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민심이 최대 승부처-한길리서치연구소 홍형식 소장
한길리서치는 지난해 8월부터 매달 여야 각당 후보들에 대한 지지도 변화와 여야 후보간 1대1 대결시 지지율 추이를 조사해왔다. 그 결과 정치 사안에 따른 개인의 지지율 변화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
한길리처치의 데이터에 나타난 대선판세는 어떨까? 홍형식 소장(41)은 “한마디로 50대 50이다”고 말했다.
“여야간 팽팽한 대결구도는 선거 직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판을 깰 만한 변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홍소장은 이런 팽팽한 대결양상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맞선 여권 후보로 이인제 최고위원을 상정했을 때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최고위원이 현재로선 여권의 가장 경쟁력있는 후보이고 다른 후보가 나섰을 경우 팽팽한 맞대결 구도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당장 대선이 실시된다면 어느 후보가 승리할 것인가에 대해 홍소장은 “이회창 총재가 이긴다”고 잘라 말했다.
“여야 후보간 1대1 대결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해보면 이인제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조사를 담당한 직원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이회창 총재가 이길 것 같다’고 답해요. 이총재 지지자들은 망설임 없이 지지의사를 밝히는 반면 이인제 최고위원지지자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이총재 지지자들의 로열티가 이최고위원에 비해 높다는 거죠.”
홍소장은 내년 대선의 최대 변수는 지역주의라고 주장했다. 영남지역 표심을 공략하려는 여권의 노력, 즉 ‘영남후보론’과 같은 선거전술과 관계없이 영남지역의 표가 분열될 조짐은 현재로서는 그다지 없어 보인다는 게 홍소장의 생각이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영남후보론은 충청과 호남의 결속을 전제로 한 전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충청의 민심입니다. 여러 조사 결과 민주당 후보 가운데 충청민심을 붙들 수 있는 인물은 이인제 최고위원밖에 없습니다. 만약 김중권 대표나 노무현 장관 등을 내세울 경우 영남에서 일부 득표를 할지 몰라도 충청표를 묶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남지방의 민심은 이미 굳어졌다고 해도 될 겁니다.”
여론조사의 묘미는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한길리서치의 조사 결과 두드러진 후보들의 장단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영남과 40~50대 이상에서 강하다. 전통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텃밭이었던 서울에서 이총재가 우위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운데, 홍소장은 “민주당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이 최근 DJP공조와 보안법 등 개혁입법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여권의 보수화에 반발,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것이 주된 이유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충청과 호남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호남에서는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보다 10%이상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개혁성향의 유권자들과 소외계층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고 있고, 수도권에서는 경기·인천에서 강세다. 노무현 장관은 호남과 PK(부산·경남) 일부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과 경인 지역에서 골고루 지지를 얻고 있고, 이인제 최고위원과 지지연령층이 겹쳐지지만 특히 20대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한길리서치 조사 결과 최근에 민주당에서 약진한 후보가 고건 서울시장이다. 고시장은 전국에서 골고루 득표하고 있고 민주당 다른 후보와 달리 중도보수층에서도 호감을 얻고 있는 점이 특징. 그러나 고시장이 호남출신(전북 군산)임을 아는 유권자가 적다는 점, 따라서 지역대결구도로 선거전이 벌어지면 급속히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는 약점도 갖고 있다.
고건시장의 약진
김중권 대표나 이한동 국무총리는 현재까지의 조사로는 뚜렷한 지지층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홍소장은 “김대표는 대표로 기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총리는 DJP공조가 강화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길리서치는 유권자들이 후보 개인의 약점을 어떻게 보고있느냐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여러 차례의 조사 결과 국민들은 이회창 총재의 약점은 ‘친근감이 부족하고 포용력이 약하다’는 점과 ‘3김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두 가지로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유권자들은 이인제 최고위원을 노무현 장관이나 김근태 최고위원과 달리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소장은 “아직 이최고위원은 3김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은 채 모두와 잘 지내려고 애쓰는데, 선거정국이 본격화될수록 이최고위원 지지자들로부터 3김과의 관계를 분명히 정리하라는 요구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가장 궁금해할 질문은 뭐니뭐니해도 어떤 후보 대결시 필승할 것인가이다. 이에 대한 홍소장의 답은 간단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3남지방, 특히 충청권의 몰표를 받는 대결구도라면 승리를 점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꾸준히 밑바닥 여론을 다져가는 ‘다크호스’가 있다면 누구일까? 홍소장은 “최근 들어 수그러들었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가 얼마 전까지 ‘다크호스’라 할 만한 저력을 보이며 지지율 급상승 추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박부총재의 지지율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인 때는 지난해 12월에서 올 1월 사이. 홍소장은 “박부총재의 지지율이 올라갈 무렵에는 경제상황도 좋지 않았고 여권의 실책도 잇따랐다”며 “DJ를 떠난 지지가 이총재가 아닌 박부총재에게로 옮겨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다크호스로 부상
대선가도에 흥미를 더해줄 예고편으로 홍소장은 내년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를 꼽았다. 현재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는 홍사덕 의원(24.9%)이 2위 그룹인 김덕룡 의원(17.2%)과 최병렬 의원(15.2%)을 몇 발짝 앞서 나간 상태. 이에 맞설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누가 될 것인가도 향후 대선정국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소장은 “만약 홍사덕 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된다면 여권에서도 웬만한 후보로는 승부가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경우 여권은 현재 대권경쟁에 나선 인물 가운데 상위랭커를 서울 시장후보로 돌릴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민주당내 대권후보 경쟁은 새로운 양상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