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위기로 가는 한반도, ‘응징’ 넘어선 ‘해법’ 고민해야

새해 들어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 간의 긴장이야 흔히 있던 일이지만 최근 북한의 움직임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나서서 남북 관계를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더니 ‘불변의 주적’이라며 전쟁이 일어나면 무력으로 점령·수복한다는 내용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전쟁이 일어나면 "핵무기를 포함해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우리를 상대로 공공연히 점령 의지를 드러내고 핵무기 사용까지 언급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한 북한은 ‘통일’과 ‘민족’이라는 단어를 없애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남한을 더 이상 같은 민족으로 대하지 않겠다 것이다. 김 위원장은 헌법에서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한다는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며 ‘적대국’ 관계를 헌법에 명문화하도록 했다. 남북 회담과 교류협력을 담당해 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의 폐지도 결정했고, 남북 간 연대기구였던 6·15공동선언실천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도 정리했다. 앞으로 남한과는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은 과거 흔히 있었던 전술적 차원의 공세가 아닌 전략적 변화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그동안 매달렸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남북화해 같은 기조를 포기하고 이제 언제든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발신한 것이다. 물론 김 위원장은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진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전제하고는 있다. 하지만 전쟁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절대로 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동향에 대해 미국 전문가들의 경고도 이어진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지난 11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며 “너무 극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면서도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전쟁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들은 김정은이 언제 어떻게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지만, 지금의 위험은 한미일이 늘 경고하는 ‘도발’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작년 초부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가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지난 11일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를 통해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북한의 핵무기 사용 결정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먼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저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 핵무기 보유 기간이 짧은 북한이 공멸로 이어질 핵전쟁까지는 치닫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따라서 갈루치 교수는 "미국은 북한과 진심으로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비핵화를 첫걸음이 아닌 더 장기적인 목표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엄포’로 해석하는 국내 분위기와는 달리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실제 북한이 전쟁에 나설 수 있다는 심각한 경고를 내놓고 있다. 김정은은 선제적으로 전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NLL같은 곳에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 생겨날 경우 그에 대한 해석은 자의적인 것이 되기 쉬우니 전쟁의 위험은 상존하는 국면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공멸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관계없이 남북 모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한반도는 폐허의 땅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절대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북한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설마 전쟁을 벌이겠냐는 생각들도 적지않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핵무기를 갖게 된 상황에서 미국의 전쟁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는 오판을 한다면 남북 간의 국지적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은 언제든지 있게 됐다.

물론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동족을 위협하는 북한과 김정은을 규탄한다. 어떤 이유로도,공공연히 전쟁을 위협하는 것은 비난 받아야 할 언사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은 북한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관리하는데 우리 정부가 만전을 기하는 일이다.

북한의 전쟁 위협이 계속되자 우리 정부도 구두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전쟁이냐 평화이냐를 협박하는 재래의 위장 평화 전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북한에게 경고를 보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북한에 대한 응징 의지를 거듭 밝혀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응징 의지를 넘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해법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같은 보수 정권이 들어서도 나름대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곤 했다. 그런데 유독 윤석열 정부는 응징 의지만을 반복하는데 갇혀있고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큰 틀의 해법을 제시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의 긴장 상황은 북한의 전쟁 위협에 기인하고 있지만, 그래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부여된 책무이다. 마침 미국에서도 11월에 대선이 치러진다. 미국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북한과의 관계에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서로 말폭탄을 주고 받으면서 상대를 자극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같이 가파르게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에서는 말 보다는 전쟁을 막기 위한 큰 틀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남북한이 평화적 외교 관계 위에서 평화적 공존을 해나갈 담대한 구상을 정부가 고민하기 바란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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