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만에 처음 직선제로 치러진 철도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민주노총 성향의 김재길(36, 청량리 기관차 승무 사무소 기관사)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앞으로 노동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된다.[김재길위원장 인터뷰 보기]

이번 선거는 2만 5천여 조합원 중 24,125(97%)가 투표에 참여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김 당선자는 14,924(61.9%) 득표율을 보여 38.1%를 얻은 집행부가 미는 오금묵 후보를 높은 차로 승리하였다.
우선 오금묵 후보(54, 여수역 역무원)는 노조 집행부쪽 후보로 출마했다. 이에 반해 김재길 신임 노조위원장은 집행부에 반대하는 '생존권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철도노동자 투쟁본부(이하 철도투본)' 후보였다.
민주파 김재길 위원장 '민영화 반대' '파업불사'설 무성
철도 민영화를 앞두고 치러진 이번 선거는 기존의 집행부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오 후보가 주류쪽의 집행부가 미는 데다 최대 조합원수를 자랑하는 운수직종 출신(역무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철도 민영화 방침을 앞두고 조합원들의 인력감축에 대한 불안과 불만, 그리고 기존 집행부의 지난해 '민영화 저지 파업 철회' 등에 대한 노조원들의 실망 등이 김재길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김재길 신임 노조 위원장은 88년과 94년 두 번의 파업을 강행하는 등 투쟁력을 자랑하는 운전직종 출신(기관사)이다. 게다가 그는 '철도 민영화 철회'를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올해 9월 국회 통과 예정인 '철도구조개혁법안' 전면 입법 저지, 일방적 인원감축 반대, 철도산업진흥법 제정 추진, 기능직 공무원 근로기준법적용을 위한 헌법소원 추진 등 노조뿐만 철도청 관리자들까지 김 위원장의 당선을 공공연히 얘기했다.
또한 두 후보의 출신이 호남출신이라는 점도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과거 철도노조 선거가 영남 대 호남이라는 지역주의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달 1일 손학래 철도청장으로 바뀐 후 철도청도 예전같은 노골적인 선거개입이 줄었다. 게다가 경실련 참여연대 등 철도노조의 공정선거를 위한 시민단체 모임인 '공정선거감시단'을 구성해 감시 활동을 벌인 점도 이번 선거에서 눈에 띄는 점이다.
'민영화=해고위기', 김 후보 몰표로 이어져
그렇다고 선거기간동안에 전혀 '공정성 시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거가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오손석)가 결정한 투개표 참관인을 소속지부 조합원에 한정한다는 방침에 김재길 후보측에서 강력히 반발하며 자유로운 투개표참관을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철도노조 사무실을 오후부에게만 선거운동본부로 사용케 하다가 시비가 일자 선관위는 김 후보에게도 허용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원들의 공정선거 바람과 정책선거를 요구하는 열망이 높은 데다 '철도 민영화 저지'라는 공통된 목표 때문에 커다란 격차로 김 위원장이 당선하게 되었다.
한편 이번 선거결과와 관련해 지역·직종별 표분석에서도 김 위원장은 모든 지역에서 60∼80%에 이르는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전통적으로 집행부쪽 지지가 높았던 보선지부가 도급화가 진행되면서 고용불안에 대한 불만이 현집행부 반대로 나타났다. 또 전 노조 위원장이자 집행부 출신인 김기영씨 출신지역인 영주지방본부 조합원들도 70% 이상이 김 위원장을 지지한 것도 당선하는 데 주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총 위기의식 속에 자축하는 민주노총
이번 철도노조 선거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축하 성명문을 발표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기존의 집행부가 한국노총 산하 일개 '산별조직 선거'라는 외양 보다는 한국노총에 속해 있던 기존 집행부와 민주노총을 지향하는 '민주후보'와의 맞대결 양상을 띄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노총의 산파역이었던 철도노조는 지난 48년 출범 이래 각 지방의 조합원이 지방 대의원을, 지방 대의원들이 중앙 대의원을 각각 선출해 위원장을 뽑는 3중 간접 선거제를 고집, 여론이 노조 집행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보수 노조' 심지어 '어용 노조'라는 조합원들의 비난을 받아왔었다.
이로인해 지난 9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전국의 기관사들만 파업을 벌여 54명이 해고됐으며, 이론 인해 현 민주철도투쟁본부가 주축이 돼 지속적인 내부 민주화 투쟁을 벌이는 등 극심한 내홍을 겪기도 했다. 따라서 기존 노조 집행부에 반대해온 '개혁파'의 이번 승리로 한국노총 그늘에서 벗어나 민주노총 소속으로 상급단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리라고 노동계는 풀이하고 있다. 한국 노총이 공식 축하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한편으론 이러한 위기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중론이다.
강성 노조 위원장 탄생, DJ정부의 공기업 개혁 정책에 제동 걸 수도
e윈컴과의 서면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이번 선거는 가장 저질선거였다"며 "멀쩡한 자신을 '간질병 환자'라고 흑색선전까지 상대후보에 의해 광범위하게 유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민주후보를 선택한 것은 바로 선거의 승리자는 조합원들"이라고 지지세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또 오후보를 누르고 압승한 요인에 대해 "오금묵 후보는 정년퇴직이 3년 남았는데, 3년 남은 사람에게 3만 철도노동자의 생존권을 맡길 수 없다'는 조합원들의 절박한 심정이 승리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또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강성노조의 출범이 아니냐는 질문에 "조합원들에 대한 생존권 위협이 심각하면 당연히 노동조합이 강성으로 되는 것이고, 조합원들에 대한 사용자측의 태도가 협조적이라면 당연히 온건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한 뒤 "당연히 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DJ 정부의 공기업 개혁 정책에 대해서 김위원장은 한 마디로 "공기업 포기 정책"이라며 "공익보다 효율을 강조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고 언급했다.
김재길 위원장 인터뷰 전문 보기
이번에 함께 실시한 대의원 선거결과 철도투본진영이 44% 확보한 것도 김위원장에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의원들의 상당수가 기존 노조 집행부 계열이여서 상급단체 변경문제를 비롯하여 지방본부 존치 여부 및 민영화 저지 투쟁 등 대의원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한 현안이라 대의원들과의 갈등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성의 김 위원장이 들어서면서 명확한 '철도 민영화 반대입장'과 이를 위한 '전면파업 불사'는 현재 DJ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 전망이다. 정부는 이미 3월에 철도민영화 관련 법인 '철도산업구조개혁기본법'을 입법 예고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이를 처리할 방침이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와 철도노조 줄다리기 속에 철도 이용자인 국민들만 피해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높은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