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 "정말 VIP가 맞습니까?".. 해병대 사령관 고개 끄덕여
해병대 사령관, 국방부 검찰단 조사에 "그런 사실 없다".. VIP설 부인
민주당, 공수처 고발 추진.. 군인권센터 "권력형 범죄.. 국정조사 촉구"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VIP'로 부터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진술해 파문이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308/618299_419572_352.jpg)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국방부가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시킨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있었다고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해병대 사령관은 별도 조사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더불어민주당과 군인권센터는 '진실규명'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 대령은 지난 28일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해 사실관계 진술서를 제출했다.
29일 공개된 진술서에 따르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 박 대령은 지난달 30일 오후 4시30분께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경북경찰청에 이첩해야 할 수사 결과를 보고했다.
이튿날인 7월 31일 정오께 언론 브리핑을 위해 국방부 근처에 대기하던 중 김계환 사령관이 전화로 "언론 브리핑이 취소됐다"며 부대 복귀를 지시했다.
이어 국방부 대변인이 해병대사령부 공보정훈실장에게 전화해 "취소 사유에 대한 논리를 개발하라"고 했고, 공보정훈실장이 "국방부 지시로 취소됐다고 하겠다"고 하자 대변인은 "절대로 안 된다"며 막았다고 한다.
같은 날 오후 3시18분께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에게 전화로 사건 서류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박 대령이 김계환 사령관에게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김 사령관은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 주재 회의간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묻자 김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고 진술서에 명시됐다.
해병대 사령관, 국방부 검찰단 조사에 "그런 사실 없다".. VIP설 부인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의 진술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이날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를 방문, 사령관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령관은 조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 사령관은 지난 25일 국회에 출석해 수사 축소 의혹 등은 전면 부인했지만 안보실 2차장과 통화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한 바 있다.
이날 박 대령 측과 국방부 검찰단 사이에서는 소환조사 과정에서 진실공방이 펼쳐지기도 했다.
박 대령 측은 국방부 검찰단의 소환조사에 출석하며 당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재생하려 했지만 군검찰이 제지했다고 28일 밝혔다. 해당 녹음파일은 박 대령과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인 김정민 변호사의 통화 내용으로, 박 대령이 'VIP가 격노했다'는 말을 해병대 사령관에게서 들었다는 취지의 대화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녹음파일 재생을 막았다'는 박 대령 측 주장에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 자료를 냈다. "군검사가 조사를 시작하려 하자 변호인이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녹음파일을 재생했고, 이에 군검사가 조사를 진행하면서 필요할 경우 재생할 것을 요청했으나 변호인은 조사를 거부하며 조사실 밖으로 나간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정민 변호사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29일 언론에 "우리는 처음부터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를 거부했다"며 "진술을 거부해도 군검사는 질문을 계속하고, 이에 대해 '답하지 않겠다'고 하면 진술 조서를 읽는 사람은 불리한 얘기니까 대답하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게 기법이다. 제가 조사를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계속 질문하길래, '배후가 누군지는 알고나 조사하라'며 진술 녹화영상에 담으려고 음성녹음을 틀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그런데 군 검사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라고 소리치더니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나가라고 했다. 그러면 (박 대령 본인의) 진술서와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받지 않겠다고 하길래 군검사 책상에 밀어 넣고 나왔다"며 "어차피 그 내용은 진술서에도 다 담았다"고 덧붙였다.
박 대령 측은 앞으로 국방부 검찰단의 항명 사건 관련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간 박 대령 측은 국방부 검찰단이 수사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내린 국방부 예하 조직인 데다가 경찰에 이첩된 채 상병 사건 서류를 불법적으로 회수한 조직이라는 이유에서 국방부 검찰단 수사를 거부해 왔다.
민주당, 공수처 고발 추진.. 군인권센터 "권력형 범죄.. 국정조사 촉구"
더불어민주당은 29일 ‘해병대원 사망사고 수사축소 외압 의혹’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고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TF(태스크포스)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망사고에 책임져야 할 사단장의 혐의는 사라지고 절차에 따라 엄정한 수사를 지휘했던 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보복수사와 징계만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법리 검토를 핑계로 국방부 장관은 본인이 한 결재를 뒤집어 경찰 이첩을 막고 사건을 국방부 검찰단으로 빼돌렸고 그 결과는 최고 지휘관들의 혐의는 빼고 현장 지휘관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며 "결재 번복과 이첩보류 지시, 수사기록 빼돌리기,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법무관리관과 차관의 압박 목적이 임성근 사단장 구하기에 있었고,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 수사는 진실을 가리고 입을 막으려는 의도에 의한 것임이 아닌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방위와 법사위에서 국방부 장관과 법무관리관의 불법적 지시, 직권남용의 혐의가 여럿 확인됐지만 제대로 해명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사건 기록을 빼돌린 국방부 검찰단장은 이미 직권남용으로 고발됐다. 검찰단장에게 불법 회수를 직접 지시한 장관 역시 직권남용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대통령실의 개입 의혹도 점점 커지고 있다"며 "수사 초기 단계부터 수사대상자가 누군지 확인했던 대통령실이 수사결과에도 사단장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하자 즉각 이를 수정하라고 지시했고 이를 따르지 않자 항명사건으로 전환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에 우리는 강제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라 판단하고 공수처 고발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기록 등을 신속히 확보하기 위해서도 공수처의 강제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TF 소속 최강욱 의원은 공수처 고발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현 상황서 특검과 국정조사는 절차상 시간이 필요하다"며 "증거 인멸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재 강제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이 공수처밖에 없어서 그걸 신속히 먼저 진행하겠단 것이다"고 설명했다.
박주민 의원은 "이미 시민단체가 고발했지만 추가로 고발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며 "증거인멸 가능성이 커서 일단 강제수사 돌입 장치 마련할 필요 있지 않나 싶다. 특검 방향 바꾼 건 아니다. 특히 국조가 새롭게 시민들 요청으로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 또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군인권센터는 28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장관 주장대로 장관이 스스로 사건 수사 결과가 이상하다고 판단해 결재를 번복한 것이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며 "(수사 외압 논란 관련) 사건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사망 원인 규명을 방해하기 위해 권력자가 조직적으로 수사에 개입한 권력형 범죄"라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7월 30일까지) 국방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모두 사단장 책임을 인정하고 수사 이첩에 따른 후속 인사조치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7월 31일 오전 11시경) 윤석열 대통령이 해병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입건시킬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고 격노했고, 그에 따라 국방부가 발칵 뒤집혔다고 보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분명히 규명하고, 대통령을 위시한 수사 외압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기 위해 국회의 조속한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6일 국민동의청원에 등록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 청원'글에 5만명 이상이 동의하며 청원이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