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방송에서 '대미 예속 남한정부'라며 대남 비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난을 자제하던 태도와는 대별되는 모습이라 남북관계 전반에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우려 되는데...

남북장관급 회담이 북측의 요청으로 연기된 13일 북한 방송이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여 주목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동신문, 중앙방송, 평양방송 등 북한의 공식 언론매체에서 남한 당국에 대한 민감한 부분의 보도를 자제해 왔었던 점에 비추어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평양방송-사대주의 배격 주장

지난 13일 평양방송은 '통일의 진로-조선민족은 북남 공동선언 이행의 주인'이라는 보도물을 통해 "북남공동선언 이행에 나서는 근본 요구는 민족의 모든 성원들이 민족자주 의식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사대주의와 외세의존 사상을 배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을 누구에게 의존함 없이 민족자체의 결심에 따라 민족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자주적 입장에 확고히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관계에 얽매여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미국에 끌려가고 있다고 판단, 남한 국민들에게 사대주의와 외세의존 사상의 배격을 강조하면서 우회적으로 정부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정상회담 불만 표출-미국에 예속된 남한정부

더욱이 북한은「한국민족민주전선」(민민전) 기관방송을 통해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날부터 남한 당국이 아무런 자주성도 없으며 미국에 철저히 예속됐다고 강도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민민전은 '한국은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라는 제목으로 '연속좌담'을 내보내겠다고 예고하는 한편, 이날 첫회분에서 미국의 식민주의 통치가 "가장 전형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민민전은 "요즘 사회 각계에서 한국은 자주성 없이 미국에 끌려 다니는 속국이라고 야유 조소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미국에 대해서는 '신식민주의적 통치방식을 구사하는 미국'이라고, 남한에 대해서는 '미측의 지침을 그대로 따르는 한국'이라고 각각 비난했다.

남북관계를 고려해 북한은 남한의 친북단체라고 주장하는 민민전 기관방송을 통해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비난의 톤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3일 "미국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긴장완화에 대해 운운하면서도 남조선에서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북한은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보도를 볼 때 북한은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남한 당국이나 미국 부시행정부를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다.

남북장관급회담에도 영향 미친듯

지난 13일 갖기로 한 장관급회담을 북한이 이유 없이 돌연 연기시킨 것도 바로 이러한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가능성도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남북장관급회담이 연기된 이유를 '북한의 내부사정' 때문이라고 해석하면서, 남북관계에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추측으로는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인 전금진 내각 책임참사의 건강이 썩 좋지 않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며 개인 사정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아직 북한이 입장정리를 끝내지 않아 남북장관급회담을 연기했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통일연구원 전성훈 연구위원은 "북한으로서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대남 및 대미정책에 대한 내부 입장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아무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남한의 대미 의존성을 부각시키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성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가 남북관계에 냉기를 불러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어, 북한의 태도에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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