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구글·보잉 등 글로벌기업, 베트남에 선물 보따리
바이든 "중국 억제하려는 것 아냐".. 中 "중국 겨냥한 것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베트남, 미국과 경제협력 하며 러시아 무기 도입.. '대나무 외교' 눈길

미국과 베트남이 중국 견제를 위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은 미국과 경제협력을 하며 러시아와 비밀리에 무기 계약을 맺는 '대나무 외교'를 펼쳐 눈길을 끈다 [사진
미국과 베트남이 중국 견제를 위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베트남은 미국과 경제협력을 하며 러시아와 비밀리에 무기 계약을 맺는 '대나무 외교'를 펼쳐 눈길을 끈다 [사진 하노이 UPI=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미국이 과거 전쟁 상대국이었던 베트남의 손을 잡았다. 중국 위주의 공급망을 베트남으로 옮기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속내다. 이런 가운데 베트남은 미국과 경제협력을 하면서도 러시아 무기를 도입하는 강수를 두며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실익을 챙기는 '대나무 외교'를 펼쳐 눈길을 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도에서 열린 G20 뉴델리 정상회의가 끝나자 마자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10일(현지시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하노이에서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서기장)와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가장 높은 단계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경제·문화뿐 아니라 군사·안보 분야에서도 최상위 파트너가 된 것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손잡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는 나라이자 미국의 대중 규제 덕분에 경제적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이번 베트남 방문을 두고 "사실상 중국의 뒷마당을 찾아 중국 견제 행보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이번 순방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계획됐다"고 평가했다.

베트남은 조약 동맹국이 없는 국가로 '포괄적 동반자 관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등 3가지 형태의 양자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나라는 한국과 인도, 러시아, 중국 등 4개국뿐이었다.

미국과 베트남은 10년 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는데 이번에 두 단계를 한 번에 건너뛰고 최고 단계로 격상한 것이다. 제조업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미국의 이해와 첨단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베트남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양국 관계가 빠르게 진전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외교 관계를 격상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 기반을 한층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희토류 공급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은 중국 다음으로 희토류 매장량이 많은 국가다.

바이든은 이번 국빈 방문에 인텔, 구글, 앰코 테크놀로지와 보잉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 고위 관계자들을 동행시켰다. 베트남에게 선물 보따리를 안긴 셈이다.

바이든 "중국 억제하려는 것 아냐".. 中 "중국 겨냥한 것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가 중국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AP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하노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순방은 중국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정성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조만간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며 "시 주석과 지난 12년간 다른 어느 정상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며, 조만간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견제라는 의도가 눈에 훤히 보이는 미국의 행보에 중국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미·베트남의 외교 관계 격상에 대해 "각국의 양자 관계 발전은 제3자를 겨냥해선 안 된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어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다룰 때 안정 추구와 협력 촉진에 대한 각국 입장을 존중하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준수하며 패권과 냉전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사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베트남을 위해 베트남을 간 게 아니다"라며, "미국은 베트남을 중국에 맞서기 위한 도구적 가치가 있는 국가로만 볼 뿐이다. 미국과 서방 언론 모두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행이 베트남에 어떤 이득을 주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면 중국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아가 아세안 국가들과의 군사적 연대를 과시하고 나섰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이달 초 상륙함과 미사일 호위함, 보급함 등 동해함대 소속 군함들이 태국군과 합동 해군훈련을 실시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또, 싱가포르군과의 도심 대테러 작전 합동훈련 진행 소식도 전했다.

해방군보는 "중국은 평화적 의도로 타국과 군사 교류를 하지만, 미국 주도의 군사 훈련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며 "중국은 평화를 만드는 나라이고, 미국은 평화를 파괴하는 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트남, 미국과 경제협력 하며 러시아 무기 도입.. '대나무 외교' 눈길

이런 가운데 베트남의 외교 행보가 눈길을 끈다. 미국과 경제적으로 밀착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와 10조원이 넘는 초대형 무기 계약을 은밀히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영향력 확대를 막기 원하는 미국의 심리를 이용한 외교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베트남 정부 내부문서를 인용해 "베트남이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기 위한 비밀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재무부가 지난 3월 작성한 문서에는 군 현대화를 위해 러시아와 새로운 무기거래를 협상 중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는 "향후 20년간 총 80억 달러(약 10조7000억원) 규모"라고 증언했다. 이번 계약은 중국군의 영해 침범 가능성에 대비해 강력한 억지력을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더라도 미·서방의 베트남 경제 제재까진 확대되지 않을 것"이란 대목도 포함됐다. 즉,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는 미국이 자신들과의 협력을 끊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NYT는 이에 대해 "세계 강대국 사이를 능숙하게 누벼온 베트남 특유의 중립외교 포석"이라며 "그들은 강대국들의 복잡한 셈법을 잘 읽고 있다"고 평했다.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올해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트남의 이런 외교적 유연성은 '대나무 외교'라고 불린다.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2016년 처음 제시한 용어로 그는 "대나무는 강력한 뿌리와 굳건한 줄기, 유연한 가지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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