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상계엄, 사전 통지 없었다" "깊은 우려 야기"
NYT "한국 계엄령, 한미동맹 시험대" WP "尹, 민주주의 진정한 위협"
외신, 尹 탄핵안 발의도 집중 조명 "尹, 정치적 운명·한미관계 불확실"
대통령실, 외신에 "비상계엄, 헌법 틀 안에서 했다"
세계각국 "한국 여행 주의".. 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한국여행 경고"

미 백악관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비상계엄이 단시간에 해제됐지만 외교적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전혀 통보받지 못한 미국은 동맹국 정상을 향해 이례적으로 '심한 오판'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 언론들도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 동맹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계엄과 탄핵 등 정치적 혼란이 예상되자 세계 각국 정부는 한국을 여행 중인 자국민에게 안전과 주의를 당부하고 있으며, 심지어 전쟁중인 이스라엘 조차 한국에 대한 여행경고를 발령하고 나섰다. 

美 "비상계엄, 사전 통지 없었다" "깊은 우려 야기" 불쾌감 드러내

이번 비상계엄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우려스럽다"와 "안도한다"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계엄령 선포 몇 시간 뒤 낸 짧은 성명에서 "미국은 이 발표를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상황 전개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계엄령이 해제된 후 NSC 대변인은 3일(이하 현지시간) 연합뉴스에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우려스러운(concerning) 계엄령 선포에 관해 방향을 바꿔 계엄을 해제하는 한국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것에 대해 안도한다"고 답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라며 "우리는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백악관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를 사전에 통지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리카 앙골라를 방문 중인 시기에 예상치 못한 계엄 사태가 한국에서 불거지자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등은 잇달아 입장을 내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는 동맹국의 정치적 불안정은 외교 전략의 중대한 리스크가 되기 때문이다.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은 다음 날에도 계엄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연설한 뒤 참석자로부터 한국 계엄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계엄령에 대해 한국 정부와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세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TV를 통해 발표를 알게 됐다"고 운을 뗐다.

설리번 보좌관은 "(계엄 선포는) 우리의 깊은 우려를 야기했다"고도 했다.

이어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한국의 민주제도가 적절히 작동하는 것이며, 미국을 포함한 모든 곳에 경종을 울린 다소 극적인 발표(계엄령) 이후에도 이러한 절차가 작동하는 것을 목도했다"며 국회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견고하고 회복력이 있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한국의 대화 상대방과 사적으로 소통하며 그 중요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리번 보좌관이 우려와 함께 한국의 민주적 절차가 적절히 작동했다고 평가하며 수위를 조절했으나 미국 국무부의 2인자인 커트 캠벨 부장관은 같은 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심한 오판"(badly misjudged)이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캠벨 부장관은 이날 아스펜전략포럼이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포럼에서 한국 상황에 대한 질문에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계엄법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이 한국에서 깊고 부정적인 울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사전에 계엄 선포를 파악하지 못한 데 대한 질문에는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한국) 외교부, 기획재정부, 대통령실 등의 한국 정부내 우리의 대화 상대방이 거의 모두 (계엄 선포에) 깊이 놀라워했다는 것"이라며 이번 계엄이 소수에 의해 실행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나와서 이것이 매우 불법적인(illegitimate) 과정임을 분명히 할 준비가 돼 있었다"며 "우리가 여기서 일부 위안과 확신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위 외교 당국자가 동맹국 정상의 결정에 대해 "오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불법적'이라는 표현이 캠벨 부장관의 자기 판단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간접 화법을 통해 계엄 선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NYT "한국 계엄령, 한미동맹 시험대" WP "尹, 민주주의 진정한 위협"

미국 주요 언론들도 계엄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면서 이번 사태가 한미동맹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3일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미국의 한국과 동맹이 수십 년 만에 최대 시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그간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프레임으로 외교 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 중국,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왔으나 이번 계엄 사태로 바이든이 "힘든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난 2021년 12월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제1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했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2023년 3월 2차 정상회의를 한국,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잠비아와 공동 주최했으며, 미국 밖에서 처음으로 열린 3차 정상회의는 한국이 2024년 3월 서울에서 단독으로 주최한 바 있다.

당시 3차 정상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굳건하고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이자 세계 민주주의의 챔피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른 언론들도 사설을 통해 이번 계엄에 대한 우려와 안도를 드러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사설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진의가 분명치 않은 계엄령 선포를 신속하게 거부하면서 수십 년 만의 최대 시험대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사설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같은 한국 내 혼란 징후는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무모한 군사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을 염두에 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윤 대통령에게 계엄령의 위험성과 관련한 일부 날카로운 조언을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같은날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한 위협은 윤 대통령의 요란하고 위헌적일 가능성이 큰 (민주주의) 전복 시도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시계를 이전의 어두운 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며 "다행히도 이번에 민주주의는 한 사람의 약화 시도보다 더 회복력이 있었고, 피플파워는 또 한번 그것을 지탱하는 힘이었다"고 지적했다.

계엄 사태 전하는 주요 외신들 [사진=연합뉴스]

외신, 尹 탄핵안 발의도 집중 조명 "尹, 정치적 운명·한미관계 불확실"

외신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발의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표명했다.

4일 NYT는 "계엄령을 시행하려는 윤 대통령의 과감한 시도가 한국을 위기에 빠트린 후, 야당 의원들이 윤 대통령 탄핵안을 제출하고 시위대가 그의 사임을 요구하면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은 불확실해졌다"라고 전했다.

WP도 "(탄핵에 이르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윤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분명하다"며 "미국 정권교체기에 발생한 이 격변은 윤 대통령 집권 중 강화되어온 한국과 미국의 안보 관계에 불확실성을 주입한다"고 분석했다.

WSJ은 탄핵안 발의에 대해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에 큰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했다"며 "지금 윤 대통령의 운명은 계엄령 발동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법적인 질문에 달려 있다"라고 전했다.

유럽 언론들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후 야당의 대통령 탄핵안 발의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한국 내각 주요 장관들의 사의 표명 소식을 전하며 윤 대통령의 계엄령 시도 실패 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는 압박이 고조됐다고 보도했다.

BBC는 "한국은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소란스러운 나라"라며 "국민이 1980년대 이래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을 거부한 후 윤 대통령은 이제 의회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프랑스공영 AFP 통신은 한국의 일련의 극적인 상황 전개로 보수 정치인이자 스타 검사였던 윤 대통령의 미래가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전했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도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이후 김용현 국방장관의 사의 표명,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 미국 정부의 반응을 비롯해 스웨덴 총리 방한 연기 등을 두루 다뤘다.

대통령실, 외신에 "비상계엄, 헌법 틀 안에서 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4일 주요 외신에 계엄 선포가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로이터통신의 서울발 기사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비상계엄령 발동이 너무 무리한 일이고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엄밀하게는 합헌적인 틀 안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담화에서 언급한 대로 야당의 주요 공직자 탄핵 추진과 법률·예산안 단독 처리 등을 지적하며 "국가 안보를 훼손한 세력에 대한 불가피한 대처이자 국정 정상화와 회복을 위한 조치 시도"였다는 취지로 외신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일반 국민의 삶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3일 밤늦은 시간 긴급 담화를 발표하고, 국회에 계엄군 투입은 담화 발표 1시간 후에 했다고 외신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 "한국 여행 주의".. 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한국여행 경고"

이번 사태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예상되자 세계 주요국들은 한국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는 자국민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미 대사관은 영문 웹사이트에 적색 배너로 '경보'를 띄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해제 후에도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시위 현장을 피하고 대규모 군중, 집회, 시위 부근에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국 외무부는 4일 "이것(계엄)은 해제됐다. 현지 당국의 조언을 따르고 대형 정치적 집회를 피하라. 광화문과 대통령실(삼각지), 국회(여의도) 일대에서 시위가 예상된다"고 공지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역시 홈페이지와 엑스(X·옛 트위터) 등에 "현재 폭력 사태 없이 정치적 상황이 계속 전개되고 있다"며 "군중이 모이는 국회에 접근하지 말고 모든 정치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도 한국에 대한 여행 경고를 발령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3일 밤 성명에서 한국을 두고 "이 나라를 방문할 필요성을 검토해보라"고 자국민에게 알렸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상황이 명확해질 때까지는 집이나 숙소에 머물면서 새로운 언론 보도를 지켜보라"고 덧붙였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도 4일 오전 페이스북 등에서 계엄 해제를 알리면서 "대사관 공지를 따르고 대규모 행사 참여를 자제하며 현지 당국의 권고를 따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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