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치권은 양당 대결 속에서 보-혁 갈등이라는 또다른 내분이 점점 커지고 있다. '3김'의 마지막 개입과 '3김' 이후의 정치 준비라는 측면에서 보수진영과 개혁진영의 움직임이 대선의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여야 정치권이 보수적인 측면으로 경도되어 있고, 지역주의에 기반하고 있는 양당 대결 구도에서의 보-혁 갈등은 또 다른 정치권의 이슈로 커질 전망이다. 그래서 차기 대선을 둘러싸고 나타날 보-혁 논란이 주목되고 있다.
더불어 보-혁 논쟁 및 갈등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다는 측면에서 개혁적 과제가 대선에서 어떻게 반영될지의 여부도 관심거리다.
위태로운 한나라당의 보-혁 동거-'개혁적 보수'?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보수와 개혁세력의 긴장감이 팽팽하다. 한나라당 개혁세력과 소장파 의원들은 당이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 김용갑 의원의 '노동당 2중대' 발언에 이부영 부총재가 반발했고, 김원웅 의원이 "구세력의 뿌리는 친일파이고, 독버섯 같은 수구세력은 이제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김용갑 의원 등 당내 보수진영으로부터 강한 불만을 사기도 했다.
특히 이총재가 나서서 무마시키기는 했지만 최병렬 부총재 등 당내 보수적 의원들이 모임 구성할 움직임도 보였다.
더불어 미국의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이총재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성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최근에는 국회에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在獨 학자인 송두율 교수의 <한겨레신문> 칼럼 게재에 대해 이적성을 물고늘어지자 한나라당 개혁성향 의원들이 불만감을 노골적으로 피력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개혁세력으로 분류되는 이부영 부총재 및 손학규 의원, 그리고 김부겸 등 소장파 의원들 다수는 이총재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찾겠다는 입장이지만, 김덕룡 의원은 개헌론과 이총재의 지도력 부재를 이유로 '제3세력 출현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나선 상황이다.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과는 달리 보-혁 갈등이 뜨거워지고 있는 시기에 이총재는 '개혁적 보수'를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들고 나와 주목된다. 뜻을 그대로 해석하면 "보수적 이념을 기본 바탕으로 개혁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당내 보-혁 갈등을 무마시키고 보-혁의 양 날개를 자신의 무기로 최대한 활용하려는 이총재의 궁여지책이 성공할지의 여부는 더 두고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는 보수고 개혁은 개혁으로, 이를 이념적으로 조합시켜 양립시킬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개혁적 보수' 개념은 이총재의 얄팍한 '조어'라는 인식이고, 이를 통해 보-혁 갈등을 무마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언제 터질지 모를 민주당의 보-혁 갈등
'국민의 정부' 들어 DJ의 '개혁' 전도사로 활동해온 민주당도 보-혁 갈등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DJ의 '강한 정부론' 주창 이후, 민주당은 5,6공 인물인 김중권 대표가 DJ의 대리인으로 '강한 여당론'을 이끌고 있고, 자민련, 민국당과의 3당 정책연합을 실현 시켜 사실상 공동여권의 대표는 보수진영의 대표들로 물갈이됐다.
특히, 김중권 대표체제 출범 이후 민주당 개혁세력들과 차기 대선주자들이 당의 정체성 상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표 체제 중심으로 당의 단합과 화합'을 DJ가 연이어 강조하면서 이러한 불만은 일체 당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민주당 개혁적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바른 정치를 위한 모임'에서 김중권 대표 퇴진이 거론됐다고 해 한바탕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일단 이 모임 당사자들이 "사실 무근이다"며 해명하고 나서 일단락 됐지만 현 여권의 보수화는 민주당 내부의 정체성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분위기다.
민주당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김대표 체제에 대한 정체성 논란 및 당정쇄신론이 다시 제기되는 것은 3당연합이라는 보수세력 중심의 '강한 여당론'이 정국을 주도하지 못한 틈을 비집고 나오고 있다. 한 의원은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다"면서 여권의 무기력함을 지적했다.
더욱이 민주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동여권의 보수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가 "공동 여권의 대표들이 신문에 나왔는데, JP, 김중권, 김윤환, 김종호, 이한동 등 5명 모두 5,6공 인물들로 마치 민자당 지도부를 보는 듯 했다"면서 혼란스러워 하듯이 '개혁'이라는 여권의 정체성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낀 당내 개혁세력 및 소장파 의원들의 당정쇄신 논의가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DJ의 '당 화합' 강조로 인해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이다.
3당 정책연합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거나, 여권의 국정난맥상이 계속될 경우 민주당 내 개혁세력 및 소장파들의 국정쇄신 목소리는 다시 커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를 반영하듯 민주당 내 개혁세력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은데, 개혁적 초선 의원들은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에 참여하고 있고, 일부 중진들은 여야 민주화운동세력 및 개혁적 중진 의원 모임인 '화해와 전진 포럼'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장영달 의원도 여야를 뛰어넘는 '민주세력 연대회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현 정권은 중도 우익'
이러한 민주당 개혁세력의 움직임에 맞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미국과 일본이 극우 성향으로 급격히 회귀하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여론 주도층의 성향은 중도우익이며, 현 정권의 각종 정책도 이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해 민주당 내 보-혁 논쟁에 불을 지폈다.
3당 정책연합 구조 및 이에 따른 외연의 확대를 기본으로 차기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을 도모하고자 하는 여권 핵심부가 당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개혁적 의원들의 문제제기를 어떻게 수용해 나갈지 모를 일이다.
여권 내 차기 대선 주자들의 행보를 보면 여권 내부의 보-혁 논란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경우 이념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적 틀 안에 적절한 개혁적 이미지 얹기'로 보여지고 있고, 김근태 최고위원은 보-혁 양날개론을 바탕으로 '신민주대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 상임고문은 '先 민주세력 정체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고, 한화갑 최고위원은 '성공한 DJ를 통한 DJ의 개혁 계승'을 강조하고 있다.
보-혁 갈등, 차기 대선구도를 바꿀 변수
이렇듯 현재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대선 주자들은 대체로 보수와 개혁의 유기적 결합을 꾀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총재도 '개혁적 보수'를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현 정치구도가 기본적으로 지역구도에 입각해 있고, 이를 토대로 보수와 개혁이 여야에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개혁적이라 하더라도 보수진영과 손을 잡지 않으면 대권 도전이 어렵고, 그 반대로 보수적 색깔이 강해 개혁적 이미지와 정책이 무시될 경우에도 집권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정치권의 아이러니다.
차기 대선에서 '3김'의 입김이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관측 속에서 '3김' 이후의 정치를 맞이한다는 점에서 보-혁 논란은 더욱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이 논란은 대선 이후 정치구도 전반을 변화시킬 가능성까지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인식이다.
때문에 차기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보수적 측면에서는 YS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여야를 넘어선 개혁진영의 제3세력화가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溫故知新이라고 했듯이 보수와 개혁은 항상 대립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 개혁과 보수를 조화롭게 융합시킬 지도력으로 보-혁 갈등을 극복할 것인지, 아니면 보-혁 진영의 권력 경쟁을 통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