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1심판결에서 총풍 3인방에게는 유죄를, 권영해 전 안기부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또한 총풍사건의 핵심인 이회창총재와의 연루설은 판결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총풍사건'의 실체는 인정하면서도 동기는 없었다는 애매한 판결을 내렸는데...
법원은 11일 '97년 12월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이 실제로 있었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소위 '총풍'의 핵심사항이었던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의 연계설'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1심에서 97년 15대대선 직전인 12월 10일경 한성기씨등이 중국에서 북한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다는 이른바 '총풍사건'혐의로 구속된 '총풍 3인방'인 한성기, 오정은, 장석중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반면 이들의 범행사실을 알고도 수사를 지시하지 않는 등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기소된 권영해 전 안기부장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전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씨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위반죄(회합,통신)등을 적용하여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3년을, 대북사업가 장석중씨와 한성기씨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위반죄(회합,통신)을 적용하여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2년을 각각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와 정치,군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을 끌어들여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이라고 밝혀 국가안보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죄명 역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총풍사건의 핵심인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이회성씨와의 연계여부에 대해서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공소사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판결문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기자들에게 한 배경설명에서 "피고인들이 한나라당에 대선보고서를 전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총격요청과 관련해 사전,사후 보고를 했는지는 판단할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연계여부에 대한 명시적인 범죄혐의가 없는 만큼 재판에서 유,무죄를 가려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다른 쟁점중 하나인 안기부의 개입에 대해서는 권영해 전 안기부장에 무죄를 선고함으로서 안기부가 개입했다는 검찰의 사건구도를 법원이 부정하여 안기부 개입설을 차단하였다.

검찰은 98년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 연계의혹에 대해 계속 수사할 것을 밝혔지만 그 이후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이번 법원의 애매모호한 판결로 2년여 정치권을 시끄럽게 한 총풍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총격요청 실체는 인정하지만 총격요청의 동기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법원이 "국가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의 실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왜 그런 엄청난 일을 감행했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회합,통신죄가 아닌 '무력 총격사용을 북한에 요청'했다는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범행을 저지르고도 그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총풍3인방의 헤프닝성 자작극'이라는 것인데, 이 이유없는 대역죄에 대해 국민들은 선뜻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도대체 총풍사건이 있었다는 것인지 없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총풍사건은 97년 12월 대선 직전 한성기씨등 3명이 중국에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박충 참사를 만나 "이회창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12월 14,15일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박충참사는 "답을 줄 수 없다"고 거부하여 무력시위 요청은 불발에 그친 사건이다. 검찰은 '판문점 무력시위 요청'혐의로 이들 총풍 3인방을 기소하였고, 총풍 3인방 이외에도 이회창총재의 동생 이회성을 긴급체포하여 조사하는등 이총재에 대한 수사를 집중적으로 하였었다.

이 총풍사건으로 15대대선 직후부터 2년여 여야간에는 정치적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한나라당과 이총재는 여당과 검찰, 안기부가 합작하여 '이회창죽이기'를 시도한 '정치적 조작극'이라고 맹공을 퍼부었고, 여당은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한 총격요청의 의혹을 은근히 사실로 인정하며 정치적 압박을 가하였다.

때문에 '총풍사건'의 조사의 핵심은 '북측에 대한 총격요청의 실체여부 '뿐만아니라,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위한 선거전략의 일환'이었는지, 아니면 여당과 검찰,안기부가 함께 없는 사실을 만든 '이회창죽이기의 정치적 조작극'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있는데 동기는 없는 이번 법원의 애매모호한 판결로 총풍사건의 본질은 미궁속으로 빠져버리게 되었다. 총풍3인은 아무 이유도 없이 판문점에서 '총질'을 해달라고 그것도 적성국인 북한에 요청한 꼴이 된 것이다.

여야, 총풍판결에 자의적 해석 또다시 공방

이 애매한 판결로 또다시 여야는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이총재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병석 대변인은 "법원이 총풍사건을 '국가보안상 심각한 위협을 가한 사건'으로 판결한 만큼 한나라당과 이회창총재는 국민에게 사죄하고 배후 진상을 공개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총풍사건은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해 북한과 은밀히 내통해 동족에게 총질을 해달라고 요청한 국가문란사건이자 민족적 죄악임이 판명되었다."고 하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같은 여당의 공세에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면서도 "총풍사건을 이용해 위기국면을 물타기하지 말라"고 역공을 폈다.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회창 총재 죽이기의 실체가 드러났다"면서 "이 총재와 우리당을 흠집내기 위해 달려드는 여당의 모습이 한심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어제 법원의 판결은 한성기씨 등 3인의 철부지 행동이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밝혀진 것 뿐"이라면서 "민주당은 총풍사건을 트집잡아서 위기국면을 모면하려는 물타기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권영해 전안기부장의 무죄선거로 한나라당과 무관함이 더욱 확실해진 이상 "여권은 억지로 이총재의 연루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국민들은 여야 해석차이보다 더 혼란스럽다. 과연 이번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제대로 된 것인지 그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여론이 높다. 사법부는 법에 근거하여 진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그 본연의 임무이지만 이번 '총풍사건'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여타 정치적 의혹사건만큼이나 '정치적인 판결'로 끝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법원의 불분명한 판결로 국민적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여야는 현재의 심각한 경제위기 극복에 뜻을 합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또다시 공방만 계속하고 있다. 법원은 이러한 사태에 책임을 지고, 1심판결의 애매한 태도를 버리고 '총풍의 실체가 인정'된 이상 그 동기를 분명히 밝히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박혜경기자polyad@ewinc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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