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우크라, 종전 위한 '평화 프레임워크' 마련 합의
우크라, 트럼프 '평화 계획' 수용…美 "우크라 주권 온전히 보장"
28개 평화계획안, 우크라 영토 포기·군 절반축소 포함
부다페스트 각서 악몽…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존엄성 잃을 수도"
트럼프-푸틴 사전 합의 가능성…'러시아 작성' 의혹도 불거져
백악관 "우크라戰 종전안 우크라에도 설명" 트럼프 "초안 수정 가능"
유럽 정상들 "美 주도 종전안 재논의 필요"…신중·의구심

제네바 회담 후 중간 브리핑하는 미국 국무장관(우)와 우크라 대통령 비서실장(좌) [사진=AP=연합뉴스]
제네바 회담 후 중간 브리핑하는 미국 국무장관(우)와 우크라 대통령 비서실장(좌) [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28개항 평화계획' 초안을 마련하고, 양국에 추수감사절인 오는 27일(이하 현지시간)까지를 평화협상안 합의 시한으로 제시한 가운데 러시아에 이어 우크라이나도 이를 수용하며 종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 구상안 초안에는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및 루한스크) 지역 전체를 러시아에 양보하고, 우크라이나군을 60만명 규모로 축소한다는 등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도됐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은 금지하고 나토와 유사하게 미국과 유럽의 '집단방위' 방식의 안전 보장 장치를 둔다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우크라이나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안전보장'은 취약하다는 평가다. 때문에 결국 러시아의 침공을 촉발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처럼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해당 초안을 러시아가 작성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기도 했으며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23일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종전을 위한 '평화 프레임워크' 마련에 합의하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계획을 수용함에 따라 올해 크리스마스 전 종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美-우크라, 종전 위한 '평화 프레임워크' 마련 합의

우크라, 트럼프 '평화 계획' 수용…美 "우크라 주권 온전히 보장"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2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평화 구상안 협상을 진행했다.

이날 회동에서 양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고 공동 성명을 통해 밝혔다.

양국은 성명에서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 달성에 대한 양측의 공동 의지를 확인했다"며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고 명확한 향후 조치를 도출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어떠한 향후 합의도 우크라이나 주권을 온전히 보장하며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평화를 담보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에는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전쟁과 인명 피해를 끝내기 위한 미국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이고 확고한 헌신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평화 프레임워크에 대한 최종 결정은 우크라이나와 미국 대통령이 내릴 예정이라고 성명은 밝혔다.

백악관은 제네바 협의 결과를 소개하는 설명자료에서 "루비오 장관과 그의 팀은 우크라이나의 주권, 안보, 미래 번영이 현재 진행 중인 외교 프로세스의 중심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회의에서 안전 보장, 장기 경제 개발, 인프라 보호, 항해의 자유, 정치적 주권 등 모든 주요 관심사가 철저히 다뤄졌다고 확인했다"며 "우크라이나 대표들은 오늘 이뤄진 수정과 설명을 바탕으로 현재 초안이 자국의 국익을 반영하고 있으며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신뢰할 수 있고 집행 가능한 메커니즘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28개 평화계획안, 우크라 영토 포기·군 절반축소 포함

이번에 우크라이나가 수용한 '평화 구상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28개항 평화계획'이다.

19일 미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해당 구상은 ▲ 우크라이나 평화체제 ▲ 안전보장 ▲ 유럽의 안보 ▲ 미국과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간의 미래 관계 구상 등 4개 범주의 총 28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28개항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조항은 영토 문제를 다룬 21항이다.

21항은 "크름·루한스크·도네츠크는 '사실상(de facto)' 러시아령으로 인정된다. 헤르손과 자포리자 지역은 접촉선에 따라 동결된다. 러시아는 5개 지역 이외에 통제 중인 다른 영토는 포기한다"고 규정한다. 러시아가 80% 안팎을 점령 중인 것으로 알려진 도네츠크의 나머지 20%는 비무장지대(DMZ)로 설정하되 러시아 영토로 본다.

유럽 내 러시아 자산의 동결을 해제해 미국 주도 사업에 투입한다는 14항도 논쟁거리다.

14항은 "러시아 동결 자산 중 1000억 달러는 미국 주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투자하고, 미국은 수익의 50%를 확보한다. 나머지 동결 자산은 미-러 공동 투자기구에 투입한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재건 투자에 1000억 달러를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종전안 14항에 대해 "EU의 장기적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을 무력화하고 유럽 납세자에게 재건 비용을 부담시킴으로써 미국 정부가 이익을 얻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조항도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 종전안 3항은 "러시아는 인접 국가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더 이상 확장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4~5항은 "러시아와 나토는 미국 중재로 모든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진행하고 긴장 완화 여건을 조성한다. 우크라이나는 신뢰할 수 있는 안보 보장을 받는다"다.

이어 6항은 "우크라이나군 병력은 60만명으로 제한된다", 7항은 "우크라이나는 헌법에 나토 가입 불가를 명시하고, 나토는 향후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지 않는다는 조항을 규약에 포함한다", 8~9항은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는다. 유럽 전투기는 폴란드에 배치한다"로 이뤄졌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포기 문제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나토 조약에 명시한다는 명시적 조치를 포함시킨 반면, 우크라이나 안보를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P통신은 "이 계획은 서방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암시'할 뿐 구체적 내용을 언급하지 않고, 미국이 러시아의 재침공을 어떻게 막을지는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FT도 "'신뢰할 수 있는 안보 보장'이라고 말할 뿐 구체적 내용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 계획"이라며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서 안보 보장을 약속받았으나 (러시아의) 크름 강제 합병과 전면 침공에 노출된 우크라이나는 모호한 보장을 매우 경계한다"고 했다.

FT는 6항 '병력 60만으로 감축'에 대해서는 "국가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며, EU 역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침공을 막는 최고의 방벽이기 때문에 강하게 반대한다"면서도 "현재 병력인 90만여명 중 3분의 1 수준을 감축한다면 여전히 EU 최대 규모의 군대가 유지되며, 오랫동안 참전한 병력에게 전역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것은 11년간 두 차례 러시아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인들을 불안하게 할 것이며, 무엇보다 러시아군의 규모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밖에도 "러시아는 주요 8개국(G8)에 다시 초대된다(13항)", "자포리자 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하에 가동되며 전력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반씩 나눈다(19항)", "우크라이나는 EU의 종교 관용·언어 소수자 보호 규칙을 채택한다(20항)", "우크라이나는 (평화 협상 타결 후) 100일 내에 선거를 실시한다(25항)" 등을 주요 조항으로 포함시켰다.

부다페스트 각서 악몽…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존엄성 잃을 수도"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 이번 주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와 만나 이 방안을 우크라이나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항복 수준인 구상에는 합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21일 미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제시한 평화안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같은날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 성명에서 "지금 우크라이나에 가해지는 압박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며 "우크라이나는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 존엄성을 잃거나 핵심 동맹국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미국의 새 종전안의) 어려운 조항 28개를 받아들이거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이익은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며 "우리는 미국 및 모든 파트너와 차분히 협력하고 주요 파트너와 함께 건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안을 제시하겠지만 적에게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구실은 절대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두 가지, 즉 우크라이나인의 존엄성과 자유가 박탈되지 않도록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반발하는 부분은 '안보 보장'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지난 1994년에 체결된 부다페스트 각서가 무용지물이 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 각서는 구소련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는 대신 러시아·미국·영국으로부터 안보 보장을 받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러시아는 2014년에 이어 2022년 전면 침공했다.

트럼프-푸틴 사전 합의 가능성…'러시아 작성' 의혹도 불거져

백악관 "우크라戰 종전안 우크라에도 설명" 트럼프 "초안 수정 가능"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러-우 양국을 향해 27일을 합의 시한을 제시했다.

그러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같은 날 국가안보회의 화상회의에서 "나는 그것이 최종 평화적 해결의 기반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즉각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푸틴 대통령은 수용 의사를 밝힌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거부 의사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지난 8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을 전후로 평화계획을 미리 합의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뿐만 아니라 해당 초안을 러시아가 작성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그러자 백악관은 20일 우크라이나 측과도 논의했으며, 해당 구상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 모두에 좋은 것이라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몇몇 우크라이나 측 인사와 지난 주에 만나 바로 이 계획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은 "위트코프 특사와 루비오 장관은 지난 한달 동안 조용히 구상과 관련해 일해왔다"며 "그들은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양국이 어떤 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과 동등하게 접촉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구상이 진행 중이고 유동적이어서 세부 사항을 논쟁할 수 없지만, 대통령은 이 계획을 지지한다"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에 좋은 계획이며 양측이 수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도 대변인을 통해 "평화안은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의 의견을 반영해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은 "최종안이 아니다"며 수정 가능성을 시사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이날 우크라이나가 평화 프레임워크 마련에 합의한 것을 볼 때 초안 내용 일부가 수정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고 소개한 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26개 혹은 28개항으로 구성된 문서에서 아직 열려 있는 쟁점을 좁히는 것이었다"며 "오늘 우리는 그 목표를 매우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부분과 다른 부분에서 큰 진전을 이뤘지만, 오늘 세부사항을 말하진 않겠다"고 밝혔다.

또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도 앞서 루비오 장관과 함께 가진 중간 브리핑에서 "미국 대표단과의 첫 회의가 매우 생산적이었다"며 "우리는 공정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많은 변화가 있다"며 "중요한 것은 미국 대표단과 대화가 진행중이며, 트럼프 대통령팀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유럽 정상들 "美 주도 종전안 재논의 필요"…신중·의구심

유럽 정상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구상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요하네스버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 정상들은 미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평화구상에 표면적으로는 일단 "재논의가 필요하다"거나 "갈 길이 멀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면서 우크라이나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 분투하는 모습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2일 미국이 내놓은 평화구상에 대해 "상당히 익숙한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이 계획은 지난 여름 때처럼 재논의가 필요한 작업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평화구상 초안에 담긴 내용 중 상당 부분이 과거 우크라이나가 협상 과정에서 수용이 어렵다고 밝힌 것들이라는 사실을 에둘러 언급한 것이다.

아울러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통합은 유럽인의 손에 있다"며 유럽 측 목소리가 빠진 채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평화구상에 불만을 내비쳤다.

마크롱은 "단순히 미국의 제안만으로는 될 수 없는, 더 광범위한 협의가 필요한 많은 것들이 있다"며 추가 논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전날 저녁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메르츠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패하면 유럽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 문제에 몰두하는 이유"라며 "현재 전쟁을 끝낼 기회가 있지만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주장했다.

유럽 지도자들의 이런 발언에 대해 로이터 통신은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노력에 대한 찬사와 종전안 일부 조항을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시도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독일 정상은 그동안 종전 방향과 관련해 비슷한 입장을 취해 온 국가들과 연대해 미국 주도의 종전에 대해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이들은 이날 일본,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핀란드, EU와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초안은 추가 작업을 요구하는 기반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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