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보안법 개정 연기론을 들고 나오면서, 여야는 공히 보수 대 개혁이 서로 맞붙어 몸살을 앓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국보법 개정을 강행하겠다며 여야 소장파 연대움직임을 갖으면서 각 당 지도부와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에 민주당과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국보법을 강행하겠다고 양당 지도부에 정면 반기를 들고 나섰다. 더 나아가 국보법 개정에 뜻을 모은 여야 소장파들의 정치적 연대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국보법 개정은 3당갈등에서 보혁대결로 치달으며 2월 국회의 최대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둘러싸고 보수적 기성 정치와 개혁적 소장파 의원들의 입장 차이는 정치권 변화의 새로운 도화선이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되고 있다.
민주당, 보수세력 끌어안기-보안법 개정 사실상 포기
그동안 대통령이 연일 국보법 개정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민주당 당론이 모아지지 않았었다. 김대표는 보수세력을 설득하고 당론을 모아야 한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뜻을 적극적으로 당론으로 수렴해내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김대표는 지난 원내외 지구당위원장 연수에서 대외적으로는 국가보안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당내 초재선 의원들의 기대를 한껏 부추겼다. 물론 그 전제는 '당론'에 의한 개정이었다.
그러나 몇일 후 재향군인회 강연회에서는 "보안법 개정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며 입장 변화를 암시하다가, 지난 4일에는 '대통령의 뜻'이라며 "보안법 개정 문제는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후에나 처리를 추진할 것"이라며 완전히 주저 앉고 말았다.
이러한 보안법 연기 발언은 정치적 주도권 확보의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자민련과의 공조 문제가 큰 걸림돌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민련이 극력 반대하고 있는 보안법 개정을 밀어붙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보안법 개정에 반대하는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YS도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민련과의 공조에 금이 갈 위험이 있는가 하면, 한나라당, 자민련, YS의 거리를 좁혀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꼬리를 내린 게 아니냐는 분석도 대두된다.
더불어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실현시키려 보안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보수세력의 주장도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여권 지도부의 보안법 연기 움직임의 가장 큰 이유는 "주변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김위원장이 답방이후라고 해서 국내 정치적 상황이 변하겠느냐는 의문이다.
또 5월 이후에는 또 다른 정치적 변화가 없지 않을 수 없어 정기국회로 넘겨야 할 것인데, 정기국회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와 차기대선에 대한 논쟁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아 보안법 개정을 위한 주변여건이 만들어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5-6월 김위원장의 답방이후로 연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보법 개정을 포기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민주당 개혁파-이번에는 당론을 뒤엎는다
때문에 보안법 개정이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위기의식 속에 민주당 초·재선들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이번에 개정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박병석 의원은 "합의 도출의 어려움이 이미 드러난 만큼 당론을 결정하지 말고 성향에 맞는 의원입법 형태를 통해 표결에 부쳐야 한다"며 "논의를 더 이상 끄는 것은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재정, 김태홍 의원 등 개혁적인 민주당 의원 10명은 5일 모임을 갖고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시기와 관계없이 조속히 '여야 의원 공동발의'를 통해 보안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태홍 의원은 "보안법은 세계적 조류나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만큼 개정시기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시기와 연계시킬 필요가 없다"며 "개혁성향의 여야 의원이 연대해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키로 했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 개혁적인 의원의 한 보좌관은 "이번에는 당내 개혁적인 의원들이 전처럼 지도부에 무릎 꿇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당내 개혁적 의원들의 강경 분위기를 전했다.
한나라당 개혁파-당론과 관계없이 소신대로 하겠다
한나라당은 4일에도 장광근 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보안법 개정문제는 국론분열의 우려가 있으므로 김정일 위원장 답방 이후에도 서두를 일이 아니며 북한 노동당 규약과 연계해 판단할 문제"라고 보안법 개정 불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보안법 개정 불가론을 거듭 확인하고 여권 지도부의 보안법 개정 연기론에 환영을 표시한 한나라당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처지가 아니다.
한나라당 개혁성향 초·재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가 '독자적인 보안법 개정시안'을 마련하겠다고 당론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모임의 공동대표인 김부겸 의원은 "보안법 개폐 논의 자체가 50대 이상의 보수·기득권 층과 젊은 세대간의 가치갈등으로 당내에서 불거지는 것이 마음에 걸려 지금까지 목소리를 자제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당의 정체성이 점점 수구쪽으로 내닫고 있어 이를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는 게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래연대'에서는 크로스보팅에 대해서는 여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할 것을 우려해 아직 입장을 유보하고 있지만 김원웅, 안영근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여야 개혁세력이 연대해 크로스보팅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국가보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여야 개혁세력들의 활동이 주목된다.
여야 초재선 소장파, 정치적 개혁연대 뜬다
민주당 이재정, 정범구, 김성호, 장성민 의원과 한나라당 김원웅, 김홍신, 서상섭, 안영근, 김영춘 의원 등 여야 개혁의원 모임 실무운영위원들이 주도하여, 10일께 여야 3당 의원 37명이 참여하는 전체회의를 열어 국가보안법 개정안 공동발의, 3대 개혁입법 크로스보팅 등을 논의하고 공동대응할 방침이다.
더불어 이들은 여야 개혁적 소장파 모임 명칭을 '희망의 정치연대', 국회독립을 위한 개혁연대', '자유연대' 중 하나를 골라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치권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여야 개혁모임을 이끄는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국가보안법의 경우 당론으로 정하되 구속성이 약한 `권고적 당론'으로 하고, 법안의 역사성을 감안해 의원 개개인의 역사의식과 판단에 맡기는 기명 자유투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 개혁의원의 대표격인 김홍신 의원 역시 '보안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공동발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면서 '보안법 뿐만 아니라 인권위법, 부정부패방지법 등 3대 개혁입법을 모두 크로스보팅으로 처리하는 것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치구조, 보수와 개혁세력으로 재편조짐?
이렇듯 여야 초·재선의원들과 개혁세력은 이번 기회에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DJ 집권시기에 국가보안법 처리가 어려워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답방 이후 정국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고 곧 이어 정기국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기국회에서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월드컵, 대통령선거 관련 여야 공방이 더욱 치열할 것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개정안 상정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특히 보수세력은 특별한 북한의 변화가 없는 이상 보안법 개정 반대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것이라는 우려감도 깔려있다. 또 미국의 강경 보수노선도 더욱 강화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외견상 보안법 개정에 남다른 의지를 내비쳤던 김 대통령도 힘이 떨어지는 시기에 계속해서 보안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피력할 수 없는 상황이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두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임시국회에서 보안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여야 개혁파의원들에게 팽배하다.
지금 때를 놓지면 또다시 보안법 개정이 정치적 이슈와 힘으로 모아지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여야의 개혁적인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보안법 개정을 위해 나서고 있다.
지금 최대한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굳게 결의한 여야 소장파들의 행동이 그대로 국회로까지 이어진다면 정치적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3당대결이 아닌 보-혁대결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이고 있는 보-혁의 작은 틈새가 이후 한국 정치구조를 보혁구도로 몰고갈 단초가 될지는 더 두고보아야 하겠지만, 국보법 개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보-혁대결은 예사롭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