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정체성 혼란 및 국정난맥상이 계속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 '국정쇄신론'이 다시 대두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권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는데...

그러나 '바른 정치를 위한 모임' 의원 일동 명의로 즉각 "한겨레신문 기사 내용은 명백한 오보다"며 "신문에서 거론된 당대표 교체나 건의서 관련 내용은 일체 논의된 적이 없는 사실무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자칫 한겨레신문 기사로 사태가 확산돼 마치 당내 분란으로 비쳐질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동안 김중권 체제 출범 이후 잠복해왔던 민주당 일부의 국정쇄신론이 최근 3당 정책연합 및 경제위기 지속, 대우 노조 폭력 사건, 건강보험 재정 위기 등 국정난맥상이 계속되자 여권 내부에서는 '여권 위기론'과 '국정쇄신론'이 다시 일기 시작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위기에 직면한 '강한 여당론'
민주당 소장파들이 다시 당지도부에 대한 국정쇄신책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지난해 말경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특명을 받고 '강한 여당론'을 진두지휘해 왔고, 대체로 당운영 체계를 안정시키며, 3당 정책연합(DJP+민국당)으로 국회운영의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해온 김중권 대표에게는 이만저만한 상처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강한 정부론'이라는 현 정부의 기본적인 국정운영 방향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여권내 분위기도 감지된다. '강한 정부론'에 입각해 대야관계 방향 및 국정운영 방향을 설정한 기본 정국운영 골격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일단 '바른 정치를 위한 모임'이 한겨레신문 기사 내용을 부정하고 나섰지만 이 모임의 리더격인 정동영 최고위원이 앞장서서 국정쇄신 차원에서 권노갑 당시 최고위원을 퇴진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었기 때문에 이 모임의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여권 내부, 국정난맥상에 따른 문제 의식 많아
민주당 '바른 정치를 위한 모임'은 정회원으로 정동영 신기남 추미애 김민석 이미경 임종석 정동채 정세균 천정배 허운나 의원이 참여하고 있고, 준회원으로 송영길 이강래 이종걸 함승희 의원이 가입돼 있다. 이들은 그동안 여권 지도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문제가 많다는 점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 정치를 위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의원의 측근은 "의원들은 그동안 지난해 국정위기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면서 "당지도부가 국정운영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김대표 체제에 따른 민주당의 정체성 상실이 그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일부 초재선 의원들의 자기 개인적 보신에만 급급한 모습에 많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모임 의원들이 당지도부나 여권 내부에 대한 문제 의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당 지도부의 정체성 문제다. 민주당 내부의 소장파 의원들은 김 대표 체제 이후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운영이 안정화되면서 5, 6공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인 김대표를 좀더 두고보자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3당 정책연합 지도부 회동을 통해 드러난 상징성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JP를 비롯하여 이한동총리, 김중권 대표, 김종호 자민련 총재권한대행, 김윤환 민국당 대표 등 모두 5,6공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한동 총리도 같은 뿌리를 둔 인물이다.
한 의원은 "5공 집권당인 민정당 창당 멤버들이 3당정책연합의 간판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로는 민심을 장악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둘째, 김 대표가 대선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당 대표의 프리미엄을 활용하고 있어 대권경쟁이 조기 과열될 것에 대해 우려했다. 김 대표 자신이 대권 과열 양상을 제어함과 동시에 대권 경쟁을 벌일 수가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관리형 대표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
셋째, 이들 의원은 당지도부에 대한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당 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이 크다. 2선으로 물러났던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당에 복귀했고, 자기 개인적인 보신에만 급급해 하는 일부 초재선들에 대한 실망감도 겹쳐있다.
이렇듯 이들 의원들은 지난해 제기했던 국정쇄신책이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거의 수렴되지 못하고 있고, 이로 인해 지지도 하락이 계속되는가 하면 국가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비단 '바른 정치를 위한 모임' 의원들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 대표를 중심으로 '당의 화합'을 강력히 주문한 이후 민주당 내부에서는 소장파 의원들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 주자들까지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지난 반권-친권과 같은 당 내분이 재발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고, 또 이를 차단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권의 정체성 부재에서 오는 '국정 리더십' 부재
그러나 여권 내부의 위기 의식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인식이다. 최근 들어 '여권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은 '강한 정부론', '강한 여당론' 이후 대야관계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이다가 3당 정책연합으로 수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운영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여당의 현실은 국정을 리드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문제를 막기에만 급급한 실정이다. '여권의 국정 리더십'이 극히 약화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러한 여권의 상황을 두고 "여당이 정체성과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 나가야 할 시기에 자민련과 민국당에 발목을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나름대로 그 원인을 분석했다.
지금은 잠복해 있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국정쇄신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올 가능성은 많아 보인다. '국정쇄신론'은 지난해 말 불어닥친 국정위기를 극복하고자 민주당내 반권파가 주도적으로 제기했었다.
지금 여권이 위기를 수습하고 국정을 리드하기 위해서는 '힘의 우위'라는 '강한 여당론'이 아니라 약화될 대로 약화된 '국정 리더십'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분석이다. 그것은 급격히 보수화 되고 있는 여권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