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왜곡으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은 격화될 때로 격화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인식, 역사왜곡의 현실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모임')이 집필한 2002년도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137곳의 수정을 거쳐 지난 4월 3일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통과 후 국내에서는 전 국민적인 반일감정이 폭발하였으며, 이에 자극을 받은 정부는 초기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김 대통령이 직접 강력한 유감 표명 및 재수정을 요구했고, 정부내의 대책반을 가동하고, 주일 대사를 소환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일본은 반성하라’고 쓴 피켓을 앞세우고 일본 국회 정문 앞에서 금식 기도 시위를 펼치기도 하였으며, 여야 의원 12명으로 구성된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의원 모임'과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민족문제연구소 등 4개 시민·학술단체는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하고 오는 6월 국회 통과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격한 반일감정의 움직임들 속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에 항의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인식, 역사왜곡의 모습'을 스스로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비록 소수이지만 크게 울려퍼지고 있다.
장명수 한국일보 사장은 사설을 통해서 역사인식에 대한 일본의 후진성을 지적하며, 이를 통해 "우리 역사인식, 역사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우리의 자성을 촉구하였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의 공범은 누구인가? '라는 글을 통해 "현 정부가 과연 일본 정부에 대해 역사 교과서 왜곡을 시정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의 궁극적인 해결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지적하였다. 즉, 일본에 의한 작위적이고도 적극적인 역사 왜곡도 문제지만 우리 정부가 범하고 있는 역사 왜곡 또한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의 역사교육은 대원군 시대 이후는 선택과목이고 또 국가공무원 시험이나 기업채용시험에도 역사과목을 치루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젊은 층의 역사인식은 매우 척박한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두고 역사학계, 교육학계는 또 다른 역사왜곡이라며 DJ정부의 교육정책을 문제삼고 있다.
또 정부의 소극적이고 저자세 외교가 사실상 역사왜곡이라는 시만단체와 학계의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DJ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역사왜곡 - "일본이 우리를 속국으로 인식할 것이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일본 역사 교과서 초기에 소극적이고, 외교적인 치적에만 머물러 있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가 발생했을 초기에는 "역사교과서 문제는 한일 우호관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정부는 굳건한 입장을 지켜갈 것"이라면서도 "한일간에는 역사교과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른 외교사안과 포괄적으로 연계하지는 않을 방침"이라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차츰 반일감정으로 격화되는 국민여론의 수준이 심각해짐에 따라 정부는 초기의 저조하고 소극적인 모습과는 달리 대일 강경자세로 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대 일본 외교에서 소극적이고 저자세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인성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기본적으로 적극적이지 않고, 여론에 떠밀린 측면이 많아, 대사 소환이나 개방시기 조절 같은 것은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국내 대표적인 역사사회학자인 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해 "지난 82년 일본이 1차로 역사교과서 왜곡을 시도했을 때는 정부도 반대운동에 협조적으로 나서서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대폭 수정했다"며 현 정부의 대응의지는 군사독재 정부보다 약화됐다"고 비판했다.
신용하 교수는 "한국민이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스운 나라가 되고 일본은 한국을 속국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면서 "일본은 다음으로 개헌을 통해 천황제를 강화하고 방위청은 국방부로 개편하고 자위대는 일본군으로 변경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소극적인 저자세 외교태도에 대한 원인에 대해 배긍찬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21세기 한일관계는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 외교성과 중 하나이고, 따라서 정부 스스로가 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마련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깨지 않으려고 신중하다 보니 국민에게는 소극적으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 연구소의 박용하 사무국장은 "정부 관계자들이 외교적 치적을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역사 왜곡시키는 우리의 역사 교육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점 중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우리 역사교육의 문제점이다.
내년부터 적용될 7차 교육과정에 나타난 역사교육을 살펴보면, 가장 큰 특징이 역사과목이 사회과목으로 통합되고 중학교에서 국사시간이 축소되며 고등학교에서 한국 근, 현대사와 세계사가 선택과목으로 바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회과목으로의 통합은 하나의 교과 아래 지리, 역사, 사회 영역이 기계적으로 결합된 형태를 띄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선 현장 교사들도 의아해 하고 있다.
또한 6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국사가 8단위(시간)로 배정되고, 2학년에서 조선 전기까지를, 3학년에서 조선 후기 이후를 학습하도록 되어 있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년과 상관없이 6단위를 필수로 공부하게 되었는데, 7차에서는 4단위로 조선 후기까지를 다루고 나머지는 선택할 수 있도록 가능성만 열어두었다. 결과적으로 대입시험에 도움되지 않는 근, 현대사는 배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정부 당국에서 우리의 역사를 단순한 지식 차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 나라의 역사는 삶의 뿌리임과 동시에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원"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많은 역사학자들은 우리의 현행 교과서 채택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즉 국가에서 한가지 책을 지정하는 국정교과서의 시스템이 아닌, 검정제도를 통한 다양한 역사인식의 시각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교육은 실제로 당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하고, 인간들의 다양한 활동 과정을 통해서 역사의 변화와 개인의 삶을 통찰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이다. 즉, 역사교육의 목적은 대입을 치루기 위한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윗세대들이 살아온 역사와 발자취를 통해 지금의 자신의 위치와 나라의 현실을 바로 인식하는 '정체성 확립'에 있다 할 것이다.
역사학자와 교육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역사 교육이 지금과같은 무미건조한 '암기위주식 지식전달 중심'의 교육에서 탈피하고 생생한 삶을 복원하여 역사의 변화를 통찰할 수 있게 되어야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개인과 사회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인간을 기르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내 친일파의 온존, 교과서 왜곡, 일본 우경화는 한뿌리
우리의 역사는 '왕조 중심의 역사와 정치사 중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는 오직 승자의 역사이자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친일파 문제이다.
우리 역사에 있어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일제 36년간의 통치를 받았으면서도 우리는 프랑스의 나치청산 등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친일파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이 점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잘못된 역사는 강제징용문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한일간 36년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63년 JP-오히라 메모로 체결된 '한 -일 협정'으로 모두 청산되었다고 선언하는데 이르렀고, 그 당사자인 JP가 오늘날 정부 대표로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해 항의 방문하는 기형적인 지금의 모습을 낳고 있다.
또한 이렇듯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잘못된 잔재를 안고 살면서, 90년대 말부터 불어온 세계화바람을 비주체적으로 수용하면서 36년 식민지시대와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적 평가와 시각'을 마치 '시대흐름을 거스르는 잘못된 사관'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라고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동국대 한상범 교수는 "'국내 친일파의 온존, 교과서 왜곡, 일본 우경화' 등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으로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제잔재는 식민주의 노예근성과 온갖 민중억압 장치를 제도화시킨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일제잔재의 청산은 그 어떤 문화운동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운동"이라고 역설한다.
이렇듯 일제잔재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통치도구와 관리 시스템이 그대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엔진으로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대일 규탄에 열을 올린다고 해도 일본 정부의 눈에 비친우리의 모습은, 가엾고 힘없는 식민지후손들의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한다는 이야기는 과거에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정확히 알아야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인식할 수 있고, 올바른 미래를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의 궁극적인 해결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우리가 먼저 역사앞에 당당해야 한다. 일본의 과거사 미청산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과거사 청산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번번히 반복되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의 근본 해결책이 되리라 믿는다.
“역사의 개찬을 둘러싼 `내전'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진행중이다”라는 한 재일 한국인의 진단에 겸허하게 귀기울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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