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야 합의에 의한 돈세탁방지법 처리가 기대됐으나 끝내 무산됐고, 인권법, 약사법도 기약없이 미뤄졌다. 더욱이 개혁입법의 핵심인 국가보안법은 논의조차되지 못했는데, 민생·개혁법안 처리를 위한 219회임시국회 개최 취지가 무색하게 됐다.

돈세탁방지법 뿐만 아니라 인권법, 약사법, 교원정년 문제 등은 여야간, 또는 각 당의 내부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다시 4월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더욱이 크로스보팅, 여야 개혁파 공동발의 등 논란을 일으켰던 개혁법안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사립학교법, 모성보호에 관한 법률안 등은 여권 내부의 의견조율이 되지 않아 처리가 요원한 상태다.
최초 여야합의로 처리가 전망되던 돈세탁방지법 끝내 무산
돈세탁방지법은 당초 여야 총무가 정치자금을 돈세탁방지법 처벌·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통과시키기로 했으나 이를 법사위원인 민주당 조순형, 천정배 의원이 극구 반대해 처리하지 못하고 논란을 일으키다가, 막판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지시로 여야 총무가 다시 정치자금과 탈세자금을 포함시키기로 전격 합의해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반발이 거세고 여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있어 양당 총무는 본회의를 유회시키고 말았다.
한나라당 의총에서 '야당 탄압을 위한 정치적 악용' 소지를 우려해 보완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이 "정치자금과 뇌물죄에 대한 계좌추적 10일 전에 당사자에게 통보하는 조항을 넣고, FIU(금융정보분석원) 구성의 정치적 중립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기했으나 민주당은 "뇌물보호법을 만들자는 것이냐"고 반대해 협상이 결렬됐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제기됐다. 함승희 의원은 "영장없이 계좌를 추적당할 수 있다는 불안 심리 때문에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으려는 풍토가 생길 수 있다"며 "상당히 위험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당론을 결정해 다시 처리키로 하기는 했지만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돈세탁방지 관련법안이 장기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한나라당보다 후퇴한 민주당 인권법
인권법은 여야간 의견접근도 보지 못한 상황이다. 여야가 각각 제출한 법안과 여야의원들이 독자적으로 공동발의한 안건 등 인권법과 관련한 3개 법안이 법사위에 상정돼 있다. 여야가 제출안 안은 시민단체의 요구안이나 여야의원들의 공동발의안보다 상당히 후퇴해 있어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이 제출한 안건은 인권위원회를 무력화하려는 법무부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상태라 한나라당이 제출한 안보다 크게 후퇴한 내용이다.
가장 큰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인권위원회의 권한 및 조사 방법이다. 민주당은 인권위원회의 실질적인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청문회 개최권, 질문 검사권, 동행명령권, 고발 징계요구 등 핵심적 사항을 모두 제외시키고 구금시설 방문조사, 자료제출 요구, 당사자의 출석요구와 진술 청취, 피해자를 위한 소 제기권 정도만 인정하고 있다.
실질적인 권한과 역할은 없고 이름만 있는 인권위원회를 만들려고 한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듯 법무부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는 민주당안에 한나라당과 시민단체,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어 법사위에서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약사법 등 기타 개혁법안도 기약 없이 내달로
3당 총무는 약사법 처리도 일찌감치 4월 임시국회로 미룬 상태. 민주당과 자민련은 전체 주사제의 15%를 차지하는 일반주사제를 의약분업대상에 포함시키는 수정안을 마련, 지난 7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것을 제시했으나 모든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한나라당과 합의를 보지 못하고 내달로 미루기로 했다.
또한 교원정년과 사립학교법, 모성보호에 관한 법률안(출산휴가를 90일로 늘리는 방안) 처리도 4월로 미뤄져 있고, 여야간 9인 소위에서 대체로 합의가 이뤄진 예산회계법, 재정건전화법, 기금관리기본법 등 재정관련 법안들도 다음달 임시국회로 넘겨졌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된 법안은 민간경비업체의 총기휴대를 허용한 경비업법 개정안과 재해보상 범위를 넓힌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학원설립운영 및 과외교습 개정안, 회사정리법 개정안, 부동산투자회사법 등 12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그쳤다.
한편,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이 3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공동발의 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준비부족으로 4월 임시국회에서 공동발의키로 했다. 이로써 국가보안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도 한달 미뤄지게 됐다.
이렇듯 민생·개혁법안 처리를 목적으로 개원한 3월 임시국회는 개혁법안 중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사실상 막을 내리고 말았다. 여야 총무회담에서 한나라당이 10일까지만 합의된 임시국회 의사일정을 열흘간 연장하자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방탄국회를 정당화할 우려가 크다"며 반대, 11일 이후의 국회는 사실상 공전하게 됐다.
4월 임시국회 처리도 불투명한데
이에 따른 비판여론도 고조될 전망이다. 특히 여당이 개혁법안 처리에 의지를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여권 내부의 이견도 조율하지 못하고 야당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둔 듯 민주당 이상수 총무는 "국가보안법, 반부패기본법 등 3대 개혁법안과 약사법, 사립학교법 등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정창화 총무는 "재정관련 법안 등을 회기 내에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민주당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아 회기내 처리가 어려워졌다"며 민주당에 책임을 떠넘기고, 돈세탁방지법 처리 무산과 관련, "여야 총무가 진취적인 법을 만드는 데 합의했기 때문에 처리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개혁법안이 처리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4월로 접어들수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준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한편, 야당이나 보수진영의 반발로 인한 정치공방도 거세질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