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대상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기묘한 정당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312/629045_431908_144.jpg)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12월 2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했다. 한 위원장을 맞는 국민의힘 주류 친윤계는 거의 잔치 분위기다. 이제 국민 여론만 호의적으로 움직여주면 된다는 생각일 것이고, 그런 점에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아전인수격 해석도 증가할 전망이다.
국민 여론이 호의적으로 움직이려면, 다시 말해 성공하는 비대위를 만들 요량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탈윤 비대위 또는 통합 비대위를 만들었어야 했다. 역대 비대위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박근혜 비대위도 그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당시 한나라당 주류가 친이계인 상태에서 비주류 친박계의 수장 자격으로 비대위원장에 취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자성의 발언부터 내놓았다.
“한나라당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는지, 정말 참담한 심정이고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 그동안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의 아픈 곳을 보지 못하고 삶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
국민의힘은 반대의 선택을 했다. 주류인 친윤계, 그중에서도 사실상 권력 2인자인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택한 것이다. 당연히 수락 연설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처음부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운동권 세력을 겨냥했다.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게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자성의 발언은 없었다. 당내 혁신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당내 쇄신 의지를 내비친 뒤, 매주 쇄신안을 내놓은 것과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국민의힘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유, 그래서 혁신이 필요한 핵심 대상은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통행 통치 스타일 그리고 수직적인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다. 이 또한 한 위원장의 수락 연설에서 빠졌다. 결국, 수락 연설 뒤 기자회견 때 질문이 나왔고, 한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과 여당, 여당과 정부는 헌법과 법률 범위 내에서 각자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는 기관이다. 거기에 수직적이니 수평적이니 얘기 나올 부분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거고 대통령은 대통령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당의 수직적 관계 청산은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태도다. 스스로 친윤 비대위원장이자 내부 혁신 의지가 없음을 자인한 격이다. 이런 비대위가 성공하길 바라는 것은 거의 연목구어(緣木求魚) 수준이 아닐까 한다.
원초적으로, 한 전 장관은 비대위원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정권 실세로서,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하락의 핵심인 인사 참사와 관련해서도 검증의 주체로서 부실검증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부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인물이다.
혁신 대상이 오히려 혁신을 추진해야 할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오른 역설적 상황에 국민이 환호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번 비대위도 인요한 혁신위처럼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종훈
정치평론가
정치학박사
명지대 연구교수
정치경영컨설팅(주) 대표
전 국회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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