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익의 군국주의 부활조짐이 역력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중일간 외교적 파문이 일고 있다.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한국정부와 정치권, 시민·
사회단체가 강력한 대응에 나섰는데...

태평양전쟁,「침략」을 「진출」로 표기
이번 일본교과서 파문은 일본 극우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 만든 역사교과서에 일본의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과 중국에 대한 침략을「침략」이라는 용어 대신 「진출」로 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영향으로 기존의 7종 교과서도 '침략'을 '진출'로 고쳤고, 종군위안부 기술 부분이 4종 교과서에서 완전 삭제되었으며 3종에서도 내용이 축소되거나 가해사실에 대한 표현이 완화되어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강력히 항의하였고 한국의 시민단체 뿐만아니라 일본내 양심적인 시민단체가 연일 강력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 등 일본 역사교과서에 대한 일본 국내외의 대응은 이 교과서가 철저히 '황국사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
이 황국사관에 의한 교과서 제작은 '93년 일본 국회안에 7인의 '역사검토위원회'가 설치되어 새 교과서를 만들기로 결의한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일본의 침략에 대한 사과를 하자 우익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총리를 비난하고 나서면서, 소위 '자학사관 논쟁'이 일었다. 이러한 상황과 맞물려 '황국사관' 에 입각하여 교과서가 만들어진 배경 때문에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역사교과서'에는 1) 대동아 전쟁은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위한 전쟁, 2) 한일합방은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체결되었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3) 침략이 아니라 '진출', 4) 대동아전쟁은 아시아국가들이 서구열강으로부터 독립하고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5) 일본의 아시아 점령에 아시아 국가들도 동조하였다, 6) 한국과 중국은 위기위식이 없었다, 7) 조선의 위협은 일본의 위협과도 같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 '종군위안부'에 대한 부문은 삭제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82년 교과서 파동을 통해 '근린제국 조항' (근린 아시아 제국이 관련된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에는 국제이해와 국제 협조의 견지에서 필요한 배려를 한다는 내용)을 제시한 것에 크게 위배된 조항들이다.
강경대응으로 선회한 한국정부
'황국사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의 기조에서 쓰여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서 중국은 즉각적인 강경 대응자세를 보인 반면 한국정부는 '조용한 해결' 방침을 정하고 소극적인 대응을 해왔었다.
그러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통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번 문제에 대한 노선을 강경하게 바꿔가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내 모리 요시로 총리가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등 일본내 정치상황이 지극히 불안정하고, 82년에 비해 일본내의 비판여론도 강하지 않다는 점 등이 과거 교과서 파동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규정하고 정부차원의 대응과 더불어 정치권과 민간차원의 총체적 대응을 촉구하고 나선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28일 이한동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갖고 정부차원에서 강력히 대응하기로 하였다.
내달 중 열릴 제3차 한.일 각료회의에서 태평양전쟁 등을 미화, 과거사를 왜곡한 일본 교과서 문제를 정식 의제로 삼아 역사왜곡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는 한편 문제의 중학교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총력 대응하기로 하고, 통과할 경우 일본내 양심적 지식인 등과 연대해 '교과서 불채택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대응에 앞서 23일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 모임인 '미래연대' 가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왜곡과 대처방안'이라는 내용이 담긴 항의서한을 주한 일본대사관에 전달한데 이어, 27일 민주당 이낙연,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 등 여야의원 106명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이만섭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였다.
또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를 열어 일본 대중문화추가 개방의 전면 재검토 등 5개항을 촉구하는 `일본국의 역사교과서 왜곡중단 촉구결의안'을 채택한다.
여야 의원들은 결의안에서 '2002년부터 사용될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신청본들이 과거사를 일제히 축소, 왜곡 기술하고 있는데 개탄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며 '일본의 이러한 역사왜곡은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당한 아시아 제국민에 대한 도전이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인류에 대한 배신'이라고 규탄하였다.
각계에서 확산되는 일본 왜곡교과서 규탄
뿐만아니라 그동안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국내 시민단체들은 여야 의원들의 결의안 제출에 이어 규탄대회를 갖기로 했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와 광복회는 28일 오후 2시30분부터 탑골공원 및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1천 200여명이 참가하여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규탄대회를 개최하기로 발표했다.
또 부산지역 60개 시민·사회단체도 27일 '일본 역사왜곡저지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일본 영사관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극우단체의 망동을 적극 제어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
한국 교원단체총연합회도 27일 왜곡 교과서에 대해 '일본 제국주의 망령의 부활' 이라며 규탄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특별수업 전개 등의 대응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또한 3월부터 교원과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1천만 서명운동이나 일본만화, 음반, 게임, 학용품 불매운동 등을 벌이는 한편 일본교직원조합이나 세계교육회 등 국제 교원 단체와의 연대활동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전교조도 28일 역사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3월2일 개학과 동시에 학생들을 상대로 일본 교과서 왜곡 실태 교육을 실시하고 3월12~13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국제교원 노조연맹 아시아태평양지역기구 집행위원회에서 일본교과서 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결의문을 채택하기로 했다.
네티즌들 역시 적극 동참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정당화 과정이며 또한 군국주의, 국수주의 사상을 통해 '대동아공영권'의 꿈을 실현하려는 극우세력의 범죄적인 목적이라며 비난하는 글을 싣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 교수는 82년도 교과서 파동 때에 비해 학자, 시민과 정부의 강경대응이 미진하다고 비판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본 신군국주의, 아시아 패권주의 책동을 분쇄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 정부, 별다른 대응없어
이렇듯 한일, 중일간 외교문제를 일으키고 한국 국민의 반일감정이 점점 심화되자 애초 방관적 자세로 일관했던 일본은 외무성을 통해 27일 이번 '교과서'에 대한 한국, 중국의 반발은 '내정간섭'이라는 일본내 일부 지적에 대해 "내정 간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 조금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국정 교과서가 아니라 독립성이 높은 `교과용 도서검정 조사 심의회'에서 검정 합격 여부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 검정에 정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다시금 표명한 채 주변국가들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18일 노로타 호세이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장의 '태평양 전쟁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는 발언과 이어 시마네(島根)현 스미다 노부요시(澄田信義) 지사가 27일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왜곡교과서 문제와 함께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본 양심적 세력은 일본 역사왜곡에 반대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일본의 출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24일 도쿄의 일본교육회관에서 집회를 갖고 기존의 교과서와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들어진 역사교과서에 "'침략'을 '진출' 로 표현하는 등 상당부분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기술이 왜곡되었다." 밝혔다. 또한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의 다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은 「위험한 교과서」라는 저서를 발표하여 교과서 왜곡 실태를 상세히 공개했다.
또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 교수 등 일본 지식인 16명이 27일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교과서 채택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검정작업중인 우익교과서의 수정이 이루어지도록 문부과학성의 외상에 요구하기로 나서는 등 일본내의 시민단체 등은 이번 교과서 파문과 관련하여 강경하게 반대입장을 밝혔다.
일본의 언론도 이 문제를 놓고 견해차를 나타냈다. 아사히 신문은 '새로운... 모임'의 교과서를 염려하면서 일본 정부의 정치적 중립을 비판으며. 산케이 신문은 교과서 검정은 교육적 견지에서 이뤄져야 하며 주변 압력에 밀린 정치개입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논쟁은 검정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일 왜곡 교과서 파문
아직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정부의 강력한 항의에도 이렇다할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다해도 불채택 운동을 펼쳐 재수정을 요구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이것이 82년과 86년의 경우처럼 실제로 재수정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앞으로의 국내외 비판여론에 따라 일본 정부가 어떠한 조치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금 한반도는 미-일-중-러의 4대강국의 변화에 직접 영향을 받게되는 다차원 외교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때 일본의 군군주의적 의도에 대해 한국정부는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라는 여론이 높다. 특히 부시행정부의 강경노선에 편승한 일본의 우익세력의 확산 기미가 보이기 때문에 이번 왜곡교과서문제는 단지 '역사의식'의 왜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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