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강한 정부론'을 펴면서 이례적으로 '언론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이에 언론개혁을 주도하는 '언론발전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정부주도의 '언론통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반발도 만만치않다.

'여론을 최고로 두려워하는 강한 정부론'을 폈던 김대중대통령의 지난 11일 연두기자회견에서 특히 두드러진 부분은 '언론개혁'에 대한 강도높은 역설이었다.
대통령은 '언론자유는 지금 사상 최대로 보장돼 있는 만큼 언론도 공정보도와 책임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합심해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 표명은 지금까지 정부의 언론 개혁의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임기 초부터 대통령은 언론의 자율개혁을 조심스럽게 주창해 왔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언론사의 '자율개혁'에서 '정부주도의 개혁'으로 언론개혁의 방향이 변했다.
특히 이번 언론개혁의 핵심은 방송보다는 '신문개혁'에 있다. 현정부들어 과거 정부보다 상당한 자유를 구가했던 '신문'에 칼을 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에 기존 언론사들과 야당은 언론개혁의 이름하에 비판적 언론을 통제하고 권력이 언론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안티조선운동, 언론사 소유구조 개선등 언론개혁을 줄곧 주창해왔던 시민단체들은 이번 대통령의 언론개혁 방침에 환영하고 있다.
과연 대통령이 언급한 언론개혁이 진정 '국민의 대변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언론개혁'이 될 것인지, 아니면 '강한 정부'를 위하여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정부의 언론통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한 정부론'과 함께 나온 언론개혁 그 종착점은 어디일까?
신문개혁, 불간섭주의의 자율개혁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정부주도의 개혁'으로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언론정책과 관련하여 ‘불간섭주의’‘자율개혁 유도’를 표명해 왔다. 과거 정부들의 언론통제 방식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지금까지 정부의 언론대책은 공공성을 담보로 하는 방송의 경우는 '통합방송법 제정을 통해 개혁'하겠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신문의 경우는 사적인 영역인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설 분야가 아니라고 거듭 신문개혁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여 왔다.
지금까지 정부는 다른 분야의 개혁은 스스로 나서서 외쳤지만, 언론 특히, 신문에 대한 개혁은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신문의 자율주의를 정부주도의 개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이번 언론개혁의 핵심이다. 즉 '신문사들의 구조조정을 통한 신문개혁'을 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라는 관측이다.
정권 초부터 신문사들은 구조조정과 개혁의 사각지대였다. 오히려 정권초보다 더 거대해지고 비대해졌다. 일부 신문사는 개혁을 오히려 앞장서 방해하고, 개혁을 더디게 하였다. 특히 조선일보는 시민단체로부터 이념적·지역적 배경을 깔고 작위적으로 위기의식을 부풀리고, 지역대립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신문사의 소유구조부터 구조조정을
지난 12월에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는 종로에서 언론사 세무조사 촉구 시민사회단체 집회를 열고 <´신문개혁 국민행동´ 10대 운동지침>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 족벌체제의 소유구조, △ 왜곡된 시장과 불투명한 경영, △ 일상적인 편집권 침해와 전문성 부족, △ 정치권력과의 비정상적 관계 등을 한국 신문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러한 한국 신문의 문제점들은 왜곡된 소유구조에서 출발한다.
이전 한국 신문은 '족벌체제의 신문재벌과 재벌신문'이 주도하였다. IMF 상황을 통하여 재벌신문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지금은 족벌신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뿐만아니라 족벌신문체제와는 달리 군사정권시절부터 지금까지 유지되어오고 있는 정부소유의 '관제신문' 또한 왜곡된 소유구조의 핵심사안이다.
우선 족벌신문의 대표적인 예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이다, 조선일보는 방우영일가, 동아일보는 김병관일가, 중앙일보는 홍석현일가,가 신문사 주식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영향력은 경영은 물론 편집권까지 막강하다. 이는 작년 몇몇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보광그룹의 탈세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홍석현씨에 대해서 중앙일보는 철저하게 혐의를 감싸는 보도를 하였다. 진실에 대한 접근의 여지는 추호도 없었으며, 중앙일보 지면을 총동원할 정도로 자사 사주를 옹호하였다. 소위 ‘김영삼 전대통령 고대 사건’때 김병관씨는 술에 취해 상식이하의 행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당연히 동아일보는 침묵을 지켰고, 대부분의 다른 족벌신문들도 동종 업계 사주의 비행을 눈감아 주는 침묵의 카르텔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볼 때도 그렇고, 시민단체와 언론학자들은 족벌 체제의 왜곡된 소유구조가 불투명한 경영과 편집권의 침해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지난 11일 MBC 100분 토론에서 공종원 동국대 객원교수(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워싱턴 포스터나 타임 같은 세계 유수의 언론도 소유구조가 특정 개인이나 특정단체에 집중된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유수의 세계 언론은 경영과 편집이 엄격하고 분리되어 있으며, 1인 사주가 정치권력과도 비정상적으로 결탁하지 않는다. 때문에 외국의 경우는 한국신문의 족벌 구조와 원천적으로 다르며, 우리의 족벌 언론의 병폐는 무한한 권력을 행사하는 족벌 지배 구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또다른 왜곡된 소유구조 형태의 신문은 바로 정부소유의 신문이다. 정부의 실질적인 소유하에 놓여있어 대표적인 '관제언론'으로 비판받고 있는 '대한매일'과 '연합뉴스'는 현재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거의 진척되지 않고 있다.
대한매일의 경우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동의는 얻었지만,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대한매일은 재경부 소유지분 49.9% 처리를 두고‘정치적인’해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연합뉴스는 KBS와 MBC가 가지고 있는 74.5%의 지분을 연합이 49% 이상을 환수, 비영리재단인 통신언론진흥회에 출연, 연합뉴스의 공영성을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통신언론진흥회법을 국회에 상정했지만, 문광위 위원들조차 그 법이 뭔지 모르는 상태이다.
신문사 소유구조 개선, 세무조사 실시부터
이러한 족벌지배, 정부소유 구조의 신문들은 국세청의 세무조사에도 무풍지대였다. 언론과 권력이 손잡고 여론을 조작하던 시절인 군사독재시절 수십 여 년 동안 언론사는 세무조사를 면제받는 특혜를 누려왔다.
지난 94년 김영삼 정부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였으나, 공개를 하지 않았다. 그 내역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 3년째인 지금도 공개되지 않았다. 현 정부는 한술 더 떠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자산규모 100억원 이상인 법인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원칙적으로 5년마다 한번씩 세무조사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지만 언론사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이다.
세무조사에 대한 요구는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언론인들도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신문개혁 관련 여론조사에서 기자의 87.6%, 전체 응답자의 86.9%가 세무조사가‘필요하다’고 답했으며, ‘필요없다’는 의견은 각각 10.4%, 11.6%에 불과할 정도이다.
이러한 왜곡된 소유구조의 개선의 필요성 때문에 현재 대통령이 표명한 언론개혁에 시민단체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언론개혁이 '개혁'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이번 언론개혁의 양면성에 우려하고 있다. 혹시 세무조사라는 '칼'로 언론통제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유일한 길은 결국 언론개혁의 주체가 '언론개혁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곳이냐에 달려있다.
언론개혁의 성공, 언론발전위원회를 통한 정간법을 개정해야
정부의 언론개혁의지는 이제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대통령의 언론개혁의 뜻에 시민단체등이 우려하는 언론개혁의 양면성없이 진정한 언론개혁이 성공되려면, 언론개혁의 추진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현재 추진중인 국회의원, 언론계,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 각계인사 15인으로 구성하는 '언론발전위원회'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언발위는 김대중 정부가 언론개혁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뿐만아니라 그간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개혁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마련해왔던 시민단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12일에 여야의원 31명이 국회의장 직속의 '언론발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였고, 이만섭 의장이 긍정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빠르면 언론발전위는 2월 임시국회에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이 주도한 언론발전위 구성 결의안에 따르면 언발위는 언론계 3인, 학계 및 법조계 6인, 시민단체 3인, 국회의원 3인 등 모두 15인으로 구성된다.
또한 41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언론개혁시민연대가 12일 집행위회의에서 언론개혁 추진 방안을 집중 논의하였다. 여기에서 언개련은 '대기업의 신문사 소유 금지 및 일가족의 소유 지분 30 % 이내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정간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였다.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 시기가 언론개혁의 최적기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나선다면 또 다른 권언유착의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언론개혁을 주도할 시민단체와 개혁성향의 학자들이 족·재벌 언론과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세력간의 대립이 표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뿐만아니라 족벌신문의 소유구조개선과 함께 정부소유의 신문사에 대한 민영화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론개혁이 정부의 언론통제 수단이라는 비판을 면키어려울 것이다.
이번의 언론개혁이 역대 모든 정권이 언론개혁을 말해왔지만, 그 종착점이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로 귀결되었다는 과거사가 재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바램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론개혁이 '강한 정부론'의 선상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국민들의 바램이 물거품은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