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DJ가 밝힐 국정쇄신 방안이 "인적쇄신 없는 형식적 시스템 개편"이라는 미봉으로 그칠 전망이다. '모반'으로 비칠 우려 때문에 조심스러운 소장파 의원들이 "인적쇄신 방안 포함"을 당지도부에 요청했다는데...

지난 4일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당 중심의 국정운영과 시스템 개편"에 대해서는 소장파 의원들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되, 인적쇄신에 대해서는 "인사문제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로 분명한 선을 긋고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고 말했다.

이로써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개혁에 대한 구상"을 밝힐 13일을 기점으로 민주당을 요동치게 했던 정풍운동은 사실상 "인적쇄신 없는 형식적인 시스템 개편"이라는 미봉으로 그칠 전망이다.

하지만 정풍운동을 주도한 소장파 의원들이 5일 "대통령이 13일 발표할 국정개혁 구상에 인적쇄신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김중권 대표에게 전달할 계획이어서 아직 여진이 계속 남아있다. 만약 국정개혁 방안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지 않아 소장파들이 다시 집단행동으로 가시화될 경우 이번 정풍운동보다도 더 큰 파장이 집권당을 강타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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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정풍운동-다시 폭발할 뇌관

일단 대통령의 국정개혁 방안에 대해 소장파들이 "부족하다"며 반발하고 나설 경우 '항명'이나 '모반'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고, DJ의 레임덕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반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소장파 의원들 서로간의 인식차가 크고, 정풍운동을 통해 소장파들의 결속력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당내 세력화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정풍운동 대오가 급속도로 약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5일 있은 소장파 의원들의 '인사쇄신 포함' 건의가 어찌 보면 집단행동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나 당지도부는 불쾌감을 숨기고 있고, 전용학 대변인도 "뒤풀이 정도로 본다"고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다. 소장파 의원들이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소장파 의원들이 "모임을 계속 유지할 것을 합의"하는 등 세력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면에서 이후 지속적인 국정쇄신책 요구를 주창하기 위한 '포석'을 놓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로써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정풍운동은 미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정풍운동을 주창했던 의원들이 청와대와 당지도부가 제시하는 국정개혁에 순순히 따를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소장파 의원들의 정풍운동은 수면 아래로 잠복할 것이지만 우리당 상황에서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것이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장파, 여권의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

민주당 정풍운동은 국민들에게 여권의 변화 가능성을 인식시켜 주고, 개혁세력이 여권 내 무시 못할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정풍운동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하락하지 않고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중앙일보(6월4일) 여론조사 결과 57.9%가 민주당 소장파의 당정쇄신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렇듯 국민의 다수는 여권의 쇄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권 내부적으로는 대통령 1인 중심의 '인사쇄신'을 정면으로 제기하며 DJ의 통치스타일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나옴으로써, 친정체제 및 동교동계의 비선라인에 의존한 DJ의 1인 통치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시켰다는 성과도 있었다.

더불어 정풍운동 과정에서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추미애 의원이 앞장서고 초선의원들이 뒷받침하는 소장파 개혁세력의 태동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동교동계에 의해 가로막혔던 개혁세력의 세력화가 가능케 됐다는 점이다. 정풍운동의 중심에 서있는 14명의 의원들은 계속해서 모임을 갖고 정국운영에 대해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먼저 뚜렷한 방향과 궁극적 목표가 불명확 것도 문제였다. 너무 포괄적 방향을 제시해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고, 개혁세력을 결집시키는데도 한계가 많았다. 정풍파 내에서도 동교동과 김중권 대표 모두에게 화살을 던져야 한다는 의견과 김대표는 제외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기도 했다.

게다가 정풍운동 과정에서 정동영 최고와 정균환 총재특보의 "대통령 면담 주선" 논란이 김민석 의원 '거짓말 공방'으로 변질되는 것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흠집이 난 것도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또한 다른 대선 주자들이나 최고위원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획득하지 못한 점도 세력화되지 못한 개혁적 소장파 의원들의 한계임이 분명하다. 김근태 한화갑 최고와 노무현 고문의 경우 경선 때문에 청와대와 동교동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정풍파가 민주당내 유력한 세력으로 부상할 경우 대선 주자 또한 이번 정풍운동처럼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없고, 분명한 선택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번 '정풍' 파동에서 "개혁세력의 우선 결집"을 주장했던 노무현 고문이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소장파들과의 관계가 멀어질 것으로 보이며, 김근태 최고도 애매 모호한 입장을 나타내 입지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민이 주시하는 DJ의 국정개혁 방안

민주당 소장파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13일 "대통령의 국정개혁 방향" 발표를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DJ의 국민에 대한 약속이 흐지부지 됐던 경험으로 보아 국정개혁 내용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많다. 민주당 소장파들도 "사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국정개혁 방안이 나오리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당 중심의 국정운영은 시스템보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비슷한 약속이 얼마가지 않아 흐지부지된 경우도 여러번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국정개혁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고, 청와대에서의 최고위원회의 정례화도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다시 국민이 바라는 국정개혁과 인사쇄신이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여권은 조만간 DJ 총재직 사퇴까지 요구하는 한편, 차기 대선 주자 조기가시화가 봇물처럼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이땐 DJ가 당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급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최고는 청와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에도 미봉에 그치면 더 심한 민심이반이 올 것이다"고 정풍소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13일 DJ의 '국정개혁 방안' 발표와 이에 따른 민주당 소장파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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