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처리 방법을 두고 자민련이 '선별투표'를 주문해 반의회민주주의적 행태를 보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표결이 무산되자 JP와 이한동 총리가 마주앉아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고 하는데...

3당 정책연합을 통한 '강한 여당'은 '변칙 투표'라는 의회민주주의의 근본까지 흔드는 행동으로 나타나, 4.26 재보선 패배 이후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여권에는 설상가상으로 이후 정국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리 해임 결의안 '변칙투표'-반의회주의적 행위
당초 민주당 이상수 원내총무는 이한동 총리 해임 건의안 처리에 대해 본회의 직전 의원 총회에 3가지 표결 가능성을 제시했다. 정정당당하게 표결에 임하는 방법, 명패만 던지고 투표를 하지 않는 방법, 일부 의원들만 표결하는 방법 등이 그것.
결국 공동여당 내부에서 이탈표가 나와 이총리 해임 건의안이 통과될 것을 우려한 자민련의 압박에 밀려 민주당은 최악의 방법을 선택하게 됐다.
자민련은 일부 의원이 이 총리를 끌어내린 후 총리직에 눈독을 드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사후의 책임규명을 위해 아예 자당 의원 전원을 투표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반면 민주당은 115명의 의원 가운데 37명만이 표결에 참여했고, 78명은 아예 불참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투표에 참여할 의원들을 사전에 지정하고 연락을 받지 못한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토록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직자를 중심으로 투표에 참여했지만, 최고위원들과 3당 정책연합에 불만을 품고 있는 개혁진영이나 소장파 의원들은 투표 참여에서 제외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여권의 '변칙투표'는 의회주의의 파괴이자 개개인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권리와 의무를 '박탈'한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70년대 백두진 국회의장 시절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대표 등 소수만 투표에 참여토록 한 적이 있지만, 그 후 소속 의원들의 투표권을 빼앗은 사례는 없었다.
JP 손바닥에서 못 벗어나는 '국민의 정부'
'변칙투표'로 인해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표결이 무산된 후 같이 앉아있던 JP와 이한동 총리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 언론에 클로즈업됐다. 의회민주주의의 발전보다 이 총리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JP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JP와 이한동이 여유롭게 웃고 있는 그 시간 국회의사당은 여야의원들의 난투극으로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이 난장판 국회 한가운데에 있었던 젊은 소장파 의원들은 30일 밤 술집에서 '정정당당하게 투표에 임하지 못한 자괴감과 3당 정책 연합에 대한 실망감, 거대 야당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현실, 당리당략에 정치권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 의원은 "현재의 정당 지도부를 다 물갈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또 다른 의원은 "왜 우리가 국회에 있어야 하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고 절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특히 여권의 '변칙투표'라는 최악의 선택에는 자민련의 입김이 컸다는 것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는 3당 연합에 대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투표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3당 연합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사실 민주당 내에서는 '강한 여당론' 주창 이후 3당 연합으로 정체성 혼란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고, 4.26 재보선 참패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민련의 입김에 의해 '변칙투표'라는 반의회민주주의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국민의정부'가 JP의 손바닥 안에 있는 꼴"이라며 3당 연합으로 정부여당이 바른길을 가지 못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는데, 3당 정책연합의 첫 시험대가 됐던 이번 표결이 도덕성 시비에 빠지면서 더욱더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강한 여당'을 유지하기 위한 3당 정책연합이 거대 야당을 압도하지 못하고 반의회주의라는 무리수로 국민들로부터 명분과 실리까지 잃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여당의 벽에 3당 정책연합에 의한 '강한 여당론'이 큰 타격을 받음으로써 향후 여권의 정국운영 방향에 변화가 모색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처했다.
그동안 정치권 일각에서는 "소수 정권이 '수의 정치에 기반 한 정국주도권 확보'에만 주력할 경우 계속해서 무리수만 둘 것"이라는 지적이 계속돼 왔던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DJP공조 및 3당 연합 이후에도 여권의 개혁법안은 내부에서부터 심한 반발에 직면해 지난달 30일 유일하게 통과된 인권법은 '허울뿐인 인권법'으로 전락했고, 다른 개혁법안은 아직 제대로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실현-의회민주주의의 정착이 과제
이번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표결을 통해 나타난 의회정치의 말살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여권에서는 3당 연합에 의해 137석이라는 과반의석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표를 의식해 '선별투표'라는 변칙을 사용해 정체성이 다른 3당의 병렬적 조합의 한계를 무리하게 덮으려는 모습에서 반의회민주주의적 행태를 보여줬다.
한나라당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이 개표를 물리적으로 저지한 것이나 정창화 총무가 본회의장이 늦게 도착한 일부 의원에게 막말을 써가며 윽박지른 것 또한 당론에 우선하는 우리 의회정치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다.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을 둘러싼 여야간 격돌을 지켜본 한 시민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정치권에서 무엇보다 먼저 의회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가시적인 노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