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순회다, 강연이다, 용(龍)들의 날개짓이 요란하다. 그러나 진정 나라를 이끌어갈 차기대선주자이고 현 집권여당의 지도부가 해야할 산적한 국정현안에는 외면한 채 인기몰이에만 여념하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고 운영해야 할 집권여당의 지도부로서, 또 차기 대선주자로 갖추어야 할 국정현안에 대한 해결책과 국가비전에 대한 제시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미·일의 주가 하락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되고 있고, 한·미정상회담 이후 대북관계의 변화 여부 및 대미 종속 문제에 논란도 커지고 있는 등 국가 미래에 대한 중차대한 사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자천타천으로 대선 주자라고 불리는 '지도자급 인사'들이 이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표밭갈이'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여권 대선 주자들 지방순회에 발벗고 나서
『민주당 김중권 대표』가 16개 시도지부 업무보고를 명목으로 지방을 순시하며 대표 프리미엄을 극대화시키자 이인제 최고위원 등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도 뒤질세라 강연 등을 이유로 지방나들이에 박차를 가해 왔다.
김 대표는 '영남후보론'을 등에 업고 영남지역에 집중적으로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김대표가 제기한 경북 울진·봉화지역 총선 무효소송 판결에서 이길 것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지역구 및 대구·경북지역에서의 이미지를 제고시키기 위한 행보로 인식돼 왔다.
김 대표의 지방 순시를 통한 이미지 제고 작업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경기도지부를 방문,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고, 23일에는 울산, 4월2일에는 부산·경남지역을 순방할 계획이다.
'대중 속으로'를 기치를 내건 『이인제 최고위원』의 대국민 접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다. 대중적 지지도를 바탕으로 여권 후보 '대세론'을 펴기 위한 자체 전략에 기반 한 움직임이었다.
이 최고위원은 지난 3, 4일 경북 포항과 경주를 방문했고, 14, 15일 광주를 방문하는 등 대체로 김 대표와 동선을 달리해 충남, 영남, 호남지역을 순방하면서 영남후보론 비판, 국민지지후보론을 펴고 있고, 엊그제는 합당을 통한 정계개편론을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29일 경남 거창, 30일 전남 여수 등 지방 순회를 계속할 예정이다.
『한화갑 최고위원』은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경향이다. 지난 12일 경북 경산을 방문 명예시민증을 받았고, 대구대에서 경연을 하면서 동서화합과 '영남 양보론'을 내세웠다.
『김근태 최고위원』의 활동이 요즘 가장 활발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내달 3일 자신의 대선 준비기구가 될 '한반도재단'의 창립을 앞두고 전국을 순회하며 지부를 결성하고 있다. 지난 6일 부산을 방문한 데 이어 15일엔 대구를 방문 시민단체 초청 강연회를 가졌다.
대중성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 김 최고위원은 지방을 순회하면서 대중성 강화를 위한 계기로 활용하는 한편, 지역주의 배격론과 도덕적 리더십론을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각 지역 항만현장을 돌아보는 등 장관직을 수행하면서도 각 종 인터뷰와 외부 강연을 통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노 장관은 후반기 당에 복귀한 후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다는 계획 아래 '개혁적' 이미지 창출에 노력하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최근 아일랜드, 핀란드, 스웨덴, 일본 등 외국 나들이가 잦다. 외국 방문은 정보기술(IT)산업 발전 현황을 공부하기 위해서인데, 그는 "한국의 비전은 IT산업에 있다"며 IT산업 전문가로서 '차세대' 이미지를 높여나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차기 주자들에 경고할 것
이러한 여권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에 민주당 내에서는 '산적한 국정현안을 도외시 한 채 개인적 인기관리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야당으로부터 대미, 대북관계 방향에 대해 비난을 받고 있고, 개혁법안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가운데, 이미지 관리에만 전념하는 것은 집권여당 대선 주자들의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김옥두 전 사무총장은 15일 성명을 내고 "일부 최고위원들이 국정은 뒤로한 채 틈만 나면 지방을 돌면서 대의원을 만나고 개인 입지 확대만 도모하고 있다"며 공개 비판했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김옥두 전 사무총장의 비판에 金心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있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고위원들의 조기 대선 레이스 과열에 경고성 발언을 할 것"으로 알려져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선 주자들 국정현안에 책임 있는 모습 보여야
이렇듯 대선 여권 차기 대선 주자들이 벌써부터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돌입해 인기관리만 전념하는 모습에 여야 정치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현안으로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불거진 한미간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 차 및 남북관계의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고, NMD 문제로 한반도를 둘러산 동북아정세가 미묘하게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하나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고심하거나 적극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일 증시침체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특히 대선 주자들이 실업문제나 대우자동차 문제, 현대 문제 등 경제현안에 대해 관심을 보이거나 대안을 내놓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여권 대선 주자들이 국정현안은 대통령에게만 맡겨둔 채 인기몰이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국정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대통령을 도와 성공한 '국민의 정부'를 만들 때에만 정권재창출도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들의 최근 행보를 비판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은 인기관리도 좋지만 산적해 있는 국정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제시와 민생현장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도 높아질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과 비전이 결여된 인기는 모래 위의 성과 같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 주자들은 국정현안에 대한 정책 및 대안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차기 지도자의 모습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