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 1 돼도 이인제 유리하다 -리서치 앤 리서치 노규형 사장

노규형 사장(48)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정치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노사장은 1989년 (주)리서치 앤 리서치를 설립한 뒤 지금까지 대통령선거 2회, 국회의원선거 3회, 지방자치선거 3회에 걸쳐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리서치 앤 리서치는 2001년 2월20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 3주년 여론조사를 했다. 이 결과는 ‘동아일보’에 보도된 바 있다. 리서치 앤 리서치는 또한 3월6일 자체조사를 실시했다.




노사장은 “현 시점에 하는 여론조사는 예언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거에 대한 응답자의 관여도가 낮은 데다가 아직까지 정치지형도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결과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거라는 예상이다.




노사장은 97년 대통령선거 당시의 자료를 통해 현재 여론조사의 변화가능성을 제기했다. 리서치 앤 리서치는 96년 8월, 그러니까 15대 대통령선거를 1년 4개월 앞두고 신한국당 ‘9룡’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했다. 당시 선두는 박찬종 후보(28.5%)였으며 이회창(24.7%), 이홍구(19.5%), 이인제(3.7%)의 순이었다. 결국 1년 4개월 뒤 살아남아서 본선에 참가한 사람은 2위와 4위였던 셈이다.




“당시 민주당 후보로 김대중 총재를 놓고 가상대결을 벌이면 신한국당이 절대 우세했습니다. 박찬종(48.1%) 대 김대중(22.4), 이한동(26%) 대 김대중(25.1%)으로 나왔어요. 그때보다 5개월이나 더 남아있는 지금의 지지율은 ‘재미’ 이상의 의미는 없는 셈이죠. 한 가지 주목할 점은 25%에 달하는 김대중 후보의 고정표였어요. 지금은 이회창 총재가 그와 비슷한 수준의 고정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리서치 앤 리서치의 분석 결과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되든 23%의 응답자는 변함없이 이회창 총재를 지지했다. 이것이 바로 이총재의 고정표일 것이다. 반면 후보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19.2%였다. 분석 결과 이인제 최고위원의 고정표는 이보다 조금 높은 23% 수준이라고 한다. 즉 이인제 최고위원의 지지율에는 민주당 고정표와 인물지지도가 더해져 있다는 얘기다.




노사장은 “현 상태에서 이인제 최고위원이 민주당 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것도 큰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97년의 경우 박찬종 후보의 지지율이 한때 48%까지 나왔지만, 당내 공천을 받지 못해 본선에 나서지도 못했다”며, “이인제 최고위원도 공천을 따내지 못한다면, 상당수 지지자들이 그를 떠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서치 앤 리서치 조사 결과에서 또 한가지 특징은 ‘민주당에서 누가 대통령 후보로 나오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무응답이 무려 57.8%에 달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없다’고 말한 5.5%까지 합하면 무려 63.3%가 견해를 밝히지 않은 셈이다. 이것은 현재 복잡한 구도를 그리고 있는 민주당 대선후보군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여권 후보의 분열은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87년과 92년엔 여권이 하나로 뭉친 반면 야권이 분열됐기 때문에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고, 97년엔 여권이 쪼개졌기 때문에 김대중 후보가 이긴 거죠.”





흩어지면 죽는다





노사장은 차기 대선에서 ‘제3후보’의 등장도 중요한 변수라고 본다. 그는 “한국의 선거는 기본적으로 여야가 두 개의 축을 형성하고, 그 사이에서 제3의 후보가 틈새를 벌려주는 구실을 한다. 87년 이후 치러진 세 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1 대1 맞대결은 한번도 없었다. 내년에도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를 2명의 후보가 대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제3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노사장은 “현재의 후보별 지지도는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일 뿐이며, 국민적 검증을 거칠 경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찬종 후보가 ‘유신찬양’ 시비에 휘말려 추락한 것과,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가 아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급전직하한 점을 강조했다.




“무소속이나 정치 신인은 검증 과정에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97년 대선의 경우 조순, 이회창, 이인제씨가 그런 경우죠. 내년 대선의 경우 이미 한 차례 검증을 거친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최고위원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사장도 내년 대선에서 최대의 변수는 ‘지역’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거 전에 ‘어떤 사람을 찍을 거냐’고 물으면 인물과 정책을 강조하지만 투표는 정당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와 남북관계는 어떨까. 노사장의 분석을 들어보자.




“서양에서는 ‘misery index’라는 게 있어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서 10%가 넘으면 여당이 패한다는 이론이죠. 우리도 경제가 안정을 되찾는다면, 여당에 유리하다고 봐요. 97년 대선에서도 경제 위기가 야당에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남북문제의 경우 과거에는 긴장이 조성되면 보수세력이 결집했는데, 이번엔 큰 영향이 없을 겁니다.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돼도 국민들에게는 경제만큼 절실하게 어필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표심을 움직일 요인에 대해 노사장은 “과거의 예로 볼 때 김심과 민심 그리고 당심이 반드시 일치할 것 같지는 않다. 계파간 합종연횡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대의원들의 선택기준에 대해서는 “정권교체가 지상목표이기 때문에 당선가능성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후보별 지지기반과 관련, 리서치 앤 리서치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가 있다. 바로 박근혜 부총재에 대한 영남권의 정서다.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누가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9.3%가 박근혜 부총재를 꼽았다(이회창 총재 62.2%). 반면 ‘박근혜 부총재가 어떤 형태로든 다음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출마하길 원한다’는 응답이 33.8%에 달했다. 즉 박부총재의 출마는 원하면서, 한나라당의 후보가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답변자가 의외로 많은 셈이다.




이에 대해 노사장은 “33.8% 속에는 다양한 세력이 혼재한다. 우선 영남의 민주당 고정표가 박부총재의 출마를 원하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 비판적인 세력,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 이회창 총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출마해야 한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여야의 필승구도에 대해 노사장은 “분열을 피하는 쪽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만일 민주당 후보군이 분열된다면 이회창 총재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것. 반면 노사장은 “여권이 단일 후보를 내세운다면 정권재창출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최고위원이 1 대 1 대결을 벌인다면, ‘제3후보’가 없어도 민주당이 우세할 것이다. 그런 구도라면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권이 이최고위원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노무현의 잠재력





현재의 후보별 지지도에는 정당지지도 외에 인지도와 호감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렇다면 인지도와 호감도가 비슷해지는 시점에는 또 다른 후보가 폭발력을 갖고 따라붙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와 관련 노사장은 노무현 장관의 최근 행보에 주목했다.




“노장관은 언론을 통해 자극적인 발언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것이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였다고 봅니다. 그게 지지도의 소폭 상승으로 연결된 거죠.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아직도 노장관을 모르는 국민이 많아요. 이인제 최고위원은 대통령선거를 막판까지 치른 반면, 노장관은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한나라당의 ‘텃밭’을 흔들 수 있는 ‘영남후보’는 누구일까. 노사장은 “여론조사 결과로는 김중권 대표보다 노무현 장관이 더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상수로 놓고 맞대결을 벌인 결과 노장관이 PK(노무현 24.7%, 김중권 12.5%)와 TK(노무현 19.1%, 김중권 9.1%)에서 모두 우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장관은 PK지역에서 이인제 최고위원(26.6%)보다 낮았다.




YS의 영향력에 대해 노사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서치 앤 리서치 자체조사 결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발언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PK 21.8%, TK 15.3%로 나타났다. 이것은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노무현 장관에 대한 가상대결 지지율보다도 낮은 수치다. 이에 대해 노사장은 “2000년 총선 당시 민국당의 참패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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