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당이 환골탈태하고 야당도 환골탈태해야 하지 않습니까? 국민도 변해서 내년 대선에서 반쪽 대통령을 만들지 않도록, 민주당 소장 의원들은 모든 불이익을 각오하고 국민과 역사를 믿고 한번 해보세요."

1. 1. 일본에서 근 4년을 보내셨는데 게이오대 방문 연구원으로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횟수로는 4년인데 만 2년 2개월 있다가 최근에 일단 정리하고 귀국했습니다. 일본 경영대 상학부, 우리로 말하면 경영대학의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고, 아세아 경제 중 주로 한국 경제를 연구했고, 일·한 문화교류기금에서 약 6백만 엔의 장학금을 받아서 생활비로 쓰고 그 동안 두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2. 자취 생활을 하셨다는데...




게이오대 외국인 기숙사는 20여 세대가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침대 두 개 있고 주방이 달린 조그만 방에서 제가 끓여먹고 살았죠. 그러니까 자취죠. 아침은 반드시 해 먹어야 하고 점심이나 저녁은 같이 먹을 일이 있으면 먹고, 저녁에는 절반 이상 밥을 해 먹었어요. 자취하는 데 숙달이 되면 적응할 수가 있었어요.




3. 일본을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최근 고이즈미 돌풍이 대단하더군요. 파벌정치를 타파하려는 일본 국민 열망이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번에 2년 남짓 집중적으로 일본에 가 있기 전에 5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에 일본을 주로 몇십 번 다녔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잘 몰랐죠. 일본의 역사도 몰랐고, 왜 일본이 경제 강대국이 되었는가, 어떤 경위로 조선 침략을 하고, 한일합방을 하고, 2차 세계대전은 어떤 세력이 일으켰나 잘 몰랐죠. 그런 걸 이번에 자세히 알게 됐고, 주로 경제를 들여다보니까 일본이 왜 우리보다 앞선 경제 대국이 되고, 기술 강대국이 되었는가 하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됐죠. 현 단계에서 우리가 이 상태로는 당분간 일본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기술 선진국이고 경제 대국이다' 이걸 뼈저리게 느끼고 귀국했습니다.




고이즈미가 탄생했는데, 고이즈미 개인을 저도 좀 압니다만 한국식으로 말하면 정계의 돈키호테죠. 나도 돈키호테 소리를 들어왔던 사람인데, 고이즈미는 그냥 돈키호테가 아니라 돈키호테+헨징(변인, 방송을 통해 이 말을 하면 어쩔 지 모르겠지만), 조금 이상한 사람이다… 표현을 잘못하면 일본 수상에 관한 일인데… 당내 기반도 사실 없어요. 그런데 수상이 됐어요. 워낙 비슷한 류의 사람들이 관료의 말만 듣고, 관료가 써 준 데로, 일본은 관료 공화국이거든요. 우리는 일본 경제가 흔들린다고 하는 게 내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안 되는데, 일본 사람들은 경기가 침체되고 변화가 없다, 그러니까 관료조직도 혁신하겠다, 파벌도 없애겠다… 말이 시원시원하거든요. 그래서 고이즈미가 됐죠. 내가 보기에는 성공해서 꽤 오래 수상 자리를 지키거나 아니면 빠른 시일 안에 물러서거나… 아주 양극단의 현상이 일어날 거 같은데, 지금 수상된 지 한달 남짓 되는데 주위에서 잘 도와주면 좀 장기집권 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4. 일본의 우경화 현상을 많이 지적하고 있는데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일본사람 가슴에 다 그 생각 갖고 있어요. 고이즈미 수상이 그걸 꿰뚫어 봤다고 할 수 있죠. 전체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5. 교과서문제나 이런 부분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렵겠네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로서는 아주 어려운 과제라 생각합니다.

2. 6. 경제관련 서적도 2권이나 편찬하셨고, 특히 벤처 분야를 많이 연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벤처를 통해 새로운 경제 돌파를 연구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주로 벤처가 아니고 일본이 어떻게 해서 경제 강대국이 되고, 경제 강대국이 되기까지의 경제 풍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산업경쟁력, 그 산업경쟁력의 바탕이 되는 기술경쟁력, 기술경쟁력이란 게 직업 2만여 개 직종 중 표본적인 직종 30개를 골라, 물론 그 중에는 인터넷 분야가 많이 있고 기초기술분야를 포함해 유통도 있고, 일본 음식을 지키는 식당 경영자도 있고... 해서 30가지를 인터뷰 해 가지고 그들이 일본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업종에서 어떤 과정과 시행착오와 어떤 실패를 거듭하다가 오늘날 성공했는지를 탐구해 책으로 써서 청년실업시대, 대학졸업 즉시 실업인 이 딱한 조국 현실에서 그걸 읽고 도전정신을 키워 보라 하는 뜻에서 그 책을 썼습니다.




두 번째 책은 일본에서 한국 경제를 전공한 학자와 전문가(각 연구소의 한국 팀장들)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 15명을 인터뷰해서 '한국 경제 앞으로 희망 있는가, 침몰하는 한국경제 희망 있는가' 하는 주제의 책을 지난 3월 달에 국내에서 출판했습니다.




7. 거기에 연이어 한국의 인재를 일본에 연수 보내는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연수인지...




제가 일본에 가서 장학금 받고 2년 남짓 책보고, 글쓰고, 공부를 했다 하는 것은 제 생애에 있어 굉장히 은총이고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인으로 태어나 우리 부모와 우리 조국의 국민들이 박찬종이를 보이게 안 보이게 성원해준 덕으로 일본 가서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다, 그 보답으로 뭘 해야겠다는 취지로 책을 썼고, 책 쓴 것만 가지고는 어딘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의 IT 분야, 생명공학 분야, 기초기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가 부탁했습니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하는데, 내 작은 노력이지만 일개월 정도 당신이 직접 불러 가지고 같이 생활하면서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하고, 어떻게 성공했으며, 실패는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들려줄 수 없느냐' 해서 열 두 사람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1차로 금년 8월 25일부터 9월 25일까지, 2차로는 12월 26일에서 내년 1월 26일까지 계획을 확정했고, 성공하게 되면 계속 확대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연령이 좀 젊어야되지 않겠냐 하는 생각에서 20세 이상 40세 미만으로 제한했고, 남녀구분 없고, 학력 제한 없고, 영어 기초는 대부분 있을 테고, 일본어는 조건은 아니지만 조금 할 수 있으면 간 사람이 편합니다. 7월 25일부터 5일간 원서를 접수하고 이것을 이번에 개설한 제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많이 응모해주시고, 선발돼서 가시면 한달 동안 초청한 일본측 CEO, 일본의 젊은 사장들은 친절하고 성실하고 편하게 해줄 거고, 또 연수니까 일 시키는 것도 아니고 구경하고… 그래서 많을 걸 깨우치고 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8. 두 번째 경제관련 서적에서 '우리 경제에 희망이 있는가' 하는 내용이라 하셨습니다. IMF 이후 DJ정부의 경제정책과 우리 경제가 극복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동경에서 보면 확실히 보입니다. 우리는 부존자원도 없고 많은 인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60년 이후 80년대 중엽까지 조립가공형 경제체제를 갖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싼 임금에 원자재 기술 도입해서 대량생산해 적은 이윤보고 많은 사람을 고용해 경공업분야부터 수출해서 수출입국으로 벌어먹고 살 수밖에 없었어요. 전두환 정권 들어선 어느 때부터 크게 U턴을 했어요. 한국형 기술 축적형 중소기업 중심으로 U턴을 해야 하는데 실기(失機)했어요.




실기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엔고였어요. 여전히 90년대로 넘어오면서도 우리 경공업 제품의 수출 경쟁력, 가격 경쟁력이 유지가 됐기 때문에 재벌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돼도 별 탈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90년 들어서 일본경기가 하강하고, 엔저로 돌아서기 시작하고,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우리나라 과잉 중복 재벌 경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동아시아에 외환위기가 와서 꽈당 해버렸어요. 지금 확실히 정신 차렸느냐? 아직 덜 차렸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 해온 방법은 그 당시로서는 보릿고개 넘기고 초근목피 시대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게 80년대 우리 경제가 U턴을 해야 하는데 전두환·노태우 다 실기했기 때문이죠. 그 다음 민주화 투쟁을 한 대통령 시대에 들어와 확실히 이 점을 꼬집어 확인하지 못했고… YS 시대 그 5년을 허비했다고 보죠. DJ 시대, 뭐 하는 것 같은데 지금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이 되어 버리는 꼴이 돼 가지고… 제 두 번째 책의 결론은 이대로 가면 앞으로 4-5년 안에 한국경제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국가 경쟁력은 바닥으로 내려앉고 등뒤에 중국, 코앞에 일본 사이에 끼어 가지고 우리 경쟁력은 다 까먹게 된다는 게 결론입니다.




물론 이대로 가면 그렇다는 것이니까 깨달아야 되는데, 지금 DJ 정권 3년이 넘었고 이걸 깨달아서 추스리고 갈 여력이 보이지 않는 거 같아요. 정풍운동이나 정치문제 때문에 시끄러운데 그렇다고 이것을 야당이 차분히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이 상태로 가면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된들 제대로 추스려 갈 수 있을 것인가? DJ가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뭔가 결단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걸 생각해야 해요.




9. 어떤 결단을 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모범 답안을 얘기한다면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공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보재정도 파탄났죠, 크게 국가경쟁력, 산업경쟁력, 기술경쟁력, 경제 각 부문의 문제, 4대 부문 개혁이란 게 냉정하게 얘기해야 됩니다. '개혁은 완성됐고 이제는 시장자율에 맡겨도 된다' 이게 지난 2월 달 대통령이 국민에게 얘기했는데, 과연 자율에 맡겨도 다 되게끔 되어 있습니까?




현대문제는 어찌 된 것입니까? 이 문제도 정직하게 얘기해야 되요. 현대건설을 부도내면 줄줄이 부도사태가 나고 해외건설에 한국은 발도 못 디딘다… 그런 사정이 있으면 그걸 냉정하게 얘기하고 거기에 공적자금이 투입이 돼야 한다면 경영자 책임을 물어야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경영자 책임 묻고, 감춰 놓은 게 있다면 다 내놓게 해야죠. 그렇게 하고 공적자금 투입하고... 이런 투명한 걸 보여줘야 하고, 있는 상황을 국민에게 소상히 얘기하고...




그럼 어찌해야 되느냐? 2년 3년 5년 10년 앞을 내다보고 '이 부분은 이런 투자를 하고 이런 계획을 세워야 되고…' 그런데 '당신은 일년 반만 있으면 물러날 사람 아니냐' 이런 지지나 리더십 가지고는 안 돼죠. 국민들이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정직하게 다 털어놔야 해요. 다 털어내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 전직 대통령도 설득해야 되고 야당 당수와 야당 국회의원도 설득해 가지고 국가의 앞으로 진로 바탕이 될 오늘의 현실이 실로 심각하고 위기라 한 것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얘길 해야죠. 경우에 따라서는 DJP 연대도 초월해야 하고, 야당의 존재도 초월해서 국민만 염두에 두는 자세로 계획을 세워 국민에게 호소하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데 될 법이나 하겠습니까?




10. 작년 국정쇄신 정국때 나왔던 당적 이탈, 거국 내각... 그런 말씀이십니까?




제가 5월 12일 귀국했는데, 우리가 80년대 김영삼·김대중 두 분 공동 의장 모시고 민추협 활동을 했는데, 제가 전에 인권위원장을 하고 해서 17주년 창립기념일이 다가와서 저에게도 기념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지만 참석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해서 혼자 들어앉아 가지고, 17주년 맞이해서 두 공동의장님하고 어려울 때 고락을 같이 했던 동지들한테 메시지를 만들어 내 사이트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김영삼 의장에게 드리고 싶은 말을 썼고, 김대중 의장에게 드리고 싶은 말 결론에 3년여를 김대중 대통령께서 회고하고 '6공 5과, 본인 스스로 생각했을 때 여섯 가지 성공한 공적이 있고 다섯 가지 실수나 과오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동경서 뉴스로 접했는데, 내가 보기에 구차한 얘기고 변명처럼 들려요.




본인 스스로는 비상시국이라 결론을 내렸는데 내가 보기에는 비상시국의 단계를 넘어서 위기야 위기. "국가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다 털고 「거국위기관리내각」을 만들어서 거기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고 그리고 대통령이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가를 설득하고 해서 국민 통합에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라" 노벨상 탈 무렵 전후해서 많은 사람과 언론이 '당적을 떠나라' 강원룡 목사나 신문 사설도 그러는 것을 동경에서 봤는데, 당적을 떠나라 마라 그걸 훨씬 넘어서 거국위기관리내각에 실질적 권한을 주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왜 지역갈등이 YS 때 심화되고 DJ 때 왜 더 심화되느냐? 왜 민주화지도자들이, 민추협 공동의장 두 분 시대에 왜 지역갈등이 더 심화되느냐? 난 이게 통탄할 일이다 이거야. YS 시대는 이미 끝났으니까 지금 DJ 시대 남은 임기는 물론이고 대통령 그만 두고 나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도전해야 할 일이, 그를 평생 압도적·절대적으로 지지했던 호남인들을 위해서도 지역갈등 문제를 DJ가 풀어야 할 천명을 받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메시지에 거국위기관리내각 만들어야 합니다 했어요. 무슨 편중 인사에 대해 일급 이상 공무원 숫자에 아직도 경상도가 많다? 공무원들이 웃습니다. 백만 공무원들이 납득하지 않는 얘기를 청와대 발표라고 이런 식으로 해서야 되겠느냐 이 말이죠. 문제는 요직, 핵심적인 자리가 호남이 독식됐다 하는 거 천하가 알고 백만 공무원이 아는데, 백만 공무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이런 얘기를 일반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냐 이 말이야.

3. 11. 최근 정풍운동으로 정국이 어수선한데 박대표님께서 정풍운동의 원조라고 들었습니다.

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에 그 당시 공화당 총재였던 김종필 총재가 개정되지 않은 헌법, 박대통령 서거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 유고시에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서 체육관 선거해서 대통령 뽑게 돼 있거든요. 잔임 기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뽑으면 그냥 6년 되는 건데 김종필 총재를 지지하는 사람들, 그 당시 공화당, 여당 국회의원 전부 다가 김종필 총재를 대통령 뽑아 가지고 그냥 그대로 '민족중흥의 기수 아니냐, 박정희 대통령이 1세고 김종필이 2세니까 당연히 대통령이 돼야 한다' 이거야. '3선 개헌 안 했으면 김종필 총재가 대통령 됐을 사람 아니냐, 밀어 부쳐' 이런 겁니다.




그래서 9월 하순에 남산 중앙당사에서 의원총회를 했어요. 박정희 대통령 유신 이후 공화당 의원 총회 4시간 이상 한 게 그날 처음입니다. 20여 명이 발언했는데 전부 JP 앉혀놓고 충성맹세 하는 겁니다. 아주 대통령 된 걸로 가정하고, 대통령이 되셔야 하고, 되고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런 얘기입니다. 누가 한 사람쯤은 '이러면 안 된다' 얘기할 사람이 이제나저제나 나오려나 생각하는데 아무도 안 나와요. 내가 19번짼가 20번째 발언 신청을 받았습니다.




제가 단호하게 얘기했어요. "우리는 체제 시비에 걸려 이 유신헌법이 국민들한테 저항을 받아 그 와중에서 총재와 대통령을 잃어버렸단 말이야. 지금 우리는 반성하고 회개하고 이걸 민주헌법으로 개정해야 할 때다. 우리는 야당 각오를 해야 한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야 되고, 책임을 져야 되고, 이 사태에 스스로 책임 느끼고 정계를 떠나야 할 사람도 있고…"




"국민의 이름으로 스스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을 각오해야 될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대통령 서거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김종필 총재를 이 헌법에 따라 대통령 시켜야 된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절대 반대고 민주헌법 개정할 때 야당과 협의해야 되고, 그 이후 어느 날 순리대로 국민들에게 '너희들이 야당'이라도 할 수 있는 정당으로 신의를 줬을 때 그때 무슨 경쟁을 한다든지 해서 나서야 된다,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가 책임을 스스로 져야 된다, 우리는 야당할 각오를 해야 된다, 민주헌법 개정에 앞장서야 된다." 이런 주장을 했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살벌해져 가지고 그 당시 내가 문간에서 두들겨 맞지 않나 하는 공포를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 뒤에 내가 뜻을 같이 사람들이 뜻을 심화시키기 위해서 '부정축재자나 지나치게 해바라기성 성향을 가졌던 주요 당직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될 거 아니냐' 하는 운동으로 발전됐습니다.




두 번째 정풍운동은 87년 6·29 선언 이후 단일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이 결국은 분당 위기에 처했습니다. DJ·YS가 6·29 되기까지 10년 세월을 입만 열면 '우리는 민주화가 될 때까지는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하나로 연대할 것이다' 늘 약속을 했어요. 우리는 금과옥조로 믿었습니다. 두 사람이 연대하고 합심·협력하겠다는 그 선언과 약속이 도덕적 기반이 되어서 「민주화추진협의회」도 만들었고, 12대 선거에 임해서 신민당 만들어서 어용야당이었던 민한당을 완전히 깨뜨려버렸고,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계기로 6·29선언이 나올 때까지 우리가 전위에서 싸웠고, 나 같은 사람은 박해를 많이 받았죠.




드디어 민주화의 구체적 실증으로 직선제 개헌이 쟁취 되었어요. 되었는데 이 약속을 깨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지금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의원을 포함해 13명이 서명을 했어요. 그 당시 저는 소장 의원이 아니고 3선 의원으로서 정책위의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순형 의원이 나보고 권유하는 겁니다. 사인하라고 강제로 권유하는 겁니다. 사인하다 보니까 소두가 돼버렸죠. 그래서 YS·DJ에 항의도 하고 의원 총회에서 두 분을 앉혀놓고 "두 분이 서로 조정하라" 하다 끝내 결렬되고 분당의 길을 갔습니다. 그해 11월 6일 저는 마지막 4명인가 남았는데 저 혼자 삭발하고 홀로서기, 외톨이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겁니다. 그 정풍운동은 삭발로 종결 처분됐습니다.




12. 최근 민주당 초재선의원들의 정풍운동이 약 열흘간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는데, 한나라당에서는 '정풍이 허풍으로 끝났다' 얘기하고 민주당 초선의원은 그나마 DJ의 사당이 아니었다 자평하기도 하는데 정풍운동의 원조로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나라당이 허풍으로 끝났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죠. 나는 민주당 소장 의원들의 행동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 분들의 용기에 대해 일단 칭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정풍 주동자들은 각오해야 됩니다. 불이익을 각오하고, 외로움을 각오하고, 홀로서기를 각오하고, 위원직도 포기하고, 다음에 국회의원 못되는 것도 각오해야 됩니다. 그런 각오로 끝까지 밀어 부치세요.




한나라당에서 허풍이라 하고 일부 신문 사설에서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 분들이(정풍파) 주창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가슴에 있는 말을 대단히 겸손하게 한 겁니다. 국민들은 그보다 더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주저앉는다든지 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용기를 북돋워 드리고 여러분들의 정당한 것을 대통령이 반드시 받아들이도록, 대통령도 환골탈태하고, 집권당도 환골탈태하면 야당도 환골탈태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야당도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여당이 변하고 대통령도 변하고 야당도 변하고 야당 총재도 변하고 국민도 다 변해 가지고 내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서 반쪽 대통령을 안 만드는 계기를, 이왕 나섰으니 민주당의 소장파 정풍운동 하는 분들이 모든 불이익을 각오하고 국민과 역사를 믿고 한번 해보세요.




13. 공화당 정풍운동 당시 JP의 체육관선거 대통령을 막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JP 대망론이 자민련에서는 무성한데, 지난 번(79년) JP로서는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걸 막은 대표님께 감정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지금 JP 대망론의 실체를 잘 모르겠는데 그 때는 정말 절호의 찬스였죠. 개인적으로는 절 탐탁하지 않게 생각한 건 틀림없으나 그 뒤에 우리가 민추협 만들 때 김영삼 의장에게 건의해 '김종필 총재도 민추협에 동참해서 우리 전열에 같이 서면 어떻겠냐' 하니까 그 당시 김영삼 의장이 흔쾌하게 동의한 일이 있어요. 그래서 이걸 추진한 일이 있는데 JP쪽은 지금 작고했습니다만 5·16민족상 사무총장을 하던 황윤경씨, YS쪽은 지금 김덕룡 의원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김영삼 의장이 백지위임장에 서명까지 했어요. JP보고 공동성명문 내용까지도 백지위임을 했어요. 그러니까 그때 전두환 정권 때니까 '군사정권은 더 이상 안 되겠다' 하는 문구만 들어가면 된다 했는데 끝내 서명 안 하고 미국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와해되어버렸어요. 그렇게 되고 보니까 JP와 저와는 별로 인연이 안 닿는 거 같아요.




14. 최근 민주당 이상수 총무가 집권 여당의 국정 혼란이 자민련과 DJP 공조 때문에 그렇다 해서 공조가 삐걱거리는데 한국 정치에 JP 그늘이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JP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되는 건지...




JP와 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DJ의 한계이고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이죠. 지난 3년 동안 대부분 일본에 있었지만 지금쯤 JP가 뭔가 제대로 중심을 잡아 주겠는데, 남북문제나 내정문제도…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고, 중심도 안 잡아 주고… 어떤 점에 있어서는 DJ가 가는 길에 발목 잡는 거 같고, 발목도 잡고 DJ의 시책과 통치에 대해서 많은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대변이라도 해 줄 것 같은 대목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것도 안 하고...




작년에 잠시 귀국했을 때 자민련의 어떤 중진의원을 만났을 때 "JP가 왜 이러느냐, JP가 국민적 입장에서 대승적 견지에서 도울 건 돕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해서 연립정권이 올곧게 가는 방향을 잡아줘야 할 것 아니냐? 그거 왜 못 그러느냐" 이렇게 얘기한 적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상수 총무가 분통 터뜨리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이게 DJ정권 태생의 한계인데… 아마 이상수 총무가 가슴을 치고 싶을 거예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만 어떻게 합니까? 누가 가서 JP 목에 방울을 달겠습니까?




지금은 DJ가 말한 비상시국이 아니라 국가 위기라 생각합니다. 이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DJ가 용단을 내려서 「거국적 위기관리내각」을 만들고 거기에 실권을 부여하고…대통령은 일반 내정에서는 거리를 둬야하는 그런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JP는 대통령이 이렇게 결단할 수 있도록 DJP연대다 각료 파견이다, 지분이다 이런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P도 마지막으로 DJ와 함께 거국적 위기 관리 내각을 만드는 그런 대승적 판단과 결단을 해서 공동정권의 마무리를 그렇게 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상수 총무가 분통을 터뜨린 것을 개인적으로 충분히 동정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15. 대표님 개인적으로 민추협 시절 YS·DJ 양 의장님을 모셨다고 하셨습니다. 항간에는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이 나라를 망쳤다, 다시는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주화운동을 한 지도자, 민추협 공동의장이었던 YS 시대 5년, DJ 시대 3년 여 해서 8년여를 민주화운동 지도자 대통령시대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데, 지난달에 국무총리를 지냈던 남덕우 총리가 대표적으로 그런 분위기에서 'DJ·YS 민주화 운동은 정권쟁취를 위한 목적이었고, 따라서 구호의 수준을 넘지 못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과 경륜이 없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 됐다. 그리고 그 밑에 추종했던 많은 젊은이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많은 고생을 치르고 지금 국회에 들어가 있으나 그들 역시 구습을 답습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그 분이 그 얘기를 했다는 것을 듣고 그 말은 옳아서 우리가 반성해야 되는데, 문제는 DJ·JP가 이 말에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가가 사실 궁금해요.




나는 남덕우씨는 이 말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민추협 만들어 탄압 받을 때 그는 5공 정권의 국무총리했던 사람입니다. 국무총리 하면서 우리를 압살하는 편에 섰던 사람이 세월이 흘러 가지고 '민주화세력이 잘못했다, 실패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을 나는 조롱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남덕우씨 말을 일반 국민들이 상당히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 반성해야 됩니다. YS시대는 이미 갔고 DJ 시대에도 이런 평가를 받으니까, 남은 임기에 DJ가 국민에게 정면으로 위기거국관리내각 만들어서 모든 족쇄를 끊고 초심으로 돌아가 민주화지도자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남덕우씨가 '내가 말을 잘못했다'고 사과할 날이 오도록 만들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4. 16. '3김청산, 세대교체' 하면 대표님의 주 슬로건이었습니다. 내년 대선에는 사실상 3김이 다 사라진 선거가 되는데,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재로서 우려하는 것은 3김이 뿌려놓은 부정적 유산·풍토·환경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시간이 갈수록 더 굳어질 거 아니냐 하는 겁니다. 제일 먼저 지역갈등이고 3김 시대를 극복하지 못한 취약한 당내 민주주의도 문제 아닙니까? 그 분들이 가서 그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우리 후배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17. 우리 정치의 해결 과제 중 지역주의 청산을 제일로 꼽습니다. 통일을 앞두고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시대 우리나라 최대 부조리와 모순이 지역갈등입니다. 이 지역갈등이 어느 정도 심화됐는가 하면 이데올로기화되어 가지고 공산주의와 자유자본주의 대결 이상으로 더 심화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갈등 속에서 대통령 선거 결과 어느 한쪽 지역의 지지만 받고 다른 한쪽의 극단적 배척을 받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반쪽 대통령밖에 되질 않습니다. YS도 사실은 반쪽 대통령보다는 조금 나은 대통령이었지만 실지로는 반쪽 대통령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반쪽 대통령입니다. 소수파 대통령이죠. 이 다음에 또 반쪽 대통령이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이 영남 사람이냐 호남사람이냐 충청도냐 아니면 원적이 평안도냐 함경도냐 이걸 가리지 말고 누구를 내세우는 것이 반쪽 대통령 시대를 끝장내느냐, 그런 기준에서 봐야지, 영남 사람을 내세워서 이번엔 호남 사람이 됐으니까 영남 사람이 기대와 희망을 갖고 몰표를 모으고 또 반대편에서는 다른 사람의 몰표를 모아 가지고...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암담해 지리라 생각합니다. 영남 후보론이란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다시 반쪽 대통령을 뽑자는 소리 같으면 절대 그런 논의 자체를 배척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8. 여론 조사가 내년 대통령으로 나오는 분들과 깊은 관계에 있습니다. 우선 사실상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는 이총재와는 갈등이 심했다고 알려졌는데, 대선 이후 당을 잘 유지해서 야당 총재로서 든든한 자리를 구축했다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회창 선배는 고등학교, 대학 5년 선배고 법조계도 40년 전에 서울 법원에서 같이 근무했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친한 사이입니다. 남들이 볼 때 갈등이라 보았을 지 모르지만 정견 차이이고, 그 분은 세(勢)를 많이 모았고 나는 못 모으다보니까 패퇴한 거고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DJ·YS가 하던 야당하고 가끔 비교를 해보는데, 그때는 주류·비주류, 상도동·동교동계 당직을 갈라먹는다 해서 우리 스스로도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래도 당내 민주주의가 있었던 거예요. 대통령 후보도 아슬아슬하게 결정했고, 총재 후보도 아슬아슬하게 결정했고, 당직 나누는데도 티격태격 싸우고 정책을 두고도 싸웠지만 그러다 보니 싸움 속에서 정반합으로 좋은 정책도 나오고 해서 그 당시 집권당하고 잘 싸웠잖습니까?




미국도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 여름에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데 한나라당은 진즉 결정했고, 모든 당력은 이회창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귀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글쎄 이총재 스스로 거리를 두고 자기가 지도하는 야당이 정통 야당을 자부하려면 이 수준의 당내 민주주의 가지고 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보셔야겠죠.




19. 대표님께서는 이총재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국정 운영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오늘이 2001년 6월 초순입니다. 이 시점에서 얘기 안 하려고 합니다.




20. 지금 민주당에서는 이인제 최고위원이 상당히 분투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 민자당 시절 YS가 대권후보를 쟁취할 때의 시나리오처럼 가고 있지 않나 이야기하는데 대표님께서는 이인제 최고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지...어떻습니까?




지난 대선 때 제가 결과적으로 이인제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이인제 후보가 경선에 불복종하고 뛰쳐나가 입후보했다는 것을, 나는 후보경선 중간에 포기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 경선 과정이 민주적이 아니었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보장 안 되었기 때문에 이인제 의원이 그럴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이회창 진영에 몇 가지 건의한 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왕따당하고 해서 그렇다면 이인제 후보를 당선시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어 지지했습니다. 결과는 당선되지 않았는데, 이인제 후보가 나하고 약속한 게 있어요. 대통령이 안 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인제 후보가 주장한 게 낡은 정치 타파입니다. 김대중 후보를 공격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거 후 이만섭씨하고 모두 그리 다 가버렸습니다. 나하고 생각이 달랐다는 것을 그때 크고 깊게 깨달았습니다. 이 시점에서는 이인제 의원에게 할 말은... 이 시점에서는 안 하려고 합니다.

5. 21.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들 40%가 제3정치세력을 원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정몽준 의원의 신당 창당설 얘기도 있는데 신당을 만들어 보셨던 대표님께서는 어떤 감회가...

나는 6·29 선언 후에 YS·DJ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서로 분열하고 서로 책임지지 않아 항의해서 삭발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 연장선상에서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해 정당을 만들었던 것인데, 지금 논의되는 것은 확실한 내용도 모르고, 정보도 없고, 취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별로 말할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22. 혹시 영화 '친구'를 보셨는지요?




아이구! 못 봤습니다. 일본에서 귀국한 지 며칠 안됐기 때문에 꼭 보려고 합니다. 촬영 무대가 광복동 이런 부산이라 하던데, 제가 어릴 때 자라고 뛰놀고 술 마시던 그곳인 거 같아 꼭 보고 출연자도 만나고 감독도 한번 만나볼 생각입니다.




23. 이인제 의원이 혹평을 해 가지고 부산 시민들한테 미운 털이 박혔답니다. 최근에 부산을 가보셨습니까?




이번에 귀국해 가지고는 못 가봤습니다.




24. '박찬종의 정치인생은 비참하게 끝났다'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런 말씀을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비참하다는 말까지는 안 듣고, 끝났다는 얘기는 늘 듣고 있죠. 끝난 거 아닙니까? 사실상 끝나 있는데요.




25. 앞으로 정치계획을 갖고 계신 것은 없으신지...




우리나라 정치·지역갈등 구조·보수정치 아래에서 어떤 틀과 어떤 물결을 타면 국회의원 되고, 국회의장도 되고, 국무총리도 되고, 대통령 후보도 쉽게 되는가 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역구 5선 국회의원에 15대 선거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의 간곡한 권유에 의해 신한국당에 들어가 전국구 2번으로 국회에 진출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내가 3김 청산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사람이 YS 정권 말기에 거기에 들어갔다 하는 것이 일부 비판도 있고, 제가 마음에 부담도 되고 해서 국민들한테 종아리 맞는 심정으로 의원직을 포기했습니다.




여러분은 잘 기억 못하실 테지만 그 때 전국구 18번까지 국회의원 될 수 있었는데 대통령께 스스로 얘기해서 21번으로 물러섰어요. 그래서 국회에 못 들어왔습니다. 저도 그런 물결 탈줄 알아요. 그거 탔으면 국회의장도 될 수 있고 국무총리도 했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후보 같은 것도 제가 다르게 접근했으면, 내 식으로 안 했으면 어찌 됐을 지 알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운대도 안 맞고 국민을 자꾸 실망시키는 것 같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내 민주주의가 어떤 내용인가 안 들여다보고 결과만 봅니다. 지면 적군이야. 적군은 패장이 아니라 완전히 적군 취급해. 국회의원에 나가서 안 되면 완전히 고개 들고 다닐 수 없도록 돼 버려.




지난번 선거 같은 경우 영남은 한나라당의 공천, 그것이 결국은 임명장 아닙니까? 공천이 주민 뜻에 따라 되는 것도 아니고, 충성도 등을 가지고 되는 거 다 아는 것 아닙니까? 그게 임명장인데 그 임명장 받기도 거부했고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현실 정치의 낙제생이죠. 난 부끄럽게 생각진 않습니다. 아직 건강이 있고, 사고할 수 있는 여력이 아직 많이 있고, 기억력도 아직 왕성하니까 일본에 있는 26개월 동안 책 두 권 썼고, 이번에 홈페이지 개설해서 일본 벤처 열두 곳을 무료 연수하는 젊은이들과 같이 가서 배우고 오기도 하고, 기회 닿는 데로 제가 생각하는 국민 통합의 길에 조언도 하는 이런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정치가 따로 있나요? 이게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들이 분발해주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물론 국민투표로 당선됐지만 내용을 보면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공천, 실질적인 임명장이나 다름없고, 새천년민주당도 그런 것이니까 국회의원 됐다고 하는 그 결과에 대해서 너무 자부심 갖지 마시고 지금부터 진짜 국민의 국회의원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26. 21세기는 인터넷 시대라고 합니다. 대표님께서도 사이트를 만드셨더군요. 어떤 내용이 있는 사이트인지 소개를 해주시죠.




이 사이트에서는 각계 전문가와 일반 네티즌들이 활발하게 자율적으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광장을 만들고, 내 생각을 틈틈이 시사성 있는 의견을 올리고 또 그렇게 할 생각으로 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시고 국민 운동으로 승화시킬만한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앞으로 조심스럽게 개발해 가려 합니다.




27.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끝으로 e윈컴 네티즌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는 '정치과잉 공화국'인 동시에 정치 문제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국민들을 참여시키는 그런 시스템은 아주 빈약한 구조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분야를 e윈컴의 김능구 대표를 비롯한 젊은 사원 여러분께서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여기에 도전해서 단기간에 많은 네티즌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제가 확인하고 감개무량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이트가 아주 잘 개발돼서 국민 속에 자리잡도록 김능구 대표와 사원들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격려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찬종 전 의원 홈페이지




인터뷰어: 김능구 (e윈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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