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는 정치자금 모금의 합법적 수단일 뿐만아니라 유권자들과 만날 수 있는 정치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후원회가 이 두가지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국정감사, 정현준게이트, 대정부 질문, 김용갑의원 발언 파문, 검찰탄핵안 대치 등으로 국회가 매일 숨가쁘게 돌아가는 그 시간에도 국회 한켠에서는 후원회 행사가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다.

요즘같은 정기국회기간에는 국회정문에 들어서자 마자 후원회를 안내하는 입간판이 하루에 4-5개가 서있는 것은 보통이다. 이미 국정감사를 앞두고 몇몇의원들에 의해서 시작된 후원회 행사는 12월까지 연일 빼곡이 줄지어 있다. 국회의원회관, 국회도서관, 국회헌정기념관 등 국회내 대강당이란 대강당은 모두 후원회 행사로 꽉 차있어 심포지엄이나 각종 토론회등 의정활동을 위한 일정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후원회에 의한 금품모집은 투명한 정치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6.27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개정과 함께 법제화되었다. 1995년 개정된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국고보조금, 기탁금 등과 함께 정당한 정치자금의 하나로 도입된 것이다.

이러한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수단으로서의 후원회는 한편으로는 유권자와 국회의원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의 장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투명한 정치자금 모금도, 정치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왜 하필 정기국회기간에 몰리나?

정기국회가 개시됨과 동시에 시작되는 후원회 행사에 여론의 질책은 매우 따갑다. 일년내내 국회공전, 국회파행으로 치닫다가 겨우 열린 정기국회인데 그 기간마저 의정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오직 정치자금 모으는데만 신경쓴다는 비판이다. 왜 일상시기에 하지않고 꼭 정기국회 시기에 때맞춰하냐는 것이다.

지금은 의원들이 국정감사 마무리와 예산결산안 심의, 법률안 발의 등을 충실히 준비를 해야할 때이고, 또 정기국회 회기 100일 가운데 이미 정쟁으로 40여일을 허비했으니 결국 밀실·졸속심의로 끝날 것이라는 국민불신을 제거해야 하지 않겠냐는 여론이 비등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대해 국회의원들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그 이유인 즉슨 정기국회때나 되어야지 국회의원들이 모두 서울에 있다는 것이다. 일상시기에는 지역구에 내려가 있거나, 외국에 나가기 때문에 당지도부나 같은당 의원들이 후원회에 참석하기도 어려워 행사가 빛이 덜나고 후원금도 덜모인다는 것이다.

국정감사 피감기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기국회기간에 집중되는 후원회 행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보다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 기간에 후원회 행사가 개최되면 피감기관인 행정기관에서는 후원금을 반강제로 내야 한다며 정기국회기간의 후원회행사의 '정치적 의도(?)'에 불만이 많다. 행정부쪽에서는 지난 15대부터 도입된 의원 후원금제도가 또 다른 형태의‘권력형 부패’로 자리잡고 있다고 개탄하며, 오얏나무 아래서 매는 갓끈으로 정기국회기간에 열리는 후원회를 비유하고 있다.

'2000 국정감사모니터 시민연대'는 "이는 피감기관으로부터 후원금을 걷기 위한 추태의 전형"이라며 "대가성 뇌물이나 다름없는 후원금 모금을 위한 행사를 철회하라"고 촉구했었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려고 한나라당 이재오의원은 피감기관으로부터 들어온 후원금은 반납하였다. 국민의 의혹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은 하지않고 후원회제도 도입의 본래 취지대로 투명하고 정정당당한 후원금만 받겠다는 취지에서다.

사실 후원회 개최시기는 법으로 제한이 없고 1년간 개최할 수 있는 후원회 횟수 역시 무제한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1-2번 정도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후원회원의 대상이 일정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한해에 모금할 수 있는 후원금의 법적한도는 선거가 있는 해의 경우 6억원, 선거가 없는 해는 3억원이다.
"후원회 수입이 의원에 따라 편차가 크다"면서 "지명도가 있는 중진의원의 경우 6억원 한도액을 단 한번의 후원회로 거둬들이기도 하지만 후원회 경비조차 제대로 충당하지 못하는 의원도 있다"고 후원회를 준비하던 한 보좌관이 귀띔했다.

또 최근에는 경제상황등을 고려하여 행사방식의 후원금 모금이 아니라 '우편모금 방식의 후원금'을 모으는 경우도 많아졌다.

유권자와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는 아직 자리매김하지 못해

후원회는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합법적 공간일 뿐만아니라 유권자와 만나는 중요한 정치적 공간이다. 그러나 후원금 모금이외에는 유권자와의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후원회 행사계획이 잡히게 되면 행사장 예약과 초청장을 만들어 발송하고 포스터와 후원회 리플렛, 후원회 비디오, 플랭카드를 제작하고 행사당일 출장부페를 예약하고 도우미를 동원하는 경우도 있다.

후원회 행사는 문화행사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의례적인 당지도부 인사, 후원회장 인사, 의원인사 이후 식사를 하고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요식적인 행사에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참석자들은 주로 지역에서 동원된 지역주민 일부이고, 기타 후원자들은 후원금만 내고 가버리는 것이 통례다.

결과적으로 이런 요식적인 후원회 행사에서 유권자, 후원회원과의 정치적 만남은 사실상 없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후원회를 유권자와 후원회원들과의 정치적 만남의 장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정치적 장의 성격을 규정하는 후원회 컨셉트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제대로된 후원회라면 최소한 후원회원들이 참여할 수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만, 유권자와의 만남의 컨셉트를 정하고 그에 따른 실행프로그램을 짜는 것은 보통 열정이 아니면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몇몇의원들의 경우는 이러한 시도를 하였다. 지역특산물 판매, 내고장 음식으로 제공하는 식사, 문화행사, 장애인후원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도입하기도 하고, 후원회와 의정보고회를 함께 치루어 의원의 의정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역구민과 후원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민주당 유용태의원은 9일 개최한 후원회에서 환경 사진전도 함께 열어 눈길을 끌었다.

후원회 행사의 또다른 볼거리는 후원회가 열리는 날 어김없이 국회주차장에 도열해 있는 대형관광버스이다. 국회의원의 지역구에서 국회견학과 후원회 참석을 위하여 사전에 준비되어 온 차들이다. 국회 본회장을 관람하는 지역구민들은 "여기가 국회의원들이 쌈박질하던 곳이냐" "TV에서만 보던 국회냐?"고 하면서도 국회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있다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국회의원 후원회에서 후원회원과 지역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진다면 강제적 후원금 모금이 아니라 후원회원 스스로 내는 자발성 후원금이 많이 모여 명실상부한 정치자금의 투명성은 실현될 것이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서 후원회, 그것이 곧 투명한 정치자금의 모금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이응석기자winad@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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