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삼성의 명예훼손 고발 사건으로 참여연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IP 추적을 삼성직원에게 시킨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우차 노조 과잉진압 사건'으로 곤혹을 치른 경찰은 '삼성 앞잡이 논란'까지 휩싸일 전망인데...

경찰이 삼성생명의 명예훼손사건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참여연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그런데 경찰이 고발자인 삼성생명의 직원을 경찰직원으로 위장해 참여연대 웹사이트 서버를 조사한 사실이 밝혀져 "경찰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뿐만 아니라 "경찰이 삼성의 하수인이냐"는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경찰, 참여연대 압수수색에 고발인측(삼성) 직원 협조 받아

남대문 경찰서는 지난 5월 31일 "참여연대 웹사이트 게시판에 올려 졌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의 경영참여 반대 성명서'라는 제목의 글은 허위이며 삼성생명 직원 5천여명의 실명을 도용해 이들과 삼성생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삼성생명이 고발해와 압수수색을 집행한다"고 밝히면서, 참여연대 웹사이트 서버에서 문제의 글 게시자의 IP주소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삼성SDS 직원으로 삼성생명에서 파견근무중인 이모 과장에게 참여연대 서버를 직접 조사하게 한 것이다.

경찰은 처음에는 삼성직원을 "남대문 경찰서 소속"이라고 소개하다가, 참여연대가 신원을 밝힐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자 조사가 끝난 뒤에야 삼성생명 직원임을 시인했다.

참여연대는 즉각 압수수색 당시 화면과 경찰이 삼성쪽에 보낸 업무협조 공문, 삼성직원이 작성한 경위서 등을 증거물로 공개하면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단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발부된 것도 납득할 수 없지만, 공권력의 법집행에 고소인쪽 회사 직원이 참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어떤 법률적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강력 비난하는 한편, 남대문 경찰서에 항의방문해 영장집행에 삼성직원을 참여시키게된 경위와 관련자 문책을 추궁했다.

이에 남대문 경찰서는 "경찰인력으로 수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도 있다"며 "고소인도 입증 책임이 있고, 시급히 IP주소를 추적하기 위해 삼성쪽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불법이 아니라는 경찰의 해명이다.

경찰은 당초 사이버수사대에 업무협조를 요청했으나 파견할 인력이 없어, 삼성에 인력지원을 요청했고, 삼성 업무용 차량을 이용해 참여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26일 참여연대 웹사이트 게시판에 '삼성 이건희 회장 아들 이재용의 경영참여 반대 성명서'가 삼성생명 직원 5,083명의 연명으로 게재되자, 이를 삼성측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참여연대측은 삼성측의 삭제 요청을 받고 "이해다툼이 있고,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을 경우 당사자의 요청에 의해 삭제할 수 있다"는 게시판 운영방침에 따라 28일 오후 1시경에 문제의 글을 삭제한 바 있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인가? 삼성의 하수인가?

이로써 중립성과 형평성이 생명인 경찰이 고발자 측과 함께 수사를 진행하는 "전례 없는 일"을 추진해 공권력의 공정성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했다. 그것도 한국의 최대 재벌이고 고발자인 삼성의 업무지원을 받는 공권력이 되고 말았다.

참여연대를 찾은 한 네티즌은 "국민의 경찰인가? 삼성 이건희의 마당쇠인가?"라며, "대우차 노조 과잉진압 사건, 매춘상납 사건 등 요즘 경찰이 제정신을 상실했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삼성이 국가기관인가요? 삼성이 공권력 행세까지 공권력의 묵인 아래 참여하고 있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며 공권력 행사의 불감증을 지적했다.

이번 '참여연대 압수수색에 대한 삼성직원 투입 사건'은 공정성을 완전히 팽개친 공권력의 업무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지난 부평 대우차 노조 과잉진압 사건으로 혼쭐난 이후 공권력 행사에 신중함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공정성 시비까지 터져 공권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홍준철기자jchong2000@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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