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의 태산같은 성은에 감사, 정권재창출에 목숨바칠 각오', 이는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충성서약서를 방불케하는 안동수 신임 법무장관의 취임회견문으로 안 장관의 작성 여부를 떠나 파장이 커지고 있는데...

이번 인사가 신건 국정원장, 안정남 국세청장, 이무영 경찰청장,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 이번에 내정된 신승남 검찰총장 등 사정기관 책임자에 대한 '호남편중 인사 논란'을 무마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충청 출신인 안 법무장관이 임명됐다.
그런데 '정권재창출을 위한 친위체제 구축'이라는 DJ의 인사방침을 의식한 듯, 안 법무장관측이 취임식 직전에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태산같은 성은에 힘입어 정권재창출에 목숨을 바칠 각오"를 피력, 법 적용의 공정성과 장관 자질 문제 등 여야간 공방이 확대되고 있다. 더욱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상식 이하의 "구시대적 충성서약"과도 같아 파문이 커지고 있다.
'태산같은 성은'에 힘입어 정권재창출에 목숨 바칠 각오된 신임 법무부 장관?
언론사들의 요청으로 지구당 여직원이 보내온 문건을 요약해보면 "가문의 영광인 중책을 맡겨주시고, 부족한 저를 파격적으로 발탁해 주신 대통령님의 태산같은 성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꿈만 같습니다", "집권후반기에 대통령님께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등의 내용이 수록돼 있다.
또 이어서 이 문건에는 "성공한 대통령님과 성공한 국민의 정부만이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는 각오를 다졌다.
아무리 자신을 법무부장관에 DJ가 임명했다손 치더라도 "마치 조선시대 왕에 머리를 조아려 충성을 맹세하는 식의 글을 작성했다는 것"자체가 오로지 국민을 위한 공정한 법집행 보다는 "태산같은 성은에 감사하며 목숨걸고 정권재창출에 매진하겠다"는 정치성 아부의 극을 달리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다.
이 정도의 '충성서약'과 '정권재창출'소신을 볼때 DJ의 이번 인사가 '정권재창출용'인사라는 사실을 반증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네티즌들 비난의 글 쇄도 - "마치 코미디 보는 듯 하다"
각 언론사 사이트나 정치인 홈페이지에는 네티즌들의 항의성 글이 쇄도하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에는 "마치 사극이나 코미디를 보고있는 듯 하다"면서 "공정한 법 집행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또 한 언론사 사이트의 한 네티즌은 "듣기에도 민망한 봉건주의시대 단어들을 열거하는 것을 보니 참 한심스럽다"고 글을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은 "법을 집행하는 법무장관 지명자가 대통령에 대해 "聖恩"이나 운운하고, 법 집행이 정상적으로 될지 의문이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반면, "장관은 정권과 운명을 같이해야하고 그래서 정권재창출은 당연하다"며 "대통령에게 충성하여 신임을 얻는 게 장관들 몫이니 너무 고까워하지 말라"는 반박 글도 올라 있었다.
'의외의 人事'에 의외의 파문
이는 여야 정치공방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문건 작성자가 안 장관임을 기정사실화 한 채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와 함께 '정권재창출을 위한 사정의 칼'을 휘두를 것"이라며 안 장관 해임을 국회에 상정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
민주당은 '안 장관 동료가 작성한 글'로 치부하면서 야당의 공세를 일축했다. 전용학 대변인은 "동료 변호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작성한 초고를 여직원이 착각해 기자실에 팩시밀리로 송고했으나 안 장관은 실제 그러한 내용으로 취임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미뤄 문제의 문건은 안 장관이 작성한 것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안 장관이 작성하지도 않은 것을 문제삼아 해임을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며 한나라당을 반박했다.
실제로 안 신임장관은 법무부 청사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인권 우선주의'를 강조했으며, '정권재창출' 등 정치성 있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되고 있는 문건을 보낸 여직원과 문건의 초안을 쓴 것으로 알려진 동료 변호사의 말이 엇갈리고 있지만 진위여부를 떠나 한나라당의 공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 확대, 정착이 최선책
김대중 대통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차기 검찰총장으로 거론돼온 신승남 검찰총장 내정자로 인한 호남 편중인사 논란을 무마시키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김정길 전 법무부장관 후임에 안 장관에 임명이라는 "의외의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소위 '충성서약 문건'이라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 "평검사 출신의 안 장관이 검찰 조직을 장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이 정·관계에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안 장관이 자리를 잡고 영(令)을 세우는데는 더욱 어려워졌다.
특히, '정치인 출신 안장관'은 공정한 법 집행을 총괄하고 책임져야할 법무부장관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법 집행의 공정성과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정치편향적 법집행할 것이라는 우려의 눈길을 받고 있다.
장관이 정권의 수장을 위한 봉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사청문회'를 모든 장관직으로 확대하고 정착하는 것만이 이와같은 인사파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사청문회 정착으로 국정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만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독단에서 오는 인사 폐해를 방지할 수 있고, 또 대통령도 人事(인사)에서 인물중심으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며, 人事만 하면 대여 공세차원에서 해왔던 야당의 빈번한 해임안 요구도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