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답방을 계기로 정부는 한미간 대북정책조율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대통령은 올해 평화협정 체결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반해 야당 등 보수진영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남북관계가 다시 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가 내달 8일 한미정상회담을 워싱턴에서 가질 예정이라고 발표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이어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통일부는 15일 업무보고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임을 밝히면서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도 병행할 예정임을 강조했다. 또 이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남북관계가 한단계 발전하는 역사적인 해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DJ, 임기 내 평화협정 체결 의욕 강해

한미정상회담에 이은 김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남북관계 개선은 급피치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북정책과 김 국방위원장 답방에 대한 여야의 시각차가 너무 커 자칫 국론분열 양상으로 보여질까 우려스러운 면도 나타나고 있어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여야의 시각차는 지난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김 국방위원장의 답방, 주적 개념 존속 여부, 국가보안법 개·폐, 미국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큰 시각차를 보여주고 있고, 더 나아가 야당은 '국가관 위기'로까지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대북정책에 대한 시각차를 줄이기 위한 정부여당의 노력도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주요한 현안으로 대두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에 단서조항을 단 한나라당

지난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섰다.

김정일 답방과 관련, 한나라당 김광원 의원은 "서울 답방이 이루어지면 서울 거리가 김정일의 환영물결로 야단법석이 될까 걱정"이라며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을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붙여 남남대립이라는 극한 상황을 김정일이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김정일은 살아있는 최악의 폭군이며 역사의 죄인"이라며 "김정일을 도와줘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같은 당 윤여준 의원도 "김 국방위원장 답방 이전에 △대량 살상무기 포기 △휴전선에 배치된 무기와 전력의 후방 재배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사과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약속 등을 전향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수진영의 기본 입장, 북이 먼저 머리를 숙여라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 한나라당은 '국가관의 위기'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남북관계에서 정부가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을 보여주지 못한다"며 "사회 일각에선 통일을 위해서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소멸마저 감수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타났다"고 우려했다.

북한의 변화 여부에 대한 입장에서도 정부여당의 입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은 "김 대통령은 북한이 확실히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 CIA 국장은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며 "북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선군혁명'을 외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창 의원도 "정부가 나서서 '북한의 급격한 변화'를 성급하게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며 "이는 대북 햇볕정책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저의가 숨어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미의 대북정책에 이어 '주적' 개념 삭제 여부로까지 논란 확대

한편,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여당의 "변화 가능성이 없다"는 전망에 "변할 것이다"는 주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박세환 의원은 "부시행정부는 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상당한 괴리와 갈등이 있을 것"이라며 "지금의 대북정책이 상당히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의원도 "미국이 페리 프로세스의 수정을 요구하거나 북미 제네바 합의와 케도사업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며 정부 대책을 따졌다.

또 자민련 정진석 의원은 "북한이 부시행정부의 상호주의 정책에 반발할 경우 한·미 공조체제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북한이 2차 경의선 군사 실무회담에서 '북한=주적' 개념의 변경을 요구하고 나서자 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이창복 의원은 국회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국방백서상의 '북한=주적' 개념의 변경을 요구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 이재창 의원은 "북한의 주적 개념 변경을 요구했는데,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따졌다. 권철현 대변인은 "정부의 단호한 입장 표명"을 촉구하면서 "주적 개념을 포기하면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고, 보안법을 폐지하면 공산당 합법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한나라당은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즉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북한체제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북한을 지원하거나 남북관계의 변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입장은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반공이데올로기와 보수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보수적 입장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적으로 국가보안법 개정을 대통령이 강력하게 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론도 확정하지 못하고 시기도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재향군인회나 6.25 참전군인회 등 반공단체들의 반발을 무마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김 국방위원장 답방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취고 있어, 정부에게는 적잖은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북정책의 투명성과 적극적 설득 노력이 병행돼야

아무튼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정부여당의 대북정책은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단체들의 끊임없는 반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특히 김 국방위원장의 답방 일정을 전후해 우리사회에 이념논쟁이 거세지고 국론분열 현상으로까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김영삼 전 대통령측과 반공단체들이 김 국방위원장 답방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여서 그저 무시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적극 환영하는 쪽과 반대 쪽이 대치하기라도 한다면 국론분열 현상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여당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너무 앞서나가서는 안된다는 우려섞인 주장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에 뿌리깊은 이념논쟁으로까지 비화될 경우 정부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여당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변화를 국민이 체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국민통합과 투명한 대북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또한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정치권의 반응이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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