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김정일위원장 답방으로 한반도 정세는 일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의 4대 강국의 치열한 외교전이 시작됐는데...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기로 나섰고 북-중-러는 항미연대를 다짐했으며, 북한은 제네바 협정 파기선언까지 해놓은 상태이다.
이러한 움직임과는 달리 일본은 미국과 함께 전역미사일방어(TMD) 체제 구축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부시행정부의 NMD구축에 편승하여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힘을 재정비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일본교과서 왜곡문제에서도 드러났듯이 일본의 우익세력들이 미국의 보수화에 발맞추어 군국주의 부활의 꿈을 실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렇듯 미국의 변화를 시작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 4대강국들의 군사,외교전이 더욱 치열해지고 이들의 이해관계가 남북관계 변화에 더욱더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냉각기에 접어든 북-미 관계
북한의 제네바협정 파기 경고에 미국도 경고로 응수했다. 북-미간 상호 강경대응의 기조가 역력히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21일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할 경우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 약속과 제네바 기본합의사항을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변인은 "미국 새 행정부는 관여정책, 단계적 접근, 조건부적이며 철저한 호상성(상호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등 떠들어 대고 있다"며 만약 이것이 미국의 정식 입장으로 된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미국은 경수로 건설 지연으로 인한 전력 손실을 보상해야 하며, 지금처럼 기본합의문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더 이상 거기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면서 "미사일문제에서도 이전 행정부 시기에 내놓은 우리의 제안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이 같은 담화문은 7일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파월 국무장관이 북미 관계 개선 조건으로 '미사일 협상 검증과 재래식 전력 감축' 등을 내세웠다는 결과가 보도된 직후 나왔다. 또한 한-미간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견해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 발언이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22일 미 국무부는 "미국은 북한과의 기존 합의를 이행할 것이며 북한측도 그들의 약속과 다짐을 준수하길 기대한다"고 반응하며 북한 성명에 큰 비중을 두지 않으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와 제네바 합의 파기 위협에 대해 ‘역효과론’을 제기하며 경고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와 제네바 합의 파기를 위협한 북한의 전날 성명에 대해 “미사일 시험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북한에 도움이 안된다”면서 “이는 정말로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그의 발언은 클린턴 전 행정부의 대북 대응 양상과는 다소 다른 것이다. 클린턴 전 행정부는 북한이 위기를 조성하면 이에 대한 협상에 나서는 식이었던 데 반해, 라이스 보좌관은 북한의 위협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원칙론을 일단 강조하고 나선 셈이다.
뿐만아니라 24일에는 미 정부는 한국의 대북 경제지원이 북한의 군사비용으로 전용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는 입장을 한국정부에 전했다.
이 소식통은 “미 국방부와 CIA 등은 특히 현대가 금강산 프로젝트로 북한에 막대한 현금을 제공해온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미 행정부는 남북한간의 전력 지원 협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다음날인 25일 미국은 북한의 제네바협정 파기 경고에 화답하듯 그동안 민주당 정부 아래서 미국의 적극적인 대북포용정책을 상징했던 국무부의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와 ‘대북정책조정관’ 자리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북―미간의 고위실무회담과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를 주도해 왔던 이 두 자리가 폐지되는 것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틀을 새롭게 짜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구체적 조치이다.
정부 관계자도“클린턴 정부 시절 '독립변수'로 운영되던 대한반도정책이 부시 정부에서는 '동아시아정책의 종속변수'로 다뤄지고 우선순위도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곧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사고했던 미국의 포용정책이 후퇴하고 동아시아의 미국의 외교전략에 입각한 원칙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북미관계 개선에 난기류가 봉착했음을 예고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출과 자체 개발 계획에 관해 매우 우려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며 “만약 이것을 '강경 입장'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으나,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이 북한 정권에 대한 (미국의) 실제 입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그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동아시아 종속변수로 다룬다면 그것은 분명 대북 강경노선이다.
이렇듯 한미정상회담에 압력이라도 행사하듯 미국은 연일 구체적인 대북 강경책의 내놓고 있다. 이러한 북-미관계 경색분위기가 한반도 정세지형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한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강력히 대응하는 러시아, 한반도에 적극 개입키로
26일 푸틴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했다. 27일 열리는 한-러 정상회담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강력히 반대해온 러시아와의 만남이며 특히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북-미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시기에 갖게 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6월28일 채택된 러시아의 신‘외교정책개념’에서는 ‘동북아 지역의 세력균형 확보 및 한반도문제 해결과정에서의 일정한 영향력 행사를 위하여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한―미―일 3국 공조나 남―북―미―중의 4자회담 등에서 모두 소외돼 있는 러시아가 한반도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공식화한 셈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번 방한으로 남북한 ‘균형외교’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시도하고 있으며, 남한은 남북관계 진전을 뒷받침할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북한도 경제 재건과 체제 유지를 위해 남―북―러의 3각 경제협력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특히 북한과 접경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남―북―러 3각 경협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남북종단철도(TKR) 연결사업이다.
정부관계자는 "남북한이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하는 이른바 `2+2'방식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에 대한 러시아측의 `이해'를 표명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하면서, 남-북-러 3각 외교체제 구축은 한반도의 평화안정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은 미국의 NMD체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다. 특히 연초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방문시 미국의 NMD구축에 강력히 반대하는 북-중-러이 항미연대를 결성할 것을 합의한 이후 방한하는 것이라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NMD발언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매우 고심하고 있다.
특히 한-러 정상회담 직전 러시아의 NMD에 대한 대응이 보다 더 구체화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22일 러시아와 중국은‘동부 국경지대’에 요격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하여 그동안 언급만 해왔던 NMD체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군사적 대응을 취하였다.
또 러시아방송은 24일 미국과 일본의 전역미사일방어(TMD) 체제 구축계획과 관련한 이정빈 외무장관, 조성태 국방장관 등 남측 고위인사의 최근 발언을 언급하면서“서울은 TMD 구축에 참여할 예정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 한국정부는“워싱턴과 도쿄가 연내 우주전쟁 계획을 수행하는 것을 자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이 방송은 지적했다. 이어서 한국정부는 부시 미 행정부가 대북 강경정책을 펼 경우“남북정상회담과 이후 시작된 남북한 화해와 단합의 과정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방송은 말했다.
이렇게 NMD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입장을 해석하고 있는 러시아는 한국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하며 한-러 관계를 풀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러의 3각외교체제를 수립하겠다는 기본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대국들의 변화에 따른 한반도 변화, 남한의 주도권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등 4강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치열한 군사,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잘못하다간 정작 한반도의 당사자인 남북한은 이들 4대강국의 힘에 이끌려다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앞선다. 내 집 앞마당에 차린 남의 집 잔치상이 되는 건 아닌지하는 우려이다.
이들 강대국과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과연 남한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제 역할을 다해 낼 것인가, 또 남북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원칙과 대안은 있는가 등을 면밀히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