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건강보험문제로 심각한 국정위기에 닥쳤지만, 앞장서서 국민을 설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 여권의 대선주자들은 거의 아무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김대통령도 '책임'을 인정했고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조차 '현 정권의 최대 실정'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김대통령의 '생산적 복지정책'의 실패이자 'DJ의 총체적 실정'으로 귀결되며 '복지실패=민심이반'으로 레임덕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김대통령은 민심수습을 위한 개각을 단행하여 국민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뒤를 이어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여권의 대선주자들은 이 의료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대선주자들은 '의료파탄의 원인진단 및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생산적 복지정책'에 대한 발전적 정책대안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민주당 안팎에서는 "최고위원과 차기 대선 주자들이 건강보험 재정파탄 위기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함구만하는 대선주자들, 당내비판 목소리 높아
지난 20일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의보파탄 대책이 집중 토의 됐지만 차기 주자와 중진들은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조순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의보재정이 파탄 직전인데도 최고위원들이 대의원 접촉, 강연정치 등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가 성공하지 않는 한 누가 대선 주자가 되어도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하다는 평범한 상식을 깨달아야 한다"며 "김중권 대표부터 솔선수범해 모든 최고위원이 본연의 임무로 돌아오도록 지도력을 발휘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 중진 의원도 "지방에 다니며 강연을 하면 언론에 많이 보도되지만 (의약분업 같은)힘든 문제는 맡아봐야 생색도 안나고 힘만 드는데 누가 나서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국정위기인 의료파탄에 책임전가에 현상지적만...
특히 JP의 '킹메이커론'을 등에 업고 중부권 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이한동 총리의 말바꾸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의약분업을 진두지휘했던 이 총리는 보건복지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총리실과 복지부 관료들은 "책임전가도 유분수지"라며 혀를 찼다.
반면 당내 최고위원들은 이번 파탄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만 뾰족한 대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 이후 민주당 내에서도 자성론과 책임론에 무게가 실려있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게 한 대선 주자 측근의 말이다.
김 대표는 전날의 책임론과 자성론의 분위기와는 달리 지난 21일 경기 광주시 승격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야당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것은 적절한 자세라고 할 수 없다"며 "야당은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얽히게 하고 있다"고 대안제시 없는 야당의 일방적인 정치공세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료보험재정 파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과감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갑 최고위원도 『e윈컴』과의 인터뷰에서 "의약분업 준비 소홀과 문제점에 대한 대비 소홀 등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여야합의 통과 과정에서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측면도 크다."면서 "야당, 의사, 약사, 국민들은 국가 장래를 위해 협력해야 하고 정부여당에서는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국민 부담이 더 이상 없게 해결책을 내오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했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19일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의약분업의 준비부족과 재정위기에 따른 소비자 부담 증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의약분업의 근본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다.
또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의약분업의 진짜 해결방법은 의·약사의 호주머니와 관련된 부분"이라고 말했다. 노 장관은 이날 오후 부산대 행정대학원 최고관리자과정 초청 강연에서 "이해집단의 반대와 저항으로 인해 하나만 건드리면 난장판이 되는데 우리 정부가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겠느냐"며 의약계의 `이기주의'를 비판했다.
그나마 의료파탄에 대한 입장을 밝힌 몇몇 여권 대선주자들도 그 근본적 대책에 대한 진단이 거의 없는 현상적 지적에 그치고 있다.
21세기 정치지도자에 걸맞는 정책적 대안부터 갖추어야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그동안 지방순회를 하면서 '국민과의 만남'이라는 인기전략에는 열심히면서도 막상 민생과 관련되고 또 현 정부의 주력 정책이었던 의료복지제도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회피나 현상나열에 그치면서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차기 대선주자들은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국가지도자'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를 꿈꾸는 이들 대선주자들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정책적 비전이 거의 없고 '정치판 짜기' 나 '이미지 메이킹'에만 집중하고 있다.
외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각 분야의 '최고수준 정책전문가'라는 사실과 비교해 보았을때,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들의 취약한 정책전문성이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온다.
더구나 여권 대선주자들은 김대통령의 '정치적 힘'만을 인계받는 것이 아니라 김대통령이 추진했던 정책을 계승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는 점에서 볼 때, 김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였던 정책중 하나인 '생산적 복지정책'의 일환인 의료복지제도에 대해 대선주자들의 정책적 대안이 없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때문에 현재 불만이 치솟고 있는 국민들을 앞장서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며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민심이 현 정부로부터 이탈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할 대선주자들은 이 엄청난 위기에 아무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위기에서 국민을 설득해내면 그것이 바로 차기대선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 여권에서는 레임덕까지 불러올 수 있는 이 엄청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인물이 필요하고 그 인물이 차기 대선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강하면 강한 만큼 그에 걸맞는 준비가 철저해야 할 것이다. 준비안된 의료개혁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