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레바논 전역에서 17일(이하 현지시간)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해 최소 9명이 숨지는 등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해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에 다시 한번 전면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삐삐' 울리자 수백대 폭발.. 9명 사망 2750명 부상

로이터·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7일 오후 3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티레, 서부 헤르멜 등 전국 각지에서 호출기 수백대가 동시에 폭발했다.

레바논 보건당국은 주로 군부대와 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호출기가 폭발하면서 9명이 사망하고 2천75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부상자 가운데 약 200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전해진다. 이는 부상자 가운데 일부는 울리자 화면을 확인하는 도중에 폭발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온 영상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갑작스러운 폭발에 손도 쓰지 못하고 쓰러졌다.

외신에 따르면, 레바논 시내 곳곳에서 폭발 소리와 함께 피해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시내 일대는 대혼란에 빠졌다. 동시에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해 베이루트 인근 병원은 밀려드는 환자로 아비규환 상태였다. 이번 사고로 모즈타마 라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대사도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폭발은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등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헤즈볼라 대원들은 위치추적을 우려해 휴대전화 대신 주로 호출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폭발한 무선호출기는 대만 골드아폴로에 주문해 납품받은 것인데 누군가 해당 기기에 소량의 폭발물과 원격 기폭장치 등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헤즈볼라·하마스, 이스라엘 배후로 지목.. 보복 다짐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면전 위기가 다시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직후 무력 공방을 이어오다 지난 7월 헤즈볼라 최고위급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 암살을 계기로 전면전 위기가 불거졌다.

하지만 양측 모두 전면전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다 지난달 25일 한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뒤로는 소강상태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폭발 사건으로 상황은 급변하게 됐다.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배후에 있다고 보고 보복을 다짐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고 하마스는 "레바논 시민을 표적으로 삼은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란도 이날 폭발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고, 레바논 정부는 내각회의 이후 "레바논의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이스라엘의 범죄적 공격을 만장일치로 규탄한다"고 이스라엘을 겨냥했다.

美·국제사회 "외교적 해결" 촉구.. 민간인 광범위한 피해 국제법 위반 지적

이에 대해 이스라엘 측은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폭발 사건 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텔아비브에서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안보 책임자들과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외교적 해결을 강조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는 항상 확전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사건에 대해서든 우려한다"며 관련 당사자들에게 '외교적 해결'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미국은 이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유엔도 긴장 고조를 우려하며 자제를 촉구했다.

지닌 헤니스-플라샤르트 유엔 레바논 특별조정관은 성명에서 "오늘 사태 전개는 이미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극도로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모든 당사자에게 더 이상의 추가 행동이나 호전적 행위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한편, 이스라엘이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면 이는 국제법 위반일 가능성이 높다. 전쟁법은 군사적 표적과 민간인을 구별해야 하고, 군사적 이익보다 과도한 공격으로 민간인의 우발적 사상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닌 조정관은 "국제법에 따라 민간인은 어떤 경우에도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