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규제개혁 완화 요구에 정부여당이 기존 틀을 유지한 가운데 일부를 수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육 개혁'은 이미 물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이는 DJ의 '개혁 지속론' 강조와는 달리 기득권층의 반발로 인한 '개혁 후퇴'가 아니냐는 반응인데...

이를 두고 DJ정부가 힘이 빠지면서 각 이익집단들의 목소리에 밀려 '개혁 후퇴'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강조한 '개혁 지속'이 口頭禪에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재벌에 밀리기 시작한 DJ
재계가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33건의 정책개선 과제와 59건의 규제완화 과제를 건의한 데 이어, 16일 열리는 30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회의를 통해 투자 및 수출활성화 대책을 집중 요구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정부여당은 출자총액 제한과 30대 기업집단제도, 부채비율 200% 등 재벌정책의 큰 틀을 유지하되, 재벌 쪽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재배구조 문제나 경영의 투명성 제고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5일 "개혁은 경제계와도 합의한 것"이라며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해온 4대 개혁을 상시개혁은 흔들림 없이 해야한다"고 국무회의에서 강조했다.
한편,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기업의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사업에 대해선 이행을 제대로 한다는 전제 아래 보완하겠다"고 말해 재벌측의 요구를 일부 수용할 뜻을 내비쳤다.
정부에서도 침체된 투자의 불씨를 되살리고, 급감하는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재계의 요구사항을 전향적으로 검토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정부여당이 출자총액 한도 예외적용 범위를 늘리고, 부채비율 200% 예외 적용업종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벌기업 측에서는 내심 "출자총액 제한을 완전히 폐지시키는 게 궁극적인 목표"지만 'DJ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완강한 입장을 감안 정공법을 택하기보다는 우회로를 통해 정부의 재벌 정책을 흔들어 놓겠다는 속셈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립대 강철규 교수는 "현행 선단경영이 독립경영체제로 변화하기 전까지는 출자총액제한은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문어발식 재벌경영이 강화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출자총액 제한에 대한 예외적용을 확대할수록 재벌에게 계속 밀릴 가능성도 높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분석이다.
하지만 집권여당은 재계의 '재벌규제 완화' 요구를 한나라당이 적극 받으면서 정치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논란이 오래갈수록 여권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DJ정부'의 힘이 빠지고 있기 때문에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려온 재벌들의 압력에 정부가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대두된다.
'공교육 개혁'도 물 건너갈 위기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등 교육정상화 및 교단 안정을 위한 교육관련 핵심 법안들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와중에, 정부는 교사들의 동요와 갈등을 막기 위해 2년 4개월 동안 심혈을 기우려 마련한 '교직발전종합방안'을 사실상 확정했지만 일선 교사들은 "준비기간에 비해 알맹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이 마련한 안은 각종 수당 인상 및 봉급 인상 등 처우개선에 4조3천억을 투입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꾀하고, 전문직 종사자에 교직을 개방해 2만2천명을 증원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교육정상화 및 교단 안정을 위한 교육관련 법안 등 개혁과제 11개 사항은 시행이 불투명해지거나 연기됐다.
이에 정부여당이 한국교총의 '정치활동' 선언 등으로 교사들의 불만이 더욱 고조되자 교사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정권재창출을 위한 '敎心' 달래기에만 연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선 교사들도 "공교육 개혁이라는 미사여구만 남발한 채 실질적 개혁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개혁을 추진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교육 개혁의 근본적 목적은 권위와 신뢰를 잃고 있는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데 있다. 교사, 학교, 학생, 학부모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학부모들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그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교총'이 정치활동을 선언하는 등 교사들의 불만이 커지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한 '당근책'만을 제시하는데 머물러 있고, 근본적인 교육제도 및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전혀 마련되지 못하거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교육계나 재단 등에 밀려 파기되거나 흐지부지 될 상황에 처해있는 실정이다.
전교조 이경희 대변인은 "그나마 교사 처우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 다행이지만 교장선출보직제, 교육관련 개혁, 학교자치법 제정 등 학교자율성을 높이는 내용이 포함돼야 실질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며 불만을 피력했다.
도전 받고 있는 DJ의 '개혁 지속론'
이를 볼 때 사실상 DJ가 '개혁 지속론'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DJ정부'의 개혁이 후퇴하고 있는 분위기다. 재계로부터 재벌개혁이 밀리기 시작하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교육계에 밀려 교육개혁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더불어 5월 말에 마련될 예정인 건강보험 재정 위기 타개책 및 의료개혁안과 관련, 정부가 의·약계에 밀려 국민들 부담만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벌써부터 대두되고 있다.
DJ정부는 기로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 교육계, 의·약계에 밀려 추진 중이던 개혁이 특별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흐지부지 될 경우 곧바로 '레임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어 힘이 빠지기 시작하자 사회적 기득권 계층으로써 개혁 대상으로 몰렸던 이익집단들의 제 몫 찾기가 본격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어떻게 제어해 나가느냐에 따라 'DJ정부'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