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합법화에 이어 최고의 전문성과 지성을 갖췄다는 교수들이 노조 결성에 나섰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대학교육 현실에서 '독자적 학문'(참 학문)을 만들기 위해 교육부와 사립재단과 싸워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법적 기구인 노조가 필요하다는데...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하고 강의실에서 후학을 양성해야할 품위 있는 대학 교수들이 왜 노조 결성에 팔을 걷어붙였을까? 지난 1989년 전교조 합법화를 둘러싸고 벌였던 사회적 논쟁과는 다르게 더 큰 충격을 주고 있어 『e윈컴 정치뉴스』가 최갑수(서울대 서양사) 교수노조 공동 준비위원장을 만났다.
교육부와 사립학교 개혁을 위해 법적 기구인 교수노조 필요
교수노조는 1989년 전교조가 만들어질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을 중심으로 대학교수 약 550여명이 대학위원회를 만들어 전교조에 참여하면서 노조결성 주장이 제기됐지만 당시 교수들 정서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교수들은 민교협이나 전국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국교협), 전국사립대학교수협의회(사교협)이라는 임의 조직을 통해 교육개혁 및 사립대학 개혁을 주장해 왔었다. 교수노조 결성을 준비하고 있는 교수들은 이러한 임의 기구로는 더욱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는 대학교육의 위기 및 사학재단의 비리와 전횡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인식이다.
노조 결성 이유에 대해 최갑수 교수노조 공동준비위원장은 "90, 99년 두 차례에 걸쳐 사립학교법 개정이 좌절을 맛보고 사립학교 재단의 왜곡된 비리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뿌리가 깊은 것임을 알게 되고, 임의 기구 가지고서는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어 법적 강제력이 있는 조직인 노동조합 결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교수 계약제는 교수사회를 황폐화 시켜
더불어 교수들이 노조 결성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은 2002년 봄학기부터 시작될 예정인 교수 계약제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이 계약제가 실시될 경우 교수들의 생사여탈권이 재단에 집중돼 교수들이 정년퇴직 할 때까지 계약제로 묶여 교수사회가 극도로 황폐해질 것을 우려하는 교수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최 위원장은 "교육개혁의 목적은 교육과 연구의 질을 올리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교수사회를 황폐화시키고 교육과 연구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교수노조 결성의 가장 큰 필요성이 사학재단의 비리와 횡포를 막는 한편, 교육개혁 방향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는 교육부의 개혁을 통해 실질적인 대학교육의 개혁을 이루어 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대학교육의 문제-사립대학 중심의 기형적 대학교육 구조
최 교수가 말하고 있는 사립대학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 180여개 중 사립대학이 150여개로 83%를 차지하고 있고, 전문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 159개 전문대 중 네 다섯개만 제외하고 모두 사립재단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을 모두 합치면 사립대 비중이 85%에 이른다.
고등교육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이 80%로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사립학교가 많다는 미국도 50%를 약간 상회하고 있고, 일본도 약 46%에 이른다.
더욱이 대학교육의 여건이 날로 취약해지고 있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초등중교육 여건은 점점 좋아져, 초등학교의 경우 1970년 교사 1인당 학생수가 57명에서 2000년에는 28명으로 2배 가까이 줄어든 데 반해, 대학의 경우 1:18에서 1:38로 늘어났고, 전문대는 1:22에서 1:79까지 됐다.
사립대학 재단-비리와 전횡을 일삼고 있는데
최 교수는 "대학교육의 여건이 비참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아졌고, 이 사립대 재단은 전입할 돈이 없이 등록금에 의존해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면서 "교원충원 100%를 전제로 등록금을 받고 있지만 현재 사립대 교원 충원율이 56%, 국립대가 68%로 교수들에게 들어가야 할 40%의 돈이 시간강사로 때우고 있고, 그 돈이 사립대 재단에 엄청나게 적립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사립대 재단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가지고 '돈벌이'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일부 사립대나 전문대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고, 재단들의 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소문이 사실이었고,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으로 밝혀지고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특히 사립재단의 비리는 매우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 예로 전문대인 서일대의 경우 이 학교 1년 수입이 265억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학 이사장이 3년 동안 378억을 빼낸 비리가 드러났다.
또 서울 모 여대의 경우 학교 인사위원회에서 남모 교수를 전임강사 시보로 발령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비리로 물러났던 이사장이 재 복귀하면서 남모 교수를 짤랐는데, 그 사유는 '없음'이라는 것이다. 본인에게 통보도 안 해도 되고, 사유가 없어도 교수를 해임할 수 있는 것이 사립대학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대학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는 바로 교육부와 사립재단의 유착관계에 있고, 특히 교육부가 재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교육부가 변화되지 않으면 교육개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의 총체적 무능, 장기적 교육정책 부재
교수노조는 교육부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그 하나는 교육부가 해서는 안될 부분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 대한 자율성을 키우고 교육부의 통제권을 줄이는 쪽으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육을 통제하는 독재정권의 폐해가 여전히 교육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육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학 재단에 대한 감시·감독을 하지 않고, 교육 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청사진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대학입시에 신경쓰지 말고 대학에 들어와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에 의하면 대학 개혁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대학교육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 최 교수는 "교수노조가 대학사회의 겸허한 자기 반성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면서 "대학사회나 교육부도 자기 반성해야 하고, 사학재단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칼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교육 개혁-정권적 차원에서 '국가발전 전략'으로 접근해야
그러면서 그는 "지금과 같은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가지고는 어림없다"면서 "정권적 차원에서 대학 개혁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 교수는 "교육개혁은 진짜 학문 정책이란 차원에서 '국가발전 전략'이라는 더 웅대한 차원과 맞닿아 있다"면서 "교육부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그런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육개혁 및 대학교육을 입시정책에 국한시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결부시켜 국가의 독자적 발전 모델 및 사회상을 학문분야에서 이루어 내야 한다는 점에서 '국가발전 전략' 개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이를 실현해 내는 차원에서 "교수노조는 '참 학문' 또는 독자적인 학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체제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서구에 종속된 학문으로는 우리 스스로 '국가발전 전략'을 내올 수 없기 때문에 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적 영역에서 우리나라의 독자적 학문을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다.
교수노조는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지성인이란 차원에서 '그동안 개별화돼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교수 개개인의 권익 실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대학 개혁과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조직으로서 교수노조가 출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