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이 민심을 읽지 못하거나 국정난맥상이 이어질 경우 여지없이 '정풍운동'이 촉발됐다. 현 민주당 초재선들의 정풍운동도 그러한 맥락이다. 69년 공화당 정풍운동과 79년 공화당 2차 정풍운동을 살펴본다.

동교동계 의원 및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의 인식은 "여권에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땐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한 반대입장을 피력하고 있는데 반해, 28일 정동영 최고는 "시급하게 초재선 의원들의 문제제기를 받아 확실한 대책과 결론을 내야 한다"며 확대당직자회의장을 박차고 퇴장하여 사태는 더욱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초재선들은 31일 의원워크숍 전 29일-30일에 세를 다시 규합하고 3차 행동결행까지도 계획하고 있다.
이들 초재선들의 정풍운동에 여권 핵심부와 동교동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충정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당내 기구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도 큰 무리가 없다며 비판적이다. 반면 동교동계는 "버르장머리 없는 X들'이라며 상당히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풍파와 동교동의 극단적인 팽팽한 대립상태에서 정동영 최고가 정풍파 초재선과 힘을 합친다면 민주당 정풍운동은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지난해 말 정동영 최고로부터 촉발된 '권노갑 전 최고 이선 후퇴론'을 둘러싸고 신-구 주류간의 파워게임으로 비춰졌던 전례로 보아, 초재선 의원들의 정풍운동 새로운 파워게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 최고가 초재선 의원 9명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고, 김근태 노무현 김원기 정대철 최고는 "초재선의 충정은 이해하지만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관망하고 있다. 또 김중권 대표와 한화갑 최고도 "당의 공식기구를 통한 문제제기"를 거듭 강조하고 있으나, 정풍운동이 한 최고에게는 불리하지 만은 않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쇄신대상으로 권노갑의 구동교동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섭 국회부의장이 말한 69년 1차 정풍운동
역사적으로 정풍운동은 당내 언로가 막히고 당 지도부의 국정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때 제기되곤 했다. 집권당이 민심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거나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당내 파워게임과 함께 대두됐다.
박정희 공화당 정권 시절 '정풍'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던 이만섭 국회의장은 초재선 의원들의 당정쇄신 요구에 대해 "당과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충정 어린 행동으로 이해한다"고 긍정평가 했다.
반면, 이 의장은 69년 공화당 정풍운동 당시 의원총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18시간 동안 난상토론이 이뤄졌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초재선 의원들에게 "당이 타격을 받지 않는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방향 못 잡는 공화당에 쓴 소리-79년 공화당 2차 정풍운동
공화당 정풍운동은 79년 말 다시 발생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후, 박 전대통령 1인에 의해 좌우되던 공화당이 혼란에 빠졌다. 공화당 총재에 JP가 선출됐지만 집권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79년 12월 24일 공화당 정풍파(整風派) 의원들은 △국민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급기야 10.26 사태를 겪게된데 대한 책임 통감 △안정을 통한 개혁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당을 떠나고 공직에서 퇴진 △민주적 당헌 마련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등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당시 공화당 총재인 JP에 전달했다.
공화당 정풍운동의 주역들은 박찬종 오유방 정동성 홍성우 의원 등 8명이었다.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80년 2월 26일 창당 17주년을 기념해 제2차 결의문을 다시 JP에 전달했고, 3월 5일에 정풍운동 멤버 8인은 당직 사퇴서를 첨부해 "공화당이 야당이 될 각오를 촉구"하는 제3차 결의문을 전달하게 된다.
그 결과 당시 비리 정치인으로 정가에 '떡고물'이라는 유행어를 퍼뜨린 중정부장 출신 이후락 의원과 임호 의원이 제명되게 이르렀다. 반면, 공화당과 JP는 정풍운동 핵심으로 당지도부의 회유를 뿌리치고 끝까지 가겠다는 박찬종, 오유방 의원을 출당 조치하는 한편, 당지도부와 타협했던 나머지 6명은 경고조치만으로 회유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JP가 "정풍운동을 이용해 당 장악력을 높이는 데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JP가 총재로 있었던 공화당은 구심점이 없어 혼란한 상태였다. 신현확씨와 김성진씨를 중심으로 박 전대통령 유업 계승이라는 명목으로 '신당창당'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고, 이들과 이후락씨와는 견원지간이었다. JP는 이후락씨를 제명하고, 자신의 위치까지 흔드는 박찬종씨를 출당시킴으로써 당 장악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정쇄신, 정체성 회복-2001년 민주당 정풍운동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의 정풍운동은 '안동수 전 법무장관 인사 파동'으로 촉발됐지만, 3당연합에 의한 정체성 상실, 부평 대우노조 과잉진압, 국회 각종 변칙파동, 건강보험 재정위기, 새만금 사업 연기, 각종 정책혼선 등 계속된 국정난맥상으로 인한 민심이반과 정체성 혼란이 그 원인이다.
특히 초재선 의원들은 이러한 국정난맥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무능한 동교동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 김대중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고, '인사 파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민주당 내에는 초재선 의원들의 정풍운동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일각에서는 초재선 의원들이 특정 비공식라인 2∼3명의 대상인사에 대한 퇴진 문제를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3차 행동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정동영 최고위원이 조만간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3차 행동을 준비하고 있는 초재선 의원들과 결합할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