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식량난으로 광우병 파동이 있는 독일과 스위스의 쇠고기까지 지원받겠다고 하고 있다. 이에 유럽은 '윤리논쟁'으로 떠들썩한데, 막상 같은 민족구성원인 우리는 남의 일처럼 별반응이 없다.

스위스 정부는 북한에 700만 프랑(약 12억 6,000만원)상당의 쇠고기를 지원키로 발표했고 이어 독일 정부는 광우병 검사를 거친 소 20만 마리를 북한에 지원하기로 결정하였고, 북한은 식량난을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철저한 검사를 전제로 쇠고기 지원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유럽은 남의 일일수도 있는 쇠고기 지원에 대채 마치 자신들의 일인양 윤리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막상 같은 민족이라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거의 무반응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현상이다.
우리는, 유럽에서 일고있는 윤리논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독일과 스위스는 왜 비윤리적이라는 비판까지 받으며 광우병 감염우려 쇠고기를 지원하려 하는지, 또 북한은 무엇 때문에 이러한 지원을 받아들이는지,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같은 민족구성원으로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쇠고기 北지원을 둘러싸고 시끄러운 유럽
스위스 정부는 15일 북한에 700만 프랑(약 12억 6,000만원)상당의 쇠고기를 지원키로 발표했다. 제공키로 한 쇠고기는 스위스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것과 동일한 품질의 것이라고 밝혔다. 요아힘 아렌스 인도지원담당 대변인은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라면 북한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97년 45톤 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쇠고기 지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독일의 지원 추진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농림부 슈반더 축산담당책임자도 "북한에 제공할 쇠고기 확보를 위한 도축용소 구매계약은 이미 체결되었으며 북한에 제공될 쇠고기의 일부에 한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위스 경제부 산하의 농림청 고위관계자는 20일 한국대사관 관계자와의 면담에서 "스위스 국내에 판매되는 것과는 다른 품질의 쇠고기가 지원된다."고 전하여 북한지원 쇠고기의 안정성에 신뢰할 수 없는 발언을 하였다. 스위스 정부가 '위험부위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위험은 없다'고 밝혔지만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상당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독일 정부는 광우병 검사를 거친 소 20만 마리를 북한에 지원하기로 하고 북한에 보내기전에 '북한이 독일산 쇠고기 원조를 바라고 있는 지와 적절하게 배분될 수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20일 밝혔다. 그러나 독일 정부 일각과 언론, 국제 구호단체들 사이에선 광우병 감염 우려를 둘러싸고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레나테 퀴나스트 농업 장관은 "국내용으로 부적합한 쇠고기를 어떻게 수출할 수 있느냐" 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내의 반대여론과는 달리 쇠고기 지원에 찬성하는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교회와 녹색당, 동물보호단체는 오히려 가격안정을 위해 소를 대량 살육하여 폐기하는 것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며 쇠고기를 제3세계 등 굶주린 이들에게 지원할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룬투샤우는 15일자 논평에서 "대량으로 도살돼 소각되는 소를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지원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안이지만 무엇보다 수송비용, EU내 정책 조율 문제, 북한에서의 분배문제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지원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일과 스위스 정부 결정에 비윤리적이라며 가장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유럽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의 일간 르몽드는 20일 스위스가 북한에 광우병 우려로 자국민들이 기피하는 쇠고기를 지원키로 결정한데 대해 윤리성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고 나섰다. 르몽드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때 상등품이 아닌 쇠고기 라도 멀리 떨어진 지역의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과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라고 의문을 표했다. 스위스에서 광우병의 발병 건수가 30여건에 이른다는 사실을 들며 북한에 지원키로 한 쇠고기는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EU집행위원회는 이 윤리논쟁이 휩싸이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독일이 북한에 쇠고기를 원조하는 문제는 독일과 북한간의 양자간의 이슈일 뿐 EU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밝히고 원조형태로 제공되는 쇠고기에도 분명한 기준이 준수돼야 한다고 짧게 입장 표명만을 했다.
북한의 쇠고기 지원은 단지 윤리성문제만 있는 것이아니다. 광우병으로 위축된 쇠고기시장을 살리려는 경제적 이유 또한 있다.
광우병과 관련하여 유럽에서는 쇠고기 소비가 줄고 대체육류의 소비가 증가추세이다. 프랑스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쇠고기 소비는 지난 3개월간 40%가 줄어들고 말고기 수요가 60%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따라서 유럽의 쇠고기 시장이 거의 아사지경에 이른 것이다.
북한의 쇠고기지원은 바로 죽어가는 유럽의 쇠고기 시장을 살리려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량난 해결의 지원을 통해 '안정성'을 검증받아 쇠고기 시장을 살려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EU가 윤리성 문제에 크게 나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해결없이 또 정치공방만...
햇볕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정부와 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관망하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철저한 과정과 신중한 검토를 거쳐 추후라도 우리 민족 구성원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이 원조문제가 결론을 내리기를 기대한다"고만 전했다. 철저한 검역이 있으면 지원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정부여당의 관망적인 입장은 이 문제를 윤리논쟁으로 비화시키면 김정일 위원장등 북한의 지도층에 대한 비판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관망적인 여당의 입장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비윤리성을 제기하며 매우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북한 지도층 때리기와 햇볕정책에 대한 측면비판까지 함께 가하고 있다.
17일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최근의 대만 핵폐기물 수입추진과 광우병 쇠고기 지원과 관련하여 간접살인 행위"라는 논평을 냈다. 이어 19일에는 "세균전을 연상시키는 광우병 쇠고기 북송 반대라는 강경한 입장을 표하는 논평을 내고, 유럽산 쇠고기의 북한 지원은 인명경시 행위이자 비인도적 처사로 기아와 질병에서 인민을 구하려는 노력보다 오히려 병들어 죽게 하려는 발상"이라고 북한 지도층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이는 "정부의 햇볕정책이 나은 부작용의 한 측면임으로 정부측의 입장정리와 합당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언론은 '광우병 감염이 우려되는 쇠고기를 요구한 북한 당국은 물론, 못 먹는 쇠고기를 넘겨 주려는 나라는 부도덕하다' 며 북한 지도층과 스위스, 독일 양국을 모두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명철 연구원은 지원에 대한 찬반론의 입장을 두루 비판하며 이 문제는 윤리성의 문제와 북한 지도부층에 대한 비판의 문제 접근보다는 "북한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원칙과 안전 문제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유럽의 윤리적 시각이나 북한 지도부에 대한 정치적 비판은 타인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광우병 우려 쇠고기를 지원받겠다고 한 북한의 입장과 현실이 무엇인지 그 시각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21일 연합뉴스의 여론조사에는 참여 네티즌 57%이상이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대북 쇠고기 지원이 인도주의적인 차원보다는 광우병 파동으로 발생한 자국의 쇠고기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본 것이다.
북한은 왜 광우병 우려 쇠고기까지 지원받으려 하는가
이미 37개 나라에서 수입금지를 한 유럽산 쇠고기를 북한이 지원 요청한 근본적인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은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가뭄, 홍수피해가 몇 년간 계속된 북한의 기아상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도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쇠고기를 저장할 저장고가 없고 하필 광우병에 걸릴 우려가 있는 소이냐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단지 식량난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것은 광우병 감염의혹 소지원 요청을 통해 기아국임을 부각시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심리전'이라는 것이다.
NMD를 강력히 주장하며 이라크와 북한을 1차 응징대상으로 삼고있는 부시의 강경노선의 칼날을 피해보고자 하는 자구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민족구성원으로서 적극적인 공동의 대응자세 필요
식량난해결이든 부시의 강경노선에 대한 정치적 심리전이든 우리는 어떤 입장에 서야 할 것인가. 남의 일로 치부하는 관망적 자세로만 일관하는 정부여당이나 북한지도층 때리기의 정치적 비판으로 일관하는 한나라당의 입장은 그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사실 북한이 식량난으로 광우병 감염우려가 있는 쇠고기까지 지원받겠다고 하고, 유럽은 이때문에 '윤리논쟁'으로 떠들썩함에도 막상 같은 민족구성원인 우리는 별반응이 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21일 "독일의 쇠고기 지원에 대해 지원국이 잘 구별하고 조치해서 보낸다해도 우리가 불안감과 의구심을 덜 수 없다"고 말하며 "북한에 국산 쇠고기를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서총재의 이러한 인도주의적인 발언속에서 같은 민족구성원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햇볕정책이 단지 정치적인 업적이 아니라 진정한 민족구성원의 화합을 위한 시작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양심적 인사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