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지구당 2곳을 사고지구당 처리하고, 일부 호남지역 지구당위원장들에게 자진사퇴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총재가 호남지역에 특별한 배려를 해줘도 모자랄 판이라면서 반발도 많은데...

이회창 총재가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철저한 당무감사를 통해 부실 지구당에 대한 대폭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결과는 사고지구당 2곳을 정리하는 용두사미로 그쳤다.
일각에서는 이총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DR계로 분류되고 있고, 작년 총재 경선에서 DR을 지지했던 호남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이 대거 날아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이번 기회에 이총재계의 주류가 작년 총재 경선에서 DR을 정리하는 게 아닌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총재는 DR과의 정면대결을 피했다.
이총재, 특별한 배려를 해도 부족한 호남지역을 버리는가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당무감사 결과로 부실 지구당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호남지역 지구당 위원장들이 대거 교체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래서 김덕룡 의원은 이총재에게 호남지역의 열악한 사정을 설명하고 "떡하나 더 주지 못할망정 지구당위원장을 교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결과는 지난 총선 때 교육부장관 출신의 이해찬 의원을 상대로 긴급 투입한 중학교 교사출신의 권태엽 지구당위원장(서울 관악을)과 지구당 활동을 중단하고 연락도 끊긴 것으로 알려진 조봉훈 지구당위원장(광주 동구)이 사고 지구당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문제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자진사퇴를 유도하고 있는 10여명의 지구당위원장들이 호남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사고지구당으로 결정하자니 호남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의 집단 반발과 DR의 반발도 커질 것을 염려해 한나라당 지도부가 각 위원장들을 만나 자진사퇴를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비열한 행동이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지역적 한계에서 한나라당에게는 가장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지구당을 지켜온 호남지역 지구당에 대해 표창을 주지는 못할망정 사고 지구당으로 처리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비난이다.
열악한 환경에도 당을 지켜온 호남에 대한 배려 있어야
한 DR 측근은 "계보를 불문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나라당을 지켜온 호남지역 지구당에 대해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줘야 함에도 이총재는 호남지역을 도외시하다시피 하다가 이제 와서 사고지구당으로 처리한다는 것에 배신감 마저 든다"면서 "이총재가 호남지역 지구당위원장들과 함께 이총재 지지도를 5%까지라도 끌어올리려 노력해야 하는데 사고지구당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호남지역 분위기에서는 한나라당을 지켜내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 위에 싹을 키우는 것과도 같이 어렵다"며 호남의 열악한 조건이 어느정도인지 덧붙였다.
최근에는 당 내부에서 "이총재가 한나라당의 뿌리를 두고 있는 영남지역 정서만 대변하는 매우 편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선을 위해서라도 이총재가 호남지역을 찾아가고, 호남지역 오피니언 리더들과 만나 국가 장래에 대해 토론하고, 호남지역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龍頭蛇尾된 사고 지구당 처리-이총재의 리더십 부재
한편, 이번 사고지구당 결정에 서울 동대문갑(한승민 지구당위원장)과 전북 전주 덕진(허남주 지구당위원장)도 포함됐다가 두 지역 모두 여성 위원장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고지구당에서 배제됐다고 전해진다.
박근혜 부총재 등 당내 여성 의원들이 "여성 할당제를 지키기도 어려워 기존의 여성 위원장을 쫓아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고, 이를 이총재가 받아들여 당무감사를 다시 받는 것으로 절충했다.
이렇듯 이총재가 당무감사를 시작하면서 부실 지구당에 대한 철저한 심사와 그 결과에 따른 단호한 사고지구당 처리는 2개 지구당을 사고지구당으로 처리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이총재의 처음 주장과는 달리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총재가 칼을 호기롭게 빼들긴 했지만 고구마 한쪽 자르고 만 격"이라는 냉소섞인 평가도 나돌고 있다. 이총재의 리더십과 뒷심 부족이 이번에도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동안 유지돼 왔던 이총재 대세론이 최근 한풀 꺾인 것도 외적인 유리한 상황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전환시켜내지 못한 이총재의 리더십 부재가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곤 하였다.
지도력 제고의 관건, 호남지역과 개혁세력 포용해야
더불어 이총재의 사고 지구당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적 편중 및 리더십 부재 양상은 최근 한나라당의 국회 활동 과정과 당내 보-혁 논쟁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비록 이총재의 만류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보수 중진의원들의 모임 결성 움직임이나, 한겨레신문 칼럼리스트로 활동중인 송두율 교수의 이적성 문제 제기, 그리고 이총재의 대북·대미 관계에서의 보수적 시각 견지는 변화하고 있는 시대적 조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나라당 내부에서 보-혁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은 이총재가 그동안 추구해 왔던 '보-혁 융합'이 실현되기보다는 더욱더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고, 이는 이총재의 리더십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현재 이총재의 지도력과 대선전략은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손쉬운 영남지역과 보수진영만을 확실하게 끌어안고 내년 대선을 돌파할 것인가, 아니면 호남지역과 개혁세력 등 어려운 계층도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역화합과 개혁적 이미지를 강화해 포용력 있는 자세로 대선을 맞이할 것인가. 이총재는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남지역과 보수진영만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일 땐 서울 등 수도권 및 중부권과 젊은층의 지지도를 높이는 데 많은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게 선거전문가들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