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에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에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 갑진년 새해 벽두 발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은 우리 정치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극한적 진영대결 정치 구도가 툭하면 상대를 악마로 단정해버린다. 각자의 지지층 역시 서로를 겨냥, 막말로 저주와 혐오를 쏟아낸다. 여기에 유튜버들은 저마다 자극적 영상으로 상대에 대한 분노를 부추기며 돈벌이에만 혈안이다.

이런 정치 환경이 이번 사건을 배태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진단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단호한 대응 태도다. 사건 발생 직후 대변인 명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러한 폭력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야당 대표의 “안전에 깊은 우려”와 함께 신속한 진상 파악을 지시했다.

다음날 열린 대통령실 주최 신년 인사회에선 더 강력한 대응 의지를 직접 피력했다. 먼저 이번 사건을 “(정치)테러”로 규정한 뒤 “자유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모두의 적에 하나 된 마음으로 단호하게 대응해야 된다”고 말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겨 8일 만에 퇴원한 이 대표는 “증오의 정치” 척결을 다짐했다.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던 것. 두 사람 말대로라면, 이번 사건은 한국정치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될 듯하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런 기대에 전혀 못 미치고 있다. 먼저 정치권의 자기반성이 없다. 경찰은 피의자 김모씨가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 탓에 범행했다고 밝혔다. 그 신념이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누구나 ‘저런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 돼’라고 생각할 순 있다. 그렇다고 목숨까지 노린 범행을 저지르진 않는다. 그만큼 김씨 생각이 극단적이란 말이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뭘까. 분명 개인적 사유가 있을 게다. 못지않게 ‘상대 악마화’라는 우리 정치 고질병도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사실 현 정권 들어 ‘이재명’이라는 이름은 거의 매일 사회면 기사로 보도됐다. 선거법 위반, 대장동 비리, 위증교사 등으로 기소돼 재판까지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치 거물의 수사와 재판은 기삿거리가 맞다. 문제는 검찰 수사 상황 단계에서 피의사실이 거의 실황 중계됐다는 점이다. 일종의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이 진행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실체 여부와 상관없이 ‘이재명=악마’가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정작 검찰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침묵하고 있다.

‘피의자’를 핑계로 제1야당 대표를 사실상 외면해온 대통령과 여당의 태도도 따져 볼 부분이다. 이렇게 대화가 실종된 정치가 전장(戰場)이 된 지 오래다. 야권의 단독 입법과 대통령 거부권이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어쩌면 잘못된 신념으로 무장한 김씨를 의사(義士)인양 범행으로 내몬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병문안 또는 위로 자리를 만들어 이 대표와 협치의 모양새를 보여줄 순 없을까.

피해자격인 민주당의 ‘내 탓이요’도 필요하다. 손바닥 하나로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기 때문. 특히 경찰 수사 발표 직후 “무효”라며 국정조사와 특검을 주장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 물론 수사가 미흡하다고 비판할 순 있다. 아직 검찰 수사가 남았다. 그런데도 “윗선의 압력으로 공개 못하는 것인가”(정청래 최고위원)라고 했다. 일종의 정치 음모론이다. 강성팬덤은 기다렸다는 듯 정권 비난에 가세했다. 제2의 김씨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이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는 우려마저 든다.

극단의 정치를 허물 제도적 개혁 논의가 전혀 없다는 점도 유감이다. ‘6.10 민주 항쟁’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87년 체제’가 한국 민주주의를 견인해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권력 집중과 소선거구제가 낳은 거대 양당체제는 심각한 부작용을 양산해왔다. 가장 큰 문제점이 두 제도가 잉태한 ‘승자독식’과 이에 기초한 노골적 적대감이다.

정권을 잃으면 다 잃을 수밖에 없는 권력 싸움에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격돌한다. 그래서 동지 아니면 적만이 존재하는 살벌한 정치투쟁에서 제3의 목소리는 ‘변절자’로 치부되기 일쑤다. ‘승리 지상주의’만 가득한 가운데 강성 팬덤은 상대에 대한 혐오로 무장하고 진영의 선봉장을 자처한다. 정치권은 이를 “정치참여의 모범 사례”로, 언론은 “한국 민주주의 역동성”으로 치부해왔다.

결국 사달이 났다. 2006년에도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커터 칼 피습 사건’이 있었다. 당시도 극단의 정치가 원인으로 꼽혔다. 이에 대한 제도적 대응 방안을 놓고 잠깐 논란이 있긴 했다. 그뿐이었다. 이번엔 아예 논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당면한 22대 총선 탓에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은 언감생심일 수 있다.

하지만 양당체제를 완화할 수 있는 국회의원 비례대표제 개혁엔 속도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제의 확대 등 말이다. 이마저도 반대의 흐름이 유력해 보인다. 양당 기득권을 강화하는 병립형 회귀 또는 연동형 비율 축소 방안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이, 당사자의 “증오 정치 종식”이 공허하게 들린다.

정치권의 반성과 제도 개혁 못지않게 시급한 게 또 있다. 정치혐오와 분노를 숙주로 ‘클릭장사’를 통한 돈벌이에만 급급한 유튜버에 대한 대책이다. 피의자 김씨는 평소 정치 유튜브 방송을 즐겨 봤던 걸로 알려졌다. 문제는 다수의 정치 유튜버가 지독한 편향성과 상대 악마화를 통한 ‘혐오 비즈니스’에만 열중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선명성을 넘어 적개심만 번뜩일 뿐이다.

삐뚤어진 신념을 가진 김씨로선 이런 유튜브를 통해 자기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미리 준비한 ‘변명문’에 “역사적 사명감”을 언급한 사실로 유추가 된다. 언론은 일제히 이번 사건으로 극단적 정치 유튜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렇다고 바뀐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정치혐오 유튜버들은 더 큰 대목을 만난 것 마냥 활개를 치고 있다.

보수는 ‘자작극’, 진보는 ‘배후 존재설’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했다. 분개한 저마다의 구독자들은 슈퍼챗(실시간 방송 후원금)을 쏘았다. 든든해진 지갑에 유튜버들로선 물실호기(勿失好機)의 찬스. 하지만 정치권은 강성팬덤의 응원을 받는 유튜브 규제책에 눈치만 살필 뿐이다. 정말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폴리뉴스 칼럼니스트

 

차재원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현)
국회부의장 비서실장(전)
육군미래자문위원(전)
국제신문 서울정치팀장(전)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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