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1년 9월 23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퇴임식을 가졌다.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법부의 독립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중략)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내는 것은 법관 여러분 개개 인의 불굴의 용기와 직업적 양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퇴임하는 마당까지 그는 '사법부 독립' 화두를 놓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 임명으로 들어선 '이용훈 코트(대법원장 체제)'. 당시 보수편향 법원에 진보적 가치를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른바 '독수리 5남매' 대법관(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도 이용훈 코트 혁신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집권 세력과 반목하는 일이 잦았다.

국회 사무총장 업무를 방해한 '강기갑 공중부양' 사건과 광우병 위험 보도로 기소된 MBC PD수첩 사건이 대표적. 두 사건 모두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당시 여당 한나라당이 발끈했다.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법원 내 코드인사의 후유증"이라며 '사법개혁'을 주장했다. 이용훈 코트를 그냥 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이었다. 그러자 대법원장인 그가 직접 나섰다. "우리 법원은 사법부 독립을 굳건히 지켜낼 겁니다." 물러나면서까지 그가 화두를 놓지 않았던 이유다.

그의 바람과 달리 이후 사법부는 내부 갈등과 정치적 외풍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이른바 '사법농단'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은 퇴임 뒤 구속까지 됐다. 그를 보좌했던 판사들도 함께 사법처리 됐다. '김명수 코트'도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대법원장 자신이 물러난 뒤 재직시 거짓말 해명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현 '조희대 코트' 역시 수난에 직면해 있다. 어쩌면 이전에 비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당장 여당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가 연일 '조희대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를 특검 수사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급기야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 직후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대법원장에 대한 긴급 현안 청문회 실시건을 단독 상정, 의결 처리했다. 무산된 지난 5월의 대법원장 청문회와 달리 이번에도 불출석하면 형사 고발할 태세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누가 뭐래도, 조희대 대법원장(이하 직함 생략)에게 있다. 지난 5월 1일 '이재명 선거법' 상고심에서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 모두가 깜짝 놀랐다. 심판 결과도 결과이지만 그보다 형식과 속도 때문이었다. 징역 1년 형이 선고된 1심과 달리 2심은 무죄로 결론 났던 사건. 검찰은 즉시 상고했다. 대법원까지 올라온 직후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 2부에 배당됐다. 그러나 배당된 지 2시간 만에 사건은 전원합의체로 전격 회부됐다. 그것도 조희대의 직접 결정에 따라서.

여기다 같은 날 모든 대법관이 참석한 가운데 첫 번째 심리가 열렸다. 정말 이례적 절차에다 유례없는 속도전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하는 사이 조희대는 이틀 뒤 두 번째 심리를 열었다. 여기서 표결을 통해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기로 결론지었다. 즉각 비난이 쏟아졌다. "6만 쪽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대법관 모두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나?" 법을 모르는 일반인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재판이었다. 무엇보다

'피고인 이재명'은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윤석열 파면으로 6월 3일 조기 대선이 확정됐기 때문. 당내 경선을 앞두긴 했으나 민주당 후보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아울러 비상계엄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고 내란 재판을 받던 처지. 당연히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이재명은 졸지에 출마가 어려울 수 있는 처지로 내몰린 상황. 그래서 대법원이, 아니 "조희대가 이재명 집권 저지를 위해 총대를 멨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이제껏 조희대는 이에 대해 공식 해명한 적 없다. 오히려 공식 행사를 통해 사법부 독립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와 대법관증원 등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부아가 치밀만 하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을 저지하고 나선 상황이 황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법원장 사퇴를 밀어붙이는 것만이 최선일까.

당장 오만과 독선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지난 26일 나온 한국갤럽 여론조사.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55%를 기록했다. 취임 후 최저치다. 부정평가 이유로 독재‧독선이 11%로 외교(14%)에 이어 두 번째로 꼽혔다. 확인되지 않은 조희대 의혹 제기와 그의 사퇴를 겨냥한 법사위 청문회 강행에 대한 반발 여론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지지율도 38%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법개혁 당위성을 스스로 허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명 조희대는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신뢰를 제 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외형상으론 조희대가 힘깨나 쓰는 여당의 괴롭힘 대상으로 비친다. 사법개혁 명분마저 오직 '조희대 쫓아내기'처럼 인식될 정도다. 여론 반전의 밑바탕엔 위헌 논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헌법을 지탱하는 삼권분립 훼손 우려다. 대통령의 선출권력 우위론에서 비롯된 우려가 민주당의 '폭주'와 맞물린 탓이다.

자칫 집권세력에게 주권을 위임한 국민조차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잘못된 흐름을 바로 잡긴커녕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야 최전선이 돼 버린 법사위. 대화와 타협은 진즉 휴지가 돼버렸다. 연일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주권자 국민이 민망할 정도다. 의석수만 믿고 강공으로 일관하는 여권에 여론은 싸늘하다. 물론 민주당 내에서 법사위 급발진에 대한 경고음이 들리긴 한다. 그뿐이다. 오히려 대표가 팔을 걷어붙이고 독려 중이다. 시나브로 사법개혁은 '사법장악'으로 변한 듯한 모습이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는 울면서 철수했다."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산맥 8,000미터급 고봉 14개를 모두, 그것도 무산소 단독행으로 등정한 라인홀트 메스너. 그의 위대한 알피니즘 철학을 작가 김훈이 묘사한 말이다. 이용훈 코트의 독수리 5남매 중 한 명인 전수안 대법관. 그가 퇴임하며 김훈을 인용, 후배들에게 남긴 말이기도 하다. 정치도, 개혁도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자기 힘만 믿고 조금만이라도 욕심을 부리면 자연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민심도 마찬가지다. 의석수만 믿고 폭주하는 정치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이번 칼럼에 권석천의 '대법원, 이의있습니다'를 참조했습니다.)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