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항씨 검거로 그동안 답보상태에 있던 병역비리 수사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박노항 '리스트'가 밝혀질 경우 정치권에 부는 '兵風'은 '핵폭풍'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한나라당이 초긴장하고 있는데...

1998년 6월 사회지도층을 떨게 하면서 한동안 병역비리 문제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병무비리의 몸통 박노항씨가 도피 3년 만에 전격 검거됐다.

이로써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연루 가능성이 높아 이들이 하나둘 밝혀질지의 여부가 주목되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 총선전을 뜨겁게 달구었던 정치인 자제 병역비리 의혹도 박노항씨의 '리스트'에 그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에도 '핵 폭풍'으로 다가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박노항씨 검거를 둘러싸고 벌어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미묘한 신경전은 '박노항씨 검거'가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케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박씨 검거가 세충,총풍,안풍에 이은 '병풍'이 될 수도 있다며 초긴장하고 있다.

정치인, 사회지도층 인사 연루됐을까?

당시 병무청 모병연락과 원용수 준위의 병무비리 사건이 포착되면서, 박노항 당시 국방부 합동조사단 소속 병무청 파견수사관 박노항 원사가 원 준위한테서 1억 7천만원을 받고 12명의 병역을 면제시킨 혐의가 드러나면서 박노항씨의 광범위한 병무비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박씨가 병무비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수십 억원을 챙겼고, 박씨가 검거되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상당한 규모의 병무비리가 더 밝혀질 것이라는 게 수사당국의 관측이었다.

특히, 원 준위의 경우 400여명의 고객명단이 적힌 수첩이 발견됐던 점과 수사당국이 박씨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청탁자 리스트가 적힌 수첩 10개가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도 있어, '박노항 리스트'의 규모와 청탁자가 누구인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병무청이 고위층 자제들을 '사회관심자원'으로 분류하고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신체검사를 실시했는데, 박씨가 이곳에서 11년간 근무했다는 점에서 사회지도층의 광범위한 연루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 수사당국은 병역비리 의혹이 있는 현역 정치인 명단을 작성했는데, 한나라당 15명, 자민련 5명, 민주당 1명 등 총 36명의 정치인이 수사선상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꼬리 내렸던 병무비리 수사 재개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반부패국민연대가 사회지도층 210명에 대해 "병역비리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파장이 일었는데, 그 중 정치인은 전·현직 의원 54명의 명단이 들어 있어 '선거용 정치탄압' 논란이 있었다.

정치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수사를 강조하던 정부는 원로인 한나라당 김태호 의원 1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차원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는데, 이로 인해 '龍頭蛇尾'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고, 이우재 전 의원의 경우 "명단이 잘못 작성돼 선거에 패배했다"며 법정 소송까지 벌여 1심에서 "법원이 병무비리 혐의가 없다"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결과가 '용두사미'라는 지적에 대해 병무비리 사건의 '핵심' 박씨가 검거되면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바 있어, 박씨의 검거로 정치인 및 사회지도층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검찰단의 박노항 특별검거본부 서영득 본부장은 사회지도층 인사 연루 여부에 대해서 "조사과정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사회지도층이 밝혀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박씨가 개입한 사건이 당초 알려진 20건 보다 훨씬 많은 100여건이 이른 것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이다.

그러나 현재 알려진 바로는 수사기관은 박씨의 '입'에만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씨가 '입'을 열지 않으면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수사 관계자들 중에서도 소문만큼 수사 성과가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정치인들의 연루 가능성이 그 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지난 총선 전에는 실제 정치인들의 명단이 오르내렸다는 점에서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씨가 잡히지 않아 현재 참고인 중지조치된 민간인도 수십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소환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치권 司正, '핵 폭풍' 부나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구여권 인사들이 대거 연루됐을 가능성이 많아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 졌는데, 정형근 의원의 '5월 정치권 사정설'과 결부돼 정치공세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이명식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박노항 원사 체포 계기로 병역을 기피한 모든 사람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13 총선전에 강력한 병역비리 수사 의지 발표에 반해 흐지부지 끝났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박씨 체포로 병역비리 근거가 밝혀져 그동안 답보상태에 놓였던 병무비리가 모두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씨 검거로 정치권이 긴장하게 생겼다"며 "가장 많이 연루됐을 것으로 보이는 한나라당이 긴장하게 생겼다"고 말해 실제로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관측된다.

더불어 민주당은 병역비리가 쟁점으로 부각될 경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두 아들의 병역 의혹이 자연스럽게 다시 떠오르는 '부수적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은 병역비리라는 대의명분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야당에 대한 편파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정두언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공개적이고 투명한 수사로 의혹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기 바란다"고 촉구하면서도 "현 정권이 지난 총선 직전 터뜨린 '병풍'의 재판을 기도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우리 당 옛 여권 출신 인사들이 병역비리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큰 게 사실 아니냐"며 "현 정권이 박씨 검거를 정략적으로 활용할 여지고 크다"고 우려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박씨 검거 시기에 대한 의혹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장광근 부대변인은 "서울에서 활보해온 박씨를 지금까지 왜 잡지 못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세풍, 총풍, 안풍이 흐지부지 되자 이번에는 '병풍'이 부는 것 아니가 하며 초긴장하고 있다. '5월 정치권 사정설'을 제기하면서 여권의 정계개편 의도를 경계했던 정형근 의원이 "전에 여권 관계자로부터 박씨를 언제든지 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검거 경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병풍'으로 이어질 경우 대여 정치공세를 벌이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병역비리에 대한 근본적 대책 세워야

아무튼 정부에서 병역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할 것임을 밝혀왔던 점으로 보아 정치인 및 사회지도층의 병역비리 수사에 국민들의 관심과 의혹은 날로 커지고 있다. 만약 지난 '총풍'이나 '안풍'처럼 이번 병역비리 수사도 흐지부지된다면 국민들의 상실감과 불신감을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철저한 병역비리 수사를 통해 연루자를 발본색원하고 강력한 처벌을 통해 국민들의 위화감과 상실감을 치유하고, 병역비리가 또다시 발붙이지 못하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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