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이 오간 여야 총재회담이 성과없이 결렬됐다. 여야간 벼랑끝 대치국면속에서도 여권은 합당등 정계개편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여권내에서는 이번 파동을 계기로 내홍의 조짐도 보였다는데...

여권은 자민련과의 공조 강화 속에 대야 정면대결을 준비하고 있고, 야당도 대여 강경투쟁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의 이적파동의 실패로 공조복원이 뒤로 물러선다면 여권은 파국의 길로 빠질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따라서 교섭단체는 실패했지만 공조복원,합당 등 정계개편은 오히려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칼날 대치로 끝난 총재회담
4일 청와대에서 가진 여야 총재회담은 고성이 오가는 험악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다가 막바지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담이 끝났다. 차를 가지고 회담장에 들어오던 여직원이 이총재의 격앙된 목소리에 놀라 문을 닫고 나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는 모든 사안마다 시퍼런 칼을 서로에게 들이댔다. 특히 이총재가 '의원 꿔주기'에 대해 "세 의원을 되돌려 보내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원꿔주기를 시작으로 진행되는 정계개편과 개헌 움직임에 항의했다.
이에 김대통령은 "한나라당이 국회법을 통과시켜 주면 의원들을 내일이라도 복귀시키겠다"고 말했다. 더욱이 의원 이적 문제의 불가피성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한나라당 책임론'을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응수했다. 그리고 정계개편과 개헌론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 안기부 자금 수사를 중단할 것으로 요구하는 이총재의 요구에 김대통령은 단호하게 거부했고, 김대통령은 더 나아가 야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감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총재회담에서 이총재에게 칼을 들이댈 작심을 하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부부동반 만찬에서 단독회담으로 바꿀 때부터 작심하고 할말은 하겠다고 결심한 듯하다"고 말했다.
여야 경색국면 장기화 될 듯
여야 총재회담이 서로 이견만 확인하고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한 채 아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정국이 더욱 심한 경색국면으로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여야 영수들이 국정전반에 대해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눈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완전한 합의는 아니지만 남북문제와 국가경제 문제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한 것을 환영한다"고 일단 숨고르기를 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는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책임을 이총재에게 돌리면서 "당분간 자민련과 관계를 강화하며 야당과 정면대결이 불가피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DJP 공조를 중단하라는 것은 이 정권을 해체하라는 것으로 야당 총재가 이를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고, 이어서 안기부 선거자금 수사 문제도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며, 검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처리할 것을 여당이 이래라저래라 할 차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자민련은 "이총재의 상생의 정치는 헛 구호임이 다시금 증명됐다"고 이 이총재를 강력히 비난했다. 또한 박경훈 부대변인은 "여야 총재가 뒤바뀌고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모를 정도로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한 느낌"이라고 성토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고통 경감을 위한 책무감 때문에 회담에 임했으나 결국 매듭을 풀지 못한 채 결렬돼 무척 실망스럽다"며 "앞으로 우리당은 정권의 허구성을 밝혀내고 국민을 위한 큰 정치를 하는데 진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부적으로는 여권이 강공 드리이브를 걸 것으로 보고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맹형규 기획위원장은 "우리가 그토록 주문해온 '상생의 정치'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며 대치정국의 장기화를 예고했다. 또 정창화 총무는 "'의원 임대사태' 이후 우리당 지도부회의 등을 통해 결정된 계획대로 강경투쟁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8,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권의 정치 행태를 강력히 비난하는 한편, 각 지역별 규탄대회 및 이적 의원 원대복귀를 위해 시민단체와의 연대투쟁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권, 정계개편론, 국정쇄신론 논쟁에서 정계개편론으로 입장정리
이렇듯 여야 관계는 겨울 추위만큼이나 급속도로 경색되고 있다. 여야 화합을 위해 마련된 여야 총재회담이 정치권을 더욱 얼어붙게 한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원 이적' 문제가 사태의 발단이 됐지만 크게는 여권의 중장기적 정치권 개편구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여권 내부에서 그동안 국정쇄신론과 정계개편론이 끊임없이 대립해 왔는데, 김대통령이 정계개편론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배기선 의원 등 3명의 자민련 이적도 이러한 구상의 출발점이라는 해석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즉, '국정쇄신론'은 최종 목표를 '성공한 대통령'에 두고 그것을 위해서는 민심을 수습하고 국정개혁과 여야 화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입장이고, 반면 '정계개편'론은 '정권재창출'에 목표를 두고 '반昌 연대'를 확대하기 위한 정계개편을 단행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그 기초로서 강고한 'DJP공조복원'을 하겠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 국정쇄신론과 정계개편론이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두게의 주장일 수도 있지만 상호 연계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여권의 흐름을 보았을때, 정계개편론의 입장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민련과의 공조와 더 나아가 민주당+자민련+군소정당+한나라당 일부세력을 포괄하는 정계개편만이 정국안정 및 이후 정권재창출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이미 섰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5·6공 출신이며 JP와 가까운 김중권 대표를 기용한 것도 이러한 중기적 플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번 영수회담이 결렬로 끝난 것도 정계개편을 통해 이총재를 포위하겠다는 의도와 자신감이 깊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통령은 지난 노벨상 시상식 참여전에 발언한 '국민이 원하는 국정개혁'은 여권내 국정쇄신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었으나 그후 당내 갈등과 민심이반이 심화되면서 정권위기감이 높아져 국정쇄신보다는 '정계개편을 통한 정권재창출'에 무게중심을 더욱 강하게 실었다는 것이다.
정계개편 추진 의도는 이후 있을 개각에서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자민련과 군소정당 인사를 중용하여 3인 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봉합하고 DJP공조와 향후 군소정당을 포함한 정계개편 구도의 1차 포석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가주변의 관측이다.
뿐만아니라 자민련과의 공조복원 뿐만아니라 아예 이 기회에 합당을 해버리자는 여권내 여론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인 이적' 실패, 여권내 책임론 대두 조짐도
그러나 여권의 이러한 구상은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면서부터 장애물을 만나고 말았다. 자민련 강창희 부총재가 예상외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부총재의 반발로 자민련의 교섭단체 등록이 불발로 끝나고 더 나아가 자민련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며 민주당, 더나아가 대통령까지 그 위신이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여야 관계는 그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정도로 극으로 달리고 있다.
때문에 여권내에서는 이번 실패한 '3인이적'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3인 이적을 민주당 지도부에서 기획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화살은 현 민주당 지도부에게 향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대표는 대표가 되면서 첫 일성이 'DJP공조 복원'이었고 이후 김종호 대행등이 '개헌''공조회복'등의 발언으로 김대표에게 적극 응수함으로서 김대표의 첫 사업인 DJP공조 복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3인이적'의 실패로 결국 김대표가 추진하려던 DJP공조에 난관이 부딪히고 말았다. 친권-반권의 엄청난 민주당 내분의 결과로 대표가 된 김중권 체제의 첫 작품이 실패하고 만 것이다.
김대표는 3인이적에 대해 사후에 알았다고 하지만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여권내에서 김대표의 책임론 공방이 여권 내부에서 터져 나올 공산이 크다.
아직도 민주당 내부에는 김대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품고 있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또 지금은 정계개편보다는 국정쇄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측도 기
회를 보고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적파동이 실패했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더 강한 DJP공조와 정계개편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 현재 여권 핵심의 의중으로 관측되기 때문에 김대표체제가 쉽사리 흔들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자민련 교섭단체 무산과 여야 대치국면에서 여권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때문에 여권내 책임론은 대두될 듯 하다 잠복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여권은 '합당론'을 적극 검토하며 공동정권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여권은 힘을 모으지만 여야관계는 극한의 대치상태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상태가 대치와 화해의 과정을 반복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차기 정권을 앞에 둔 정계개편이라는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정국구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