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의원들의 입법활동에 대해 민의수렴 부족, 전문성 부족과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분명한 원인분석과 대안모색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의 핵심인 '의원 입법활동'의 현실이 매우 열악하다.
그동안 의원들의 입법활동에 대해 민의수렴도 거의 안되고 전문성도 매우 부족하며 또한 국회가 정치에 이끌리면서 의원들의 입법활동 자체가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분명한 원인분석과 대안모색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만성적인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의 구조적 문제와 현실적 한계는 무엇인지 짚어보고 상실된 의회기능을 바로 잡기 위한 의원 입법지원 시스템의 대안마련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원인1: 형식적인 국회 상시체제, 민의수렴 기능에 역효과
여야는 정쟁만 일삼는 국회의 불명예를 씻기위해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고 일상적으로 민의를 수렴하는 의회기능을 복원한다는 취지에서 상시국회체제로 바꾸었다. 그에 따라 2달에 한 번 열리는 국회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은 특별활동에서 일상활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상시체제가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법안마련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민의를 충분히 수렴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는 등 입법활동 준비를 위한 정신적, 시간적 여건을 빼앗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상시체제를 도입했던 근본취지인 '일상적으로 민의를 수렴하는 의정활동, 입법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섭단체 대표연설, 대정부질문 등이 2달에 한번씩 거의 비슷한 내용일 뿐만아니라 일상적인 민의 수렴이 아닌 일상적인 정쟁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상임위 중심의 국회가 아니라 본회의 중심의 국회이다 보니 '상시입법체제'가 아니라 '상시정쟁체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2월 임시국회때 상정된 민생·개혁법안이 3월로 연기되고 3월에서 다시 4월 국회로 연기되었다. 항상 국회가 열리니까 이번 회기에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아도 다음 회기로 넘기면 되기 때문에 법률안을 회기내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의지가 꺾였고, 국회가 열려도 긴장감과 의무감이 떨어지다 보니 외유하는 의원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4월 국회에 상정중인 법률안을 보면 인권법, 부패방지법, 재정3법, 사학관련법 등 작년부터 계속 처리되지 못하고 이월된 법안들이다. 이들 법률안이 처리되지 못한 이유가 법률안 자체의 미비보다는 정쟁때문이라는 점이 국회의원들의 본연의 입법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회 보좌관 생활을 오래한 한 보좌관은 "상시체제가 되면서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민의를 수렴하고 전문가 집단을 만나는 등 적극적인 입법활동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보좌관은 "국회의원이 중앙정치에 항상 잡혀있게 되니까 지역구 관리, 외교활동, 연구작업 등 국회의원이 해야할 기본적인 정치활동을 할 시간조차 없고 지역구민들의 불만이 말이 아니다."며 고충을 털어 놓고 있다.
지금의 상시국회체제는 상임위 중심이 아닌 본회의 중심체제이고 의원중심이 아닌 각 정당중심의 정쟁적 운영이라는 근본적 문제때문에 이 제도의 근본취지인 일상적인 입법활동, 일상적인 민의수렴의 의회기능을 막고 있는 형식적인 제도가 되고 있다.
원인2: 의원 입법안 발의과정의 구조적 문제점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에 문제가 되고있는 것은 국회 상시제도뿐만은 아니다. 적극적인 의원 입법활동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문제 또한 심각하다.
내일신문 4월 13일자 보도에 의하면 16대 국회에서 만들어진 의원발의 입법안은 전체 201건 중 45건으로 22%인 반면 정부제출법안은 156건으로 78%에 이른다. 대개의 보좌진들은 이러한 결과에 의원입법활동의 구조적인 문제와 열악한 현실을 그 원인으로 들고 있다.
우선 국회의원들이 법안 발의부터 국회통과까지는 정부가 제출하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복잡한 '의원입법발의 다단계 절차'의 문제가 있다.
정부제출법안의 경우는 국회 의사과에 직접 제출되고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률안이라 정치쟁점 법안이 아닌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본회의에 상정되어서 통과된다. 그러나 의원이 입법발의할 경우에는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국회의원의 입법 발의 절차는 정부제출법안 과정보다 몇단계 더 거친다.
'의원들의 문제점 인식(입법청원, 당론입법) → 국회 보좌진과 정책전문위원의 법안 내용 검토 → 해당 정부부처와의 타당성 협의 → (공청회 개최) → 법안의 골격 형성 → 국회 법제예산실의 검토 → 의원 20명 이상의 서명 날인'과정이 입법심의 전까지 필요한 절차다.
의원발의법안과 정부제출법안이 마련되면 심의과정에 들어가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국회 의사과 제출 → 본회의 보고 → 해당 상임위로 이첩 → 상임위원장, 각당 간사들의 상정여부 검토 → 상임위 전체회의에 의안 상정(제안설명, 전문위원 검토보고, 대체토론) →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 심사 회부 →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의결(찬반토론,투표) → 법사위 체계 자구 심사 → 본회의 보고와 의결(검토보고, 찬반토론, 의결)'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의원입법과정은 거의 16-7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의원들의 입법발의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당 정책위원에서 법안의 제개정시에는 '의원과 해당 전문위원이 당정협의를 통해 대표 성안 → 당 법안심사위 통과 → 당무회의와 의원총회 통과 → 원내행정실에서 국회 의사과로 제출'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렇게 의원입법발의의 절차가 까다롭다보니 그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각 단계에 따른 정치적 이해관계가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의원 20명의 서명날인을 거쳐도 당론으로 통과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 달에 들어 당론으로 확정되기는 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사립학교법은 의원총회까지 거쳤음에도 최고위원회의 반대로 당론으로 확정되지 못하였다.
원인3: 의원들의 전문성과 현장성 부족, 그리고 당론과 소신의 문제
다음 문제는 의원들이 행정부의 해당부서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한 점과 또 법안을 직접 시행과정에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정,수정하는 정부부처에 비해 의원들은 '현장성'이 뒤떨어질 수 없는 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가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민주당 정장선의원 보좌관 홍경선씨는 "행정부처가 법 집행을 직접하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개정하기 때문에 정부법안발의안은 국회가 우선적으로 심의 통과시켜 주는 것이 관례"이고 또 "관련분야만을 계속 담당해온 정부 관련부처보다 해당법률에 대해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전문성 부족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성이 부족한 의원입법안에 대해 민주당 정책위원회 정경환 전문위원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법률, 논란이 많은 법률, 여야간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률, 정부가 반대하거나 법률로서의 요건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법률들이 상당수 있기 마련이어서 우선 순위에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또 민원인들이 제기하여 발의하려는 해당 법률에 대해 전문성이 부족할 뿐만아니라 이 법률안을 뒷받침할 만한 실태파악등 '현장성'이 부족한 점도 또하나의 원인이다.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정책의 판단자료를 정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행정부처가 난색을 표명하면 밀어부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률안을 준비하다가도 정부의 반대로 인해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대개 의원들은 민원이나 입법청원 또는 상임위 활동과정을 통해서 법안 발의를 하게되는데 이에 대한 전문적 자문을 위한 상설체제는 갖고있기 어렵다. 민주당 이종걸의원 보좌관 정철용씨는 "의원의 입법발의를 할 때 해당부처, 시민단체, 학계등 전문가들에게 사안별 자문도 구하고 공청회도 하지만, 전문팀의 상설체제를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현재 의원들의 입법활동에 전문성을 보강하거나 또는 민원현장의 실태조사나 이해집단의 여론을 수렴하는 여론조사 작업들은 거의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비용문제다. 전문팀 구성, 실태조사, 여론조사 등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고 이 비용을 의원 개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때문에 각 의원실에 있는 2-3명의 보좌진이 '몸으로 때워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원 중 현장을 발로 뛰며 실태조사를 해서 법률안을 마련한 김홍신의원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전문성도 현장성도 모두 정부제출법안보다 뒤로 밀리는 현실이다보니 의원들의 입법발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경선 보좌관은 "정부발의냐 의원발의냐의 발의주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법안 통과의 결정권은 국회의원에게 있으므로 상임위의 심의과정, 본회의 통과 등을 통해 법률안 제·개정의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며 발의기능보다는 심의와 처리기능의 국회의원 고유권한을 강조한다.
그러나 문제는 전문성과 현장성 부족뿐이 아니다. 의원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의원이 아닌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정당에 소속된 정당인으로 의원 개인의 입법소신과 다른 당론이 결정되었을때는 우리의 정당정치 풍토에서는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보안법 문제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이들 쟁점법안은 바로 국회의원들의 고유권한인 국회 상임위 심의와 본회의 처리과정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격돌한다는 것이다.
의회정치보다는 정당정치체제인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의원들이 제출하는 대개의 법안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키게 되어 있다. 이번 4월 국회에 상정된 국회법, 인권법, 부패방지법, 자금세탁방지법, 약사법, 사립학교법, 재정3법 등은 모두 정치적 쟁점으로 여야간 격돌이 예상되는 법률안이다.
의원 입법활동이 저조한 이유는 의원들 자신들의 노력이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극히 열악한 입법활동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열악한 의원 입법활동의 여건을 보완하고 체제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의원 입법 지원시스템'이 시급히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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