을 두고 매체들은 미국 우선주의, 기득권 멸시와 같은 친트럼프 진영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유엔에 모인 외교관들과 세계 각국 정상들은 위기에 직면한 세계, 공격받는 제도에 대해 경고하고 있지만 오늘 아침 트럼프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며 "마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회에서 하는 유세 연설처럼 들렸다"고 했다.
영국 BBC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사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라며 "다자주의와 세계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평가했다.
타임지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가 유엔 총회 연설을 세계 각국 정상들을 설득하거나 협력을 이끌어내는 외교 무대로 생각하지 않고 미국 내 본인 지지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공연으로 활용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