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보다 가난해졌다" 37%

최근 들어 ‘사회적 신분’의 상승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힘들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의 상당수는 자신이 예전보다 훨씬 가난해졌으며 돈도 불평등하게 분배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의 특별연구팀의‘불평등과 공정성 전국표본조사 연구보고’에 따르면 국민의 36.5%가 5년 전보다 가난해졌다고 응답했다. 나아졌다고 답한 비율은 그보다 5.8%포인트 적은 30.7%에 그쳤다. 또 돈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고 느끼는 비율도 4% 가량 증가했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졌다”〓




아버지가 농민일 경우 자식이 정신근로자(전문직, 관리직, 사무직 등)가 된 비율은 95년 39.6%였던 데 비해 2000년에는 8.8%포인트 줄어든 30.8%에 그쳤다. 반대로 농민 아버지를 둔 자녀가 육체근로자가 된 비율은 95년 32.1%에서 2000년 41.5%로 늘었다. 농촌 출신이 정신근로자로 진출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이들이 육체근로자가 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




반면 자녀가 아버지를 따라 정신근로자가 된 비율은 95년의 70.0%에서 2000년 72.5%로 늘어 우리 사회에서도 ‘계층의 세습’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석현호교수는 “이번 조사가 신분의 변화를 완벽하게 설명해줄 수는 없지만 부의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사회적 신분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전보다 가난하다”〓




소득 불평등을 가리키는 ‘지니계수’(0∼1, 값이 클수록 불평등)는 95년의 0.30에서 2000년에는 0.32로, 재산 불평등은 0.54에서 0.56으로 악화됐다.




특히 ‘5년 전보다 못살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36.5%나 되는 것과 관련, 연구에 참여한 경북대 이정우(李廷雨·국제통상학)교수는 “일시적 경기후퇴 때문이라기보다 IMF사태 이후 경제적으로 양극화된 구도가 되돌려놓기 힘든 수준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응답자 중 59.2%가 ‘5년 뒤에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답해 절반 이상은 아직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직장에 붙어 있자”〓




근로자들은 회사측의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 5년 전보다 소극적인 반응을 보여 최근 경제난에 따른 취업난을 짐작케 했다.




실제 회사측의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 ‘참고 지내겠다’는 비율(복수 응답)이 95년의 80.1%에 비해 2000년에는 4.4%포인트 늘어난 84.5%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노조에 고발하겠다’는 비율은 3.7%포인트 줄어든 18.6%에 그쳤고, 항의의 표시로 결근하겠다는 비율도 4.3%포인트 적은 11.6%에 머물렀다.




대신 몇 년 뒤 전직을 고려하겠다는 비율은 17.4%포인트나 늘어난 65.1%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직업환경이 다양해지면서 보다 나은 조건의 회사로의 전직을 희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갈수록 외풍(外風)에 휘둘리는 정부 정책”〓




응답자들은 정부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5년 전에 비해 보다 풍부한 정보와 외부 의견을 접하는 것으로 평가했지만, 외부 압력과 특정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봤다.




특히 특정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대목에서는 95년보다 11.2%포인트가 증가한 85.7%가 ‘그렇다’고 답했다. 서울대 김명언(金明彦·심리학)교수는 “철저한 사전 검증 없이 밀어붙인 의약분업이나 각종 인기영합 정책들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 ‘불법행동’(27.8%→31.1%)이나 ‘이민’(27.8%→45.3%)을 고려하겠다는 극단적 반응이 ‘관련기관에 시정 요구’(32.2%→34.0%)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반응에 비해 크게 늘었다. 연구팀은 “최근 급증하는 캐나다나 뉴질랜드행 이민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라며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때때로 ‘포기’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갈등은 계속된다”〓




88올핌픽 전후의 여론조사 때보다 2000년 현재 지연, 혈연, 학연 등 ‘연줄’이 사회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특히 8.2%포인트 증가한 53.7%(복수응답)가 지역감정이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또 경상도 사람들은 김영삼 정권이나 현재의 김대중 정권이 경상도 지역의 발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각각 57.6%, 59.8%)고 평가한 반면 전라도 사람들은 대체로 김영삼 정권은 전라도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53.4%)을 줬고 김대중 정권은 좋은 영향을 줬다(49.3%)고 여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 충청도 등 나머지 지역민들은 두 정권 모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비율이 압도적(72.3%)이었다.




한편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주요 요인은 과거 정부의 경제발전정책, 지역주민간의 편견, 정치인의 선거운동 순이었으나 2000년 조사에서는 정치인의 선거운동이 15.4%포인트 증가한 38.2%를 기록해 가장 큰 지역감정 요인으로 떠올랐다. 방송 등 일부 언론의 편향된 선거방송도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주요 요인(6.7%→10.0%)으로 떠올랐다.




서강대 나은영(羅恩暎·신문방송학)교수는 “지금까지 지역갈등은 대체로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조장되는 측면이 컸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따라서 대다수의 국민은 오히려 지역갈등 구도의 피해자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병희·이승헌기자>bbhe4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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