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5일 중국을 방문하였다. 방중 목적이 대미관계 조율과, 개방정책에 대한 학습이라고 소식통은 전한다. 서울 답방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치여건은 아직 안갖추어져 있다.

새해 들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활발한 정상외교가 눈길을 끌고 있다.

김 위원장은 열차편으로 15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16일엔 상하이 산업현장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주룽지 총리를 만나는 등 20일까지 중국에 머무를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작년 5월에 이어 7개월 여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 장쩌민 주석과 만나는 것이며, 장쩌민 주석도 연내에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외교 소식통들은 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작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5월에 방중 했을 때와 같이 남북관계와 대미관계에 대한 북·중 간 입장조율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상하이(상해)까지 가는 것으로 보아 개혁·개방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대미 관계에 대한 중국과 입장조율

우선 시기적으로 부시 행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대미관계에 대한 북·중간 의견교환 및 공조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다.

만약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수용」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강경하게 나올 경우를 대비해서 「북·중 공조」의 틀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설정은 부시 행정부의 국가 미사일(NMD)과 지역 미사일 방어망(TMD) 구축과 관련해 북한은 중국과 보조를 같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물론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중국과의 공조를 과시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북·미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의 의미도 가질 것이다.
대미 관계에 공동 보조에 이어서 남북관계에 대한 평가와 전망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 학습

김 위원장의 중국방문을 북한의 개혁,개방 학습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는 지난해 5월의 방문에서 북경 첨단산업 시설을 방문했듯이 이번에도 중국의 개혁·개방의 상징이라고 할 상하이 푸동 지구 시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와 상하이에서 동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 총리는 중국경제의 대부격이면서 전(前) 상하이시장까지 지냈기 때문에 그에게 실리콘 밸리격인 푸둥(浦東) 개발지구를 비롯한 상하이와 중국의 첨단산업, 경제개혁. 개방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개혁, 개방에 대한 의지는 김 위원장의 방중 이전에 이미 나타났다. 김정일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신사고'를 주창하였다.
지난 4일자 노동신문은 김위원장이 “21세기에 들어선 만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보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또 지난 10일 정부·정당·단체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 대회’에서 남북 화해·협력기조를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강조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남북경협, 북한 개혁·개방의 디딤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남북관계 급진전의 청신호다. 김 위원장이‘중국식 개혁·개방’의 상징인 상하이 푸둥과 선전지구를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북쪽이 중국식 모델을 참조해 ‘우리식 개혁·개방’ 모델의 수립과 실천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부시 미국 행정부 출범에 맞춰 외견상 북·중 동맹관계 강화로 비춰지는 측면이 있음에도, 정부 당국자들이 “방중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하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우선 경협이 급물결을 탈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으로선 실권은 완전히 장악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살 길이 별로 없다. 외국의 힘을 빌어야 한다. 그런데 ‘외국의 힘을 얻기 위해선’ 남북경협이 필수 안전판이다. 때문에 남북경협을 보다 확실히 추진하기 위해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빨리 앞당겨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서울 답방은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 그러나 국내정치 여건은 조성안돼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인하여 서울 답방의 시기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선 양론이 있다. 방중을 계기로 애초 예상보다 빨라져서 2, 3월중에는 답방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답방을 위해선 남북간에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며 방중만으로 답방 시기가 앞당겨지지는 않으리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북쪽이 원하는 전력 협력 등 남북경협의 확대, 남쪽이 바라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보장 등의 진전을 위한 환경조성에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결국 문제는 북쪽의 적극적 의지에 남쪽이 얼마나 호응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남쪽의 경제사정, 여론, 정치상황 등이 변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반기 중에 답방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의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최근 대통령이 적극 추진의사를 밝힌 '국가보안법 개정'도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실현하기 위한 국내 정치적 여건마련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공동여당의 한축인 자민련도 국가 보안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지난 16일 이회창 총재가 연두기자 회견에서 답방이전에 북한이 6.25와 아웅산 테러에 대한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국내 정치상황은 김위원장 서울 답방의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여 답방자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때문에 현재 꼬여있는 국내정치의 실타래를 푸는 일이 김대통령 지도력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남북화해를 한층 더 단단히 해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가 답방실현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여 '힘'으로서 답방의 여건을 만들려 한다면 국내 정치상황은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이 민족적 경사가 대통령과 여권만의 경사가 아니라 남한 모든 국민의 경사로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국내정치의 안정과 화합일 것이다.

우유신 기자milkgod@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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