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리뉴스 김만흠(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올림픽 기간이다. 간혹 국가주의적 올림픽 경쟁에 불편한 시선을 갖는 사람도 있다. 평소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는 올림픽 뉴스에 관심이 꽤 있는 편이고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응원을 보낸다. 올림픽 중계와 관련 소식이 정쟁 소식을 조금은 뒤로 밀어내는 요즘이다.
배드민턴 여자 개인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 선수의 협회 비판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그동안 배드민턴협회의 운영과 국가대표 선발 지원에 대한 문제들을 토로했다. 자신이 올림픽 금메달을 따 주목받을 만한 상황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귀국길에는 우리나라의 선전과 메달획득 선수들의 축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안 선수의 주장에 대해 반박 자료를 냈고 안 선수는 올림픽 종료 후에 본격적인 입장을 내겠다고 했다. 서로의 주장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협회가 안고 있는 어느 정도의 문제점은 예상할 수 있겠다. 정부 주무부처와 감사원에서 조사를 시작했다하니 체육단체 운영의 개선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런 일에 숟가락 얹기 빠질 리 없는 정치권이다. 배드민턴협회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나선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으며, 정치참여의 각종 특권을 누리고 있는 ‘당신들의 조직’ 정당의 실상을 먼저 돌아본 후에 할 소리다. 공적으로 지원받는 조직이 사적인 권력카르텔이 돼 정당 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는 ‘정치협회’의 문제가 훨씬 크다고 본다.
그래도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전당대회에 나선 민주당의 당 지도부 후보들은 올림픽 이벤트를 활용한 선거전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후보는 권총 사격선수 복장과 포즈로 ‘사격재명’ ‘출격 준비 완료 명사수’ 해시태그와 함께 멋진 모습을 연출했다. 상대 여당 소속이자 올림픽 4관왕 진짜 사격선수 출신인 진종오 의원은 이를 두고 ‘방탄국회 입법독주 의회장악 표적은 어디입니까’로 응대하며 인용했다. ‘명사수는 명사수’까지 덧붙였다. 명사수(名射手)와 이재명을 지키겠다는 사수(死守)의 명사수를 중의적으로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스포츠가 전쟁의 연성화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의 가장 원시적 상태를 전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상대를 죽이거나 굴복시키는 전쟁이 아니라 공생을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 공화국, 협치 등이 그런 원리를 반영한 개념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는 전쟁으로 가고 있다. 상대를 적으로 보고 우리 편이 정의의 기준이 되는 전쟁이다. 권력투쟁일 수밖에 없는 정치에 그런 속성이 기본적으로 있기는 하다. 나찌의 정치이론에 힘을 보탰다는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를 두고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 이라고까지 했다. 나찌 이론가였다.
정치가 불가피한 권력투쟁이라 하더라도 공동체 내부의 정치는 공생을 전제로 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상대를 때려 눕혀야 하는 격투기가 있는가 하면, 득점으로 가르는 구기 종목도 있고, 기록 경쟁인 육상 경기도 있다. 구기 종목도 배구나 테니스처럼 네트를 사이에 두고 하는 종목도 있고, 진영을 넘어 몸싸움도 하는 핸드볼이나 축구 같은 경기도 있다. 한때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정치 형태를 물어보면 핸드볼 경기 수준이라는 답이 많았다. 이상적으로 보자면 서로 기록경쟁을 하는 쪽이 바람직하겠지만, 일정한 영역은 침범하지 않은 채 상대를 공격하는 배구나 테니스 경기 정도도 좋다.
요즘 상황을 물어보면 대부분 격투기라고 답할 것 같다. 엄격한 규칙에 따르는 스포츠와 달리, 격투기식 정치는 승자들이 규칙을 마음대로 주도한다. 또 스포츠 격투기는 그 경기에 한정되지만, 격투기식의 제로섬 권력투쟁은 치명적이다. 기록경기처럼 호감경쟁을 하는 생산적 정치, 적어도 일정한 상대 영역은 존중 해주는 공생의 정치로 전환되길 기대하는 게 현재로서는 연목구어일까?
김만흠
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장
가톨릭대학교 교수
한성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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