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6장에 근거해서 1988년에 설치된 헌법기관이며 최고의 사법기관이다. 헌재에서 내려지는 결정들은 우리 정치, 사회,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곤 한다. 그런 헌재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사 6명이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검수완박'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한 장관은 청구인 자격이 없고, 검사들은 청구인 자격은 있지만 헌법상 권한을 침해받지 않는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었다. 수사·소추권은 헌법상 권한이지만 이를 배분·조정하는 것은 국회의 재량이라고 헌재는 판결한 것이다.

3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 (사진=연합뉴스)
3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선고. (사진=연합뉴스)

이같은 헌재의 결정을 둘러싸고 두가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우선 검수완박 입법 과정에서 절차상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하면서도 법의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관한 것이다. 헌재는 법사위원회 통과 과정에서 헌법상 다수결원칙 등의 위반이 있었고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 침해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법사위원장이 '위장탈당' 사정을 알면서도 민형배 의원을 조정위원으로 선임하여 조정안이 가결되도록 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토론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표결에 부쳐 가결을 선포한 행위가 국회법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헌재가 내린 결론은 국회 본회의에서는 권한 침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국민의힘 청구에 대해 기각과 인용 4대 4의 구도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한 것이 이미선 재판관이었다. 이 재판관은 "심의·표결권 침해는 인정되지만 그 정도가 국회 기능을 형해화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국회의 형성권을 존중한다"며 청구를 기각하는 판단을 내려 검수완박법의 효력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헌재가 국회에서 이뤄진 결정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의식한 결정으로 해석되지만, 절차에 문제가 있는 법의 효력을 인정한데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음주운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집에 무사히 갔으니 처벌하기 어렵다’는 식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절차적 문제를 가볍게 판단한 헌재 결정의 선례는 앞으로 국회에서 위법적 절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상황을 낳을 것이 우려된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헌재 재판관들이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논리에 따라 판단을 내린 것으로 비쳐진 점이다. 이번 판결에서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입법 과정의 절차적 하자 문제에서부터 검사의 수사 및 소추권 침해 여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쟁점에 대해 재판관 의견이 5대 4로 갈렸다.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6가지 세부 청구 내용에 대해 모두 '기각' 혹은 '각하' 의견을 냈다. 반면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모두 '인용' 의견을 내면서 재판관들은 둘로 뚜렷하게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미선 재판관이 절차에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하면서도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림으로써 캐스팅보터 역할을 한 셈이다.

이같은 판결의 내용은 재판관들의 평소 이념적, 정치적 성향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국회의장의 손을 들어준 5명의 재판관은 진보성향의 재판관들이다. 유남석 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김기영 재판관과 이미선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다. 그리고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이다. 유남석 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 이석태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 김기영 재판관은 민주당이 각각 지명했다. 캐스팅보터였던 이미선 재판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했었다. 반면에 인용 의견을 낸 이종석, 이영진, 이선애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선애 재판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은애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 이종석 재판관은 옛 자유한국당, 이영진 재판관은 옛 바른미래당이 지명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재판관들의 대부분 평소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단들이 내려진 셈이다. 재판관 당사자들이야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지켜보는 국민들로서는 엄정한 법률적 판단 보다 정치적 판단이 우선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맞지만 무효화 할 정도로 중대한 하자는 아니었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결론도 그런 구도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재판소’가 되었다는 일각의 비판을 터무니없다고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 현재와 같은 9명의 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나눠서 지명하는 구조에서는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임기가 끝난 두명의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 절차가 막 시작되었다. 헌법재판소마저 출신에 따라 정치적 편가르기에 갇혀버린다면 우리 사회의 심판은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모르겠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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