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가 국가보안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여야 의원들이 정책연대기구를 결성해 보안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고 나서는 등 국가보안법 개폐 움직임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국가보안법 개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여야 의원들이 정책연대기구를 결성해 보안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고 나서는 등 국가보안법 개폐 움직임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재정·송영길·김성호·정범구·김태홍(이상 민주당), 김원웅·안영근·서상섭·김홍신·김영춘(한나라당) 의원 등 10명은 7일 국회에 모여 각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독자적인 국가보안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또 `보안법폐지국민연대' 등 개혁입법시민연대기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정치권에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개정을 반대하는 여야 지도부와 정치인, 일부 언론 등의 주장에 대해 “국가보안법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고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왜곡된 정치권 논의=김중권 민주당 대표가 국가보안법 개정을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이후로 늦춘 것은 '보안법 개정을 지금 추진할 경우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선물로 비칠 가능성' 때문이라고 민주당 관계자들이 이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당의 장성민 의원은 “답방 이후에는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쪽에 보안법 개정을 약속했다는 '밀약설'이 나올 것”이라고 당 지도부를 비판하며 보안법의 즉각 개정을 주장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6일 국회 연설에서 “북한의 변화가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 국론분열과 갈등을 감내하면서까지 보안법을 개정할 만큼 불가피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시기상조론을 폈다. 이에 대해 같은 당 안영근 의원은 “한나라당에선 안기부 출신이거나 과거 정권에서 국회의원과 장관을 하면서 보안법을 악용해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한 사람들이 개정을 반대한다”며 “이들은 보안법을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종호 자민련 총재권한대행도 이날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가 감축되지 않는 한 보안법을 개정할 수 없다”고 좀더 강경한 개정불가론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자민련 관계자는 “북한의 살상무기는 상응하는 억지전력 확보로 대처해야 한다”며 “보안법과 살상무기를 '등가 교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 인권과 양심의 문제=보안법은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가로막음으로써 민주사회의 기초를 파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범죄 구성요건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죄형 법정주의라는 기본 원칙을 넘어 남용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는 “7조의 고무·찬양·동조 규정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충돌한다”며 “이 조항을 근거로 일상생활 속의 사소한 표현이나 학문적 주장, 심지어 예술적 표현마저 처벌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안법 위반사범은 95년부터 2000년 8월20일까지 모두 3056명이 검거돼 2200명이 구속, 856명이 불구속 입건되는 등 관련 피해자가 적지않은 상황이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176명이 수배중이다. 한국은 국제인권규약에 가입한 상태에서 지난 98년 유엔인권이사회가 2건의 보안법 사건에 대해 국제인권유약 위반을 선고함에 따라 국제적으로 인권침해국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 남북 화해·협력의 걸림돌=국가보안법은 북한을 “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2조)로 규정하고 있어, 이 법에 따를 경우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부분의 남북 교류가 모두 불법이 된다.

정부는 남북교류협력법을 통해 “교류와 협력 목적으로 정당한 행위”는 협력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93년 헌법재판소가 두 법 사이에선 '형법상 신법 우선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해 역시 모순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최소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이전에 모순을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두 번씩이나 초법적 상태로 열리는 것은 곤란한 데다, 지난 91년 노태우 정권이 북방외교를 펴면서 '국외 공산계열'과의 교류를 금지했던 보안법 일부 조항을 삭제했던 전례 등을 참고해 시대상황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를 사실상 국가간 관계로 보고 있는 역대 정부의 국가연합제 통일방안, 화해협력의 상대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정면 배치된다”고 말했다.

◇ 의원들의 개정 움직임=여야 소장파 초·재선 의원들이 중심인 (가칭)`국회 독립을 위한 연대'는 이날 국회에서 발족 준비모임을 열어 독자적인 보안법 개정 전략을 집중 논의했다.

이 단체는 의원들이 당지도부의 거수기로 전락해선 안된다며 개혁입법을 위해 여야간 경계를 허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성호 의원(민주당)은 “보안법 개정은 이 단체의 첫 사업으로 채택된 상태”라며 “독자적인 발의 법안 조문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가운데 구체적인 표결 전략 등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박창식 이제훈 기자cspcsp@hani.co.kr

한겨레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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