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특위, 엄상필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여 "재판 지연으로 국회가 범죄 도피처" 야 "검찰 공소장만 책 400권 분량, 법원 책임 아냐"
엄상필 "판사의 정치성향이 판결의 결론이나 진행에 영향 미쳤다 생각하지 않아"
'약속사면' 논란에 엄상필 "부적절할 수도".. "촉법소년 연령 하향 검토 가능"
엄 후보자 "가장 시급한 과제, 재판 지연 해소"
인청특위, 신숙희·엄상필 후보자 심사경과보고서 '적격' 채택
![28일 국회에서는 엄상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402/637063_440756_168.jpg)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28일 국회에서는 엄상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엄 후보자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동명고와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서울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서울가정법원을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다.
이날 청문회에서 여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 사건의 재판 지연 문제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여 "재판 지연으로 국회가 범죄 도피처" 야 "검찰 공소장만 책 400권 분량, 법원 책임 아냐"
엄상필 "판사의 정치성향이 판결의 결론이나 진행에 영향 미쳤다 생각하지 않아"
이날 청문회에서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인 강규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것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사건은 6개월 안에 끝내도록 돼 있는데 16개월 동안 지연시키다가 사직했다"며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재판 지연 등도 거론하면서 "사법의 정치화란 애기가 나오지 않느냐"며 "대법관이 되면 객관성과 중립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주문했다.
같은 당 조은희 의원도 문재인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일본군 위안부 후원금 횡령 논란, 최강욱 전 의원의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 허위 인턴 증명서 발급 사건 등을 거론하면서 "1심 재판 기간이 평균 2년 반을 넘었다"고 짚었다.
이어 "재판이 지연되면서 국회의원들은 의원직 상실형을 받아도 모두 임기를 채운다. 그래서 법원이 이 사람들이 국회를 범죄의 도피처로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비판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엄 후보자는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 판결의 결론이나 진행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현재로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서도 "만약 제가 대법원에서 사건을 살펴본다면 결론 뿐만 아니라 절차 진행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 재판 지연 주장에 대해 "짧은 법관 생활을 했지만 공범 기소를 이유로 기소한 피고인들에 대한 증거 목록조차 제출하지 않은 사례는 처음 보는데 그게 6개월이 지나갔다"고 반박했다.
이어 "공소장이 100페이지, 200페이지다. 기록은 100페이지짜리는 거의 10만 페이지고 200 페이지 짜리는 기록 자체가 20만페이지"라며 "20만페이지면 500페이지씩 책으로 묶지 않으면 400책이라는 얘기다. 어마어마한 기록"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증거를 냈으니 피고인은 당연히 부동의한다. 부동의해서 나와야 될 증인만 해도 150명 정도 된다"며 "이 재판을 2년 안에 끝낼 수 있냐"고 반문했다. 엄 후보자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20만 페이지면 한방에 가득할 정도로 기록이 쌓인다. 그걸 2년, 2년 안에 못 끝냈다고 재판 지연을 지적하는 건 법원의 책임이 아니다"며 "재판기록이 수십만페이지라서 재판이 지연된다고 하는데 피고인 입장에서도 죽을 맛이다"고 말했다.
엄 후보자는 "재판 지연을 초래하는 요소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도출하겠다"며 "기존 소송법령 조항을 최대한 활용해 신속한 집중 심리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의혹을 받는 창원간첩단 사건에 대해선 "피고인들의 권리 행사를 전부 재판을 지연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우선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있다"면서도 "재판부가 고의에 따른 재판 지연이라고 판단했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입법 조치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약속사면 논란에 엄상필 "부적절할 수 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검토 가능"
이날 엄 후보자는 서천호 전 국가정보원 차장에 대한 사면이 부적절하다는 이탄희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사건의 진행 경과가 맞는다면 부적절할 수 있다"고 답했다.
서 전 차장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설 특별사면을 단행했고, 국민의힘은 서 전 차장을 공천하면서 약속사면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또 사면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하는 내용의 '사면절차법' 제정에 대해서는 "사면 절차가 더 투명하게 이뤄지고 왜 그런 사면을 하게 됐는지가 밝혀지면 좋겠다는 점에서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고 답했다.
엄 후보자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앞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입장을 묻는 서면질의에는 "책임 능력이 없는 소년까지 처벌 대상으로 포섭해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위험이 있고, 개선 가능성 있는 소년범까지 처벌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서는 하향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은 "후보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면 현행을 유지하자고 했지만 촉법소년 범죄가 극악무도해진다는 점에서 유연하게 사고를 해달라"고 지적했고 엄 후보자는 "과학적인 근거가 아니라도 사회적 합의가 되면 하향도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에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례법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면 형사 소송을 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엄 후보자는 신 의원의 관련 질의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추진에 전혀 이의가 없는 입장"이라면서 "의사와 환자 양측의 의견을 듣고 균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향후 여성 대법관이 절반 이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엄 후보자는 "인구 구성 비율에 맞는 정도의 (대법관) 남녀 비율 확보는 필요하다"며 여성 대법관이 절반은 돼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엄 후보자 "가장 시급한 과제, 재판 지연 해소"
인청특위, 신숙희·엄상필 후보자 심사경과보고서 '적격' 채택
엄상필 대법관 후보자는 이날 "법원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재판 지연의 해소"라며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엄 후보자는 모두발언을 통해 "상고심 재판을 담당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존의 소송법령 조항을 최대한 활용해 신속한 집중심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재판 지연의 원인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재판 지연을 초래하는 요소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데에도 경험과 지혜를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엄 후보자는 지난 27년간의 법관 생활을 돌아보며 "저의 모든 재판은 두려운 순간의 연속이었다"며 "절차의 진행이 공정하고 투명하면서도 당사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잃지 않는 것이었는지, 판결의 결론은 물론이고 거기에 이르는 논리의 전개가 치밀하고 타당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당사자가 쉽게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설명했는지가 늘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관으로 국민과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변함없이 두려운 마음으로 성의를 다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이 정의로운 판단을 요구하는 구체적 사건 하나하나를 소홀함 없이 살피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저의 전부였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우리 법원이 국민의 믿음을 회복하는 데 온 힘과 열정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인청특위)는 29일 신숙희·엄상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여야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인청특위 전체회의를 열고 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심사경과보고서를 일괄 상정해 모두 '적격' 의견으로 채택했다.
두 후보자에 대한 여야간 이견이 없어 전체회의는 5분만에 끝났다. 앞선 인사청문회도 두 후보자의 도덕성 등 자질에 대한 지적 대신 사법정책에 대한 견해를 확인하고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